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317호 최정숙⁄ 2013.03.11 13:46:04
지난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65). 새누리당 5선 의원을 지낸 김 전 의장은 요즘 ‘정치인’보다 ‘작가’로 불리는 것이 낯설지 않다. 그는 지난해 11월 ‘술탄과 황제’라는 역사서를 발간했다. ‘술탄과 황제’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날을 중심으로 50여 일간의 치열한 전쟁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역사적 사실과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날들을 그려냈다. 책에는 세기의 정복자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이에 맞서는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등장한다. 황제의 가상 일기장과 이에 대한 술탄의 비망록이라는 구성을 통해 전쟁을 치르는 두 리더의 전략과 고민을 담아낸 부분에서는 현대 정치권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김 전 의장은 정치권에서 손을 뗀 상태다. 하지만 저서인 ‘술탄과 황제’ 외 강연 등을 통해 정치권에 몸을 담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하고 있다. 정치권 원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역대 국회의장 중에서 명예롭게 임기를 마친 몇 안 되는 인사다. 그는 자신이 이같이 무탈하게 의장직을 수행한 것에 대해 “은혜이자 행운”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내 스스로가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났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제는 5년 단임제다. 하지만 5년 단임제 아래서는 대통령이 집권 초기 제왕적인 권한을 누리다 임기 3~4년차가 되면 급속히 레임덕에 빠지는 폐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김 전 의장은 지난 2008년 개헌을 제안했다. 최근 그는 여러 특강에서도 5년 단임제의 문제를 지적했다. 김 전 의장은 이와 관련해 2월28일 CNB저널과 인터뷰에서 “국민적 합의를 통해 4년 중임제나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싸움하기 바빠서 논의가 안 됐다”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면 개헌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지난달 25일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새 정부는 정상출범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 전 의장은 “여권이 먼저 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승자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야당에도 한 마디를 남겼다. 그는 “정부조직법은 국민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일하겠다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침에 의해 나온 것이니만큼 야당이 보이는 태도도 옳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5년 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국민만을 생각한 초심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직선제 대통령들이 들어갈 적에는 좋았는데 나올 적에 힘들게 나왔다”라며 “그런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초심을 유지하고 친인척 비리를 엄중히 단속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이 말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열망이 높다. 그는 “100% 노력해야 50% 지지를 받는다. 50% 지지 받고 나오면 잘된 케이스”라며 “박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 기울일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역대 대통령들 모두 훌륭한 업적이 많다. 공(功)과 과(過)가 있다. 공은 훌륭한 자산으로 삼아 계속 발전 시켜야 한다. 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역사적인 대통령이 돼 줬으면 한다”라고 당부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지난달 27일 고대 교우회관에서, 28일 관훈클럽에서 각각 ‘지도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펼쳤다. 김 전 의장은 지난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서 느낀 바를 특강에서 언급했다. 그는 “날씨가 참 따뜻했다. 이번 겨울 얼마나 추웠나. 5년 전 취임식 때는 굉장히 추웠다. 그래서 완전 무장했는데 이번에는 따뜻하더라. 박 대통령이 있는 대한민국이 5년 내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따뜻한 봄날 같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강을 통해 박근혜 정권 5년 동안 ‘따뜻한 봄날’이 되기를 기대했다. - 5년 단임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1987년 6월 항쟁에서 쟁취된 헌법체제가 완성된 이후 평화적 정권교체가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 직선제 아래 대통령들은 불행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랐다. 이는 헌법이 문제다. 헌법 중에서도 단임제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많이 가 있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후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려고 노력한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은 3년이 지나면 떨어진다. 