고정된 가치와 개념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을 구축해온 홍명섭()이 11월 8일부터 12월 27일까지 종로구 수송동 OCI미술관에 'Shadowless, Artless, Mindless-Creeping Pieces: 몸-시간의 존재방식'이란 부제로 개인전을 갖는다. 홍명섭은 1970년대 말부터 관념화되고 의식화된 개념들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뒤집는 행위로서 미술을 지향해왔다. 그의 예술 언어는 개념의 형식에 대한 추종이 아니라 개념을 초월하는 지점에서 감각과의 사투를 통해 사물과 예술이 지니는 의미를 구축하고 해체하는 기능에 충실해왔다. 그러한 미학적 행위는 개념적 미술로서의 언어·말과 해프닝, 퍼포먼스,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으로 발현되어 왔으며, 결론적으로 특정의 언어로 규정될 수 없는 주관적인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특징을 지닌다. 'Shadowless'는 두께나 높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설치물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방적인 주목을 전제로 하는 입체 조각에 대한 저항적 태도이자, 미술품의 견고성이나 유일성 등의 고정된 가치를 외면하는 관점이다. 그의 작품이 발산하는 예술적 감응은 일시적일 수 있으나 오브제 스스로 엮어내는 창의적인 접속을 통해 나름의 미적 필드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예술 언어로 규정될 수 있다. 'Artless'는 일탈의 형식, 무기교의 작업들을 비유한 것으로, 작가의 주체 의식이나 개성적 표현을 거부하는 일체의 표현 의지를 말한다. 이는 작품의 외관이 미진하거나 공간에서 잘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작품을 아무 곳에나 나열하여 관람객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등 예술 작품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다. 'Mindless'는 주체적 시각이 배제된 무정부주의적 태도, 내러티브가 사라진 익명성, 개별성을 나타낸다. 대상·오브제에 대한 작가의 의도나 본래의 개념이 굴절되고 변용되면서 새로운 의도와 계기가 잉태되는 등 점차 다른 것이 되어가는 감각들을 촉발시키는 작업의 근거를 지칭한다. 그의 작업에 대체로 사회적 이슈와 통념에 저항하는 이질적 사고의 측면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주체적 시각을 거스르는 'Mindless'의 작업 태도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꽃의 양가성을 환기하는 렌티큘러 작업 '몸-시간의 존재방식'과 수평을 지향하는 오랜 예술 의지를 담은 'Running Railroad-Running Sound Road', 그리고 최초로 선보이는 사운드 설치작업인 'Waterproof'가 전시장 1∼3층을 각각 차지하며 서로 다른 예술의 층위를 다채롭게 펼쳐낸다. 전시장에 설치된 '몸-시간의 존재방식'은 꽃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꽃의 생생한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작가에게 꽃은 '독'을 품은 존재로 정의된다. 치명적이고도 유혹적인 아름다움으로 외형을 위장하고 있으나 작가는 이것이 죽음·환각으로 치환되는 독을 은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Running Railroad-Running Sound Road' 작품은 관람객이 입구에 놓인 여러 켤레의 무쇠슬리퍼를 신고 레일 패턴의 테이프 드로잉을 따라 걷게 된다. 관람객은 걸을 때마다 바람 소리 등 다양한 소음을 들으며 시지각적으로 새로운 체험을 한다. 이는 몸과 분리된 듯한 시각체험을 통해 공간감의 혼란을 일으키고, 시각경험이 몸과 밀착된 사실임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이다. 홍명섭의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일관된 미의식은 '수평'에 대한 지향이다. 수직을 향한 서구 문명의 개념들에 대척되는 수평에의 의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상태의 평온함과 해방감을 기저로 하는 동양의 문화와 정서를 상징한다. 이는 또한 작가의 예술적 번민과 욕구를 가라앉히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