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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녕 골프 칼럼]함박눈 날리는 코스에서 골프와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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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4호 박현준⁄ 2013.02.18 11:04:58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코스의 설경은 아름답지만 적막하기 그지없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그린 위에는 붉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며 외롭게 서 있다. 워낙 눈이 많이 쌓여 어디가 그린이고 러프인지 도통 분간할 수 없다. 눈을 돌려 페어웨이 양쪽에 정렬해 서 있는 앙상한 겨울나무들을 바라보니 눈 꽃송이가 가지마다 피어 있어 마치 백설공주가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날아 내려올 것 같은 분위기이다. 눈이 날리면 인간은 물론 동물들도 새들도 모두 좋아한다. 참새 떼가 코스 위를 날아다니고 동네 개들이 눈으로 뒤 덮인 페어웨이를 신바람 나게 뛰어다닌다. 까치가 고요한 골프 코스를 찾는 골프 마니아들을 멀리서 바라다보곤 ‘깍! 깍!’ 반가운 합창을 힘차게 해댄다. 산비둘기는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지 앙상한 참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구! 구! 구!’ 하고 슬피 울고만 있다. 언덕 위에 외로이 서 있는 감나무에는 들새들이 몇 개 안남은 붉은색 감을 쪼느라 분주히 나무가지를 맴돈다.

발길을 옮겨 골프장 둔덕에 서서 아랫마을을 내려다본다. 근대화된 요즘 시골마을에는 눈을 가득이고 있는 초가집도 볼 수 없고, 밥 짓는 연기도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개 짖는 요란한 소리와 목을 길게 빼고 힘차게 울어 젖히는 수탉의 ‘꼬끼오’ 하는 외마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힘이 넘쳐서 좋다. 오늘은 골프를 안 하고, 아니 못 하고 돌아가도 좋다. 1년에 한 번쯤 이렇게 센티멘털한 감정 속에 파묻혀 인생을 생각해보고 과거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파트의 숲속에서 시멘트로 둘러싸인 공간에 사는 우리는 감정이 메마르고 자연의 섭리를 느낄 줄 모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짓누르고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 컴퓨터와 인간이 만들어낸 ‘오락기구’라는 틀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우리가 불쌍하기만 하다. 흰 눈은 우리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순결하게 만들어준다. 골프를 하는 동안 정신적 몰두보다도 오늘 같이 흰 눈이 내리는 코스에 서서 자연을 찬미하고 인생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무엇보다 가치가 있다. 함박눈이 내리는 코스에선 나 자신이 이렇게 행복하게 느껴지긴 근래 들어 처음이다. - 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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