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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동행 취재]“아흔 살이 넘어도 호스피스 자원봉사하고 싶어요”

11년째 자원봉사, 환자들과 마음 나누는 문정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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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0호 김금영⁄ 2013.04.01 11:01:42

“연세가 아흔 살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한 지 24~25년쯤 됐죠. 그분들이 바로 제 롤모델이에요. 전 호스피스 25기에 들어왔으니 11년차예요.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하죠(웃음).”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11년째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문정순 씨의 고백이다. 지난 달 12일 세브란스병원 자원봉사자실에서 그와 만났다. 문 씨는 현재 환자들의 몸을 씻기고 가정에 있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날도 인터뷰에 앞서 환자들 머리를 감기고 온 뒤였다.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환자들은 문 씨 덕분에 병실에서도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바쁜 생활 속에서 11년이나 매주 시간을 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문 씨.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왔다. 다만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둘째오빠가 위암, 큰 아빠도 위암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암 환자를 돌보는 일에 관심이 생겼고, 후에 자연스럽게 호스피스와 인연이 닿게 됐다. 하지만 첫 봉사활동이 호스피스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호스피스에 오기 전에도 자원봉사를 했어요. 제일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한 곳은 고아원이에요. 너무나 편하게만 자라 만족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직접 반찬과 밥을 마련해서 공원에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죠. 그러다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을 보살피는 자원 봉사를 했어요.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일은 아주 세심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했어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의 필요성을 느낀 문 씨는 정보를 검색하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에 관심이 가게 됐다. 그래서 친히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호스피스 관련 교육을 언제 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 뒤 자원해서 들어왔다. 환자들을 마사지하고 목욕시키는 일이 그가 맡은 첫 일이었다.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하다 호스피스에 관심 두근대는 마음을 가지고 환자들을 찾아갔지만 반응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 하러 왔다”고 하면 마치 ‘죽음의 사자’가 온 양 겁을 먹거나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호스피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찾아갔다가 서운한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환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뢰와 정이 깊어져갔다. “환자에 따라 목욕 방법이 다 달라요. 아주 못 움직이는 분들에게는 바디 샴푸가 따로 있어요. 일반적으로 한 팀이 3~4명으로 구성되는데 팀원들과 같이 다니며 환자들의 머리를 감겨드려요. 환자의 몸이 불편하지 않게 조심조심하다보니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죠. 하지만 우리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시원하다’ ‘고맙다’ 말씀해주시는 걸 들으면 정말 보람이 느껴져요.” 몸을 씻기는 것이 주된 일이지만 문 씨는 결코 환자들의 몸만 씻기고 바로 돌아서진 않는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필요한 점은 무엇이고 심적으로 힘든 건 없는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문 씨의 몫이다. 또한 환자와 가족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다. 환자 뿐 아니라 보호자의 몸과 마음 보듬는 것 또한 필요하다. 간호에 지친 보호자들이 환자 앞에서는 차마 토로하지 못하는 슬픔을 들어주고, 또 그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환자를 돌봐준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힘을 낼 수 있는 시간이다. 결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런 과정을 독촉하지도 않는다. 어쩔 때는 1~2시간 눈만 껌뻑이고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답답해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기다린다. 문 씨는 “림프 마사지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하는 마사지를 말한다. 몸이 많이 아픈 분들은 이 마사지를 받는다. 이와 같이 몸 뿐 아니라 마음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이 필요하다”며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기다려드리는 것도 우리의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미리 봉사를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호스피스에서 자원 봉사하는 데는 큰 거부감이 없었다. 자신이 돌보는 환자를 식구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마치 부모님 같았고, 어린 환자들은 자식 같았다. 환자들 마음을 새털같이 어루만지는 봉사하고 싶어 이렇게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보살피다 보니 가슴 아플 때도 있었다. 문 씨가 봉사를 시작했던 초기에 혼자 앉지도 못해 항상 아기를 안듯이 품에 감싸 안으며 목욕을 시켜줬던 환자가 있었다. 이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했고, 자신이 돌보던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본 문 씨는 마음이 아팠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보살피는 경우가 많아 초반엔 마음이 무거웠어요. 하지만 제가 이러면 환자와 보호자가 어떻게 저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지금은 ‘그래, 먼저 하늘나라로 이사를 갔구나’ ‘나도 나중에 따라가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돌보던 분이 세상을 떠나면 제 나름대로 기도를 하며 추모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 씨가 호스피스에서 마음을 다시 굳게 다지고 힘내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도움 덕분이기도 하다. 문 씨에게 힘을 실어준 사람들은 바로 같이 자원봉사를 하는 팀원들이다. 인터뷰 중간 자원봉사팀 일원이 잠깐 방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서로 귤을 건네며 인사하는 모습이 화기애애했다.

“자원봉사팀 일원들과 사이가 정말 좋아요.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우리도 사람이다 보니 지칠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서로 모여서 힘들었던 점들을 이야기하면서 풀어주고, 위로도 해요. 항상 봉사가 끝나면 같이 식사하면서 ‘환자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도 하죠. 봄이나 가을 같이 날씨가 좋을 때는 하루 날 잡아서 산에 올라가기도 해요. 이런 팀원들 덕분에 피곤해 봉사하러 나오기 힘든 날에도 지친 몸을 저절로 일으키게 된다니까요(웃음).” 호스피스 자원봉사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 하길 문 씨는 환자와 보호자 뿐 아니라 자원봉사팀도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새 식구들이라고 말했다. 호스피스에서의 자원봉사 경험은 문 씨의 실제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공부한 정보들과 익히게 된 처치 방법은 가정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이나 가족 병간호에도 도움이 됐다. 지금은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문 씨의 간호를 받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고 항상 말하곤 했다. 문 씨의 자식들은 어머니를 보고 스스로 봉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딸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아 주위에서 ‘이상한(?) 아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막내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는데, 알고 보니 장애인 수영대회에 나가는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수영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큰아들은 장애인 시설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어떻게 했냐”며 감탄을 드러냈다. 시키지 않아도 봉사하는 삶을 스스로 살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문 씨는 마냥 대견했다. 아이들에게 더욱 모범이 되기 위해, 또 환자들에게 편안함과 격려를 전해주기 위해 문 씨는 오늘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환자들이 자신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원동력이라는 문 씨는 이처럼 환자들에 대한 걱정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 씨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환자들을 보살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진심 어린 미소를 보여주는 그들을 보면서 문 씨 또한 차유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제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자원봉사를 계속 하고 싶어요. 예전엔 정말 자원봉사자 수가 많았는데 점점 줄어든 게 아쉬워요. 솔직히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도 ‘많이 힘들진 않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겁이 나서 자원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결코 자원봉사는 무서운 것이 아니에요. 하면 할수록 더 마음도 훈훈해지고 행복해져요. 돌보기 어려운 환자를 만날까봐 걱정할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호스피스 자원봉사의 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어요! 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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