제왕적 대통령이 됐다가 식물 대통령이 된다. 그래서 국회의장이 되면서 헌법을 고치자고 말했는데 여야 지도부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여당은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선거에서 패한 야당은 승복하지 않고 너무 강하게 나갔다. 개헌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안타깝게 좌초됐다. 뒤늦게 개헌을 얘기한 분들도 있었지만 순수성을 의심 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87년 체제’가 역사적 소명을 다한 만큼, 국가의 틀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짜야 할 최적의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때를 놓쳤다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안철수 현상’은 국민의 요구와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부인했다. “지난 2년간 정치권을 휩쓴 ‘안철수 현상’도 알고 보면 국민의 요구와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반(反)정치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정치 불신의 여파는 혁명처럼 강렬했지만 제도로 수렴되지는 못했다. 5년 단임제는 헌법적 안정을 가져왔지만 제도적·문화적으로 성숙한 민주주의 정착에는 한계를 보였다. 그 결과 이제는 정치 개혁이라는 말조차 염증을 느낄 정도로 정치권은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5년마다 반복되는 권력 교체는 민주주의 실현과 함께 진통과 혼란도 가져왔다. 여에서 야, 또 야에서 여, 보수에서 진보,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뀌면서 진영 간 싸움이 일상화됐다. 대통령 선거는 치열했고, 0.1%라도 앞선 쪽이 모든 걸 차지하고 장악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취임 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3년차로 접어들면 급격한 레임덕 현상이 나타난다. 대통령은 불과 2~3년 정도만 소신껏 일할 수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전 정권의 유력자들은 날개가 꺾이고 감옥에 가는 사람도 나온다. 국회는 대통령 선거의 뒤풀이·화풀이 장소로 변했다가 곧바로 차기 대선을 위한 전초기지로 전락한다. 대통령을 미는 세력과 이를 견제해 차기를 노리겠다는 세력 간의 용쟁호투가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여야 당내 강경파가 앞장서고, 막후에는 청와대와 시민단체가 도사리고 있다. 5년 내내 여야는 정권을 지키느냐, 빼앗느냐에 신경을 집중하고 올인한다. 국민의 삶을 제대로 살피고 돌볼 겨를이 없다. 유불리에 따라 주장과 논리가 뒤바뀌기도 한다. 팩트는 그대로인데 해석이 아전인수로 변한다. 국회는 말하는 곳이다. 그러나 선진 의회와는 달리 한국 국회는 말에 따른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책임져야 할 권한도, 관행도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은 독립적이거나 수평적이지 않다. 청와대에서 밀어붙이면 국회의원은 행동대원 역할마저 서슴지 않는다. 강경 투쟁과 선명성을, 차기 공천권과 지역에서의 당선을 보장하는 확실한 보험 카드라고 믿고 있는 여야 의원들이 어디 한두 명이겠나. 끊임없는 정쟁으로 국민은 피곤해 하고 무관심층은 늘어만 간다. 결국 ‘안철수 현상’은 정치권이 할 일을 하지 않아 자초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열었고, 직선제 이후 과반을 득표한 첫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을 ‘시대 교체’와 ‘국민 통합’이라고 말했다. “헌정사 65년간 우리는 위대하고 성공적인 역사를 썼다. 건국에 이어 전쟁을 거치면서도 땀과 피로 산업화, 민주화를 일구어냈다. 점진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확대하고 역사의 진보를 성취하며 우리는 드디어 동북아시아 처음으로 여성을 국가 최고 지도자로 탄생시켰다. 지금이야말로 그 동안 누적된 갈등과 대립, 모순과 부조리를 해소하고 패러다임을 바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복지 등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며 국가 발전보다 개인 행복에 우선적 목표를 두었다. 그 동안 대한민국은 남성 중심, 양적 사회, 하드파워 기반이었지만 앞으로 여성 중심, 삶의 질, 소프트파워 사회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여성 대통령은 이런 계기를 마련했다. 이것이 ‘시대 교체’로 가는 길이고, ‘국민 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융성을 경제부흥, 국민행복과 더불어 취임사에서 3대 지표로 제시할 때 가슴이 뭉클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기념비적 문화유산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물속에서 나와 햇빛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자체 간 물싸움, 문화재청의 미온적 자세, 상위 부처의 무관심으로 형체가 사라져가는 세계 인류사적 문화유적이 박 대통령의 문화 중시 정책에 힘입어 하루 빨리 되살아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국민 통합은 국정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통합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민 행복도, 창조 경제도, 중산층 70%의 재건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대선은 국민 통합의 당위성을 여실히 보여 줬다. 지금 대한민국은 갈라설 대로 갈라서고, 쪼개질 대로 쪼개졌다. 지역적, 계층적, 세대적, 이념적으로 분열돼 심각한 대립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건곤일척의 진영 대결을 끝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대화해 대타협, 대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권이 변해야 한다. 할 말이 많겠지만 먼저 손부터 내밀어라. 여권은 어엿한 승자다. 승자가 아량을 베풀어도 패자는 선뜻 화답하지 않는 것이 세상사다. 박근혜 정부는 48%의 국민을 최대한 포용해야 한다. 아픈 마음을 달래 주고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줘야 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가장 상위 개념의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립과 갈등 관계에 있는 대표자들을 불러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삼고초려가 아니라 그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통합은 대화해와 대타협의 결과다. 진정성을 가지고, 성과에 연연치 말고 최소공배수부터 찾아내면 머지않아 최대공약수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면 사회적 대타협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여성의 리더십, 따뜻한 모성애가 필요한 시점이다.” - 올바른 리더십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리더십은 박 대통령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지지율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원칙과 신뢰, 헌신과 정도, 품격과 절제는 오늘날 우리가 그를 선택한 이유다. 박근혜 리더십은 시간이 흘러야 빛을 발한다. 결코 단거리 주자가 아니다. 진정성, 일관성, 지속성을 증명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통의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도록 청와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청와대라는 최고의 참모 기능이 상호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상명하복식, 위계서열식으로 움직이고, 할 말 못하고 눈치 보기나 한다면 다른 조직들은 볼 것도 없다. 어떤 리더든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대통령은 신이 아니다. 문제는 대통령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시스템으로 보완해 주느냐가 중요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국민과의 소통, 국회와의 소통, 행정부와의 소통을 원활히 보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 집무실은 구중심처에서 벗어나 비서실과 같은 공간에 배치하는 것도 합리적인 방안이다. 대통령과 비서, 대통령과 장관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짧을수록 심리적 거리도 좁혀진다. 그래야 소통의 공간이 넓어진다.” - 신뢰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신뢰 사회 구축을 위해서는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고위 공직에 임하는 사람은 군대 문제, 세금 문제, 부동산 문제에 떳떳해야 한다. 만약 이 셋 중 하나라도 결격 사유가 있다면 스스로 고위직을 맡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정권을 위하는 길이고, 국민에게 도덕적·정신적 피해를 입히지 않는 일이다. 이 삭막한 세상에 온기가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능력보다 도덕성을 더 중시해야 한다. 국민들은 힘 있는 자, 가진 자의 솔선수범을 보고 싶어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1억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런 일이 좋은 전례가 되기를 바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공직 사회의 기본이 될 때 신뢰 사회는 구축될 수 있다.” - 2013년 현재 국가 사회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로 ‘변화’를 선택했다. “1960년대부터 40년은 그 전 수천 년 세월과 맞먹는 변화를 가져왔다. 21세기 10년은 20세기 마지막 40년의 변화, 그 폭과 수준을 앞질렀다. 박근혜 시대 5년은 지난 12년의 변화보다 더 세차고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1960년대 이전은 우마차 시대, 60년대부터 20세기 말까지는 기차 시대, 21세기 10년은 비행기 시대였다면 앞으로 5년은 제트기 시대가 될 것으로 본다. 지금은 미래를 향해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든 채 확실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 대한민국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동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고대 히브리어로 ‘레아’라는 말이 있다. 이웃, 친구, 동료라는 뜻이지만 간혹은 적, 타인이란 의미로도 쓰인다고 한다. 이웃이 남이 되고, 친구가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옛날 핍박받던 유대인의 각박한 삶에서 나온 이 단어의 모순적 의미가 오늘날 한국 현대 정치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유목 시대, 부족국가 시대의 사고와 자세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정치가 아니라 앞으로는 어제의 적도 대한민국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동지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자.” - 최정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