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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가정전문간호사 동행 취재]“태경이 통해 가정간호제도를 알리고 싶어요”

난치병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으로 마주한 엄태경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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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1호 김금영⁄ 2013.04.08 11:44:07

“요즘 태경이가 전동휠체어가 가지고 싶다고 난리에요.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이곳저곳 세상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이렇게 태경이가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준 가정전문간호사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보통 자식이 아플 때 잠시라도 눈을 떼면 잘못될까봐 과보호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2월 2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허금자(50) 씨는 아들 엄태경(20) 군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고도 밝혔다. 오히려 인터뷰 도중 혹시나 환자와 보호자의 아픈 상처를 자칫 건드리진 않을까 염려했던 건 기자였다. 태경 군과 어머니는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환하게 웃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허 씨는 “태경이를 통해 가정간호제도의 좋은 점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연신 강조했다. 허 씨 모자(母子)와 세브란스병원 가정전문간호사들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걸까. 1994년 12월 5일 건강하게 태어나 허 씨의 품에 안긴 태경 군. 태경 군은 어머니 허 씨에게 한없이 행복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모자에게 예고도 없이 2002년 4월 가슴 아픈 일이 들이닥쳤다. 태경 군이 리씨 증후군이라는 난치병 진단을 받은 것. 리씨 증후군은 세포내 유전자의 결함으로 에너지 생산과정 일부에 문제가 생겨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력 및 청력에 장애 등이 나타나면서 인지 및 운동 기능이 퇴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까지 완치법은 없다.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던 태경 군에게 찾아온 가혹한 일에 허 씨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남편도 회사 사정이 어려워 실직한 상태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병원에서 받아야 하는 검사는 많았다. 그래서 처음엔 검사를 고사하고 이것저것 좋다는 민간요법은 다해봤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이었다. 병실에 먼저 찾아와 준 가정전문간호사들 기억나 “지금은 이렇게 웃지만 그땐 많이 울었어요. 세상이 부정적으로 보였죠. 하지만 중환자실에 있는 태경이를 보고 정신을 차렸어요. 그리고 주위에서 많은 도움의 손길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방송 출연도 하고, 가정간호제도에 대해서도 소개받게 됐어요.” 희귀병이라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어 병원비가 부담이었던 허 씨 가족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아픈 태경 군의 모습을 세상에 내보이기 싫어 고사했다.

하지만 태경 군의 일을 알림으로써 희귀병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 한 달여간 병원 생활을 촬영했고, 2002년 7월 TV에 방송이 나갔다. 그런데 방송을 보고 태경 군의 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허 씨는 “주위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며 “이 세상에 너무 나쁜 사람들이 많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태경이의 이야기가 알려진 뒤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내준 따뜻한 관심과 사랑, 후원금 덕분에 태경 군은 계속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병원 생활을 잘 할 수 있었지만 퇴원했을 때가 걱정이었다. 입원과 퇴원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생활. 입원했을 때는 괜찮지만 집에 갔을 때 혹시라도 아들을 잘 돌봐주지 못해 건강이 나빠질까봐 염려됐다. 이때 또 따뜻하게 다가와준 사람들이 가정전문간호사들이다. “태경이가 병실에 있을 때 가정전문간호사 선생님들이 먼저 찾아와줬어요. 그리고 2002년부터 2011년까지니까…. 무려 10년이네요! 10년 동안 집으로 찾아와 태경이를 돌봐줬어요. 태경이가 3살 때부터는 증세가 악화돼 목구멍을 뚫어 기관절개관을 삽입하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지내야 해서 기관절개관 교환도 1주일에 한 번씩 꼭 해야 했어요. 자칫하면 몸 안에 염증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처치를 해줬어요. 극진히 돌봐준 덕분인지, 원래 태경이가 기관절개관과 인공호흡기를 빼고는 못산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다 빼놓고 있어도 괜찮아요.” 태경이의 학교까지 찾아가 간호해줘 무사히 졸업 가정전문간호사들은 태경 군이 평범하게 학교생활도 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도왔다. 보통 환자의 집에 방문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가정전문간호사들은 집 뿐 아니라 태경 군의 학교로도 찾아가 돌봐줬다. 허 씨는 “태경이가 아프다고 해서 결코 집안에 있기만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학교도 보냈다”며 “태경이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여기는 가정전문간호사 선생님들의 보살핌 덕분에 태경이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태경 군도 가정전문간호사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태경 군은 “선생님들이 정말 잘 해줬다”며 “가족 같은 분들이다”고 수줍게 말했다. 2011년 태경 군의 가정간호 방문은 종결됐지만 허 씨와 태경 군은 세브란스병원 외래에 올 때마다 가정전문간호사들에게 연락을 한다. 특히 태경 군이 가정전문간호사들을 보고 싶어 한다고. “태경이가 병원에 올 때마다 꼭 선생님들이 보고 싶다고 해요. 그래서 가정전문간호사실에 들르기도 해요. 저도 선생님들을 보면 너무 좋죠. 그런데 일 때문에 많이 바쁠 텐데 늘 전화할 때마다 얼른 오라고, 우리도 태경이 보고 싶다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정말 남 같지가 않아요.”

허 씨는 자신이 가정간호제도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이 제도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특히 중증 장애가 있는 환자들은 병원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다. 몸도 불편한데 인공호흡기 등 기계도 같이 이동해야 할 때가 많아 늘 조심스럽다. 장애콜을 이용할 수 있지만 병원 예약 시간에 제대로 맞추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에 직접 찾아와주는 가정간호제도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참 큰 힘이 된다. 이렇게 10년 동안 힘을 전해준 가정전문간호사들 덕분에 태경 군은 건강을 많이 되찾았다. 이는 태경 군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도록 키운 허 씨의 교육철학 영향도 컸다. 허 씨는 “태경이가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친다”며 “가출을 한 적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태경이가 더 건강해져서 당당히 세상을 살아갔으면 “태경이에게 세상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계속 바깥에 많이 데리고 다녔어요. 그런데 하루는 애가 가출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공원 산책을 갔을 때 2시간 동안 자유 시간을 줄 테니 정문에서 7시에 만나자고 했어요. 그런데 세상에! 애가 도망을 간 거예요(웃음). 나중에 지구대에서 태경이를 찾았어요. 하지만 전 이렇게 태경이가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고 더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뿌듯해요.” 아들이 아프다고 해서 품 안에 두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허 씨는 자꾸 태경 군에게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학교에서 가는 현장학습이나 소풍도 빠지지 않고 보냈고, 같이 공원 산책도 많이 했다. 그래서 태경 군은 몸이 불편하지만 결코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움츠리지 않는다. 혼자서 전철을 타고 김포공항을 갔다 오기도 하고,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탓에 바깥에 나갔다가 눈이 찢어져 돌아올 때도 있다. 혼자 광화문에 가서 좋아하는 CD를 사오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중증장애를 앓고 있다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이 그저 평범하게 자라준 아들이 허 씨는 대견하다. 태경 군이 처음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 주치의는 길어야 10년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했지만 그 한계를 허 씨 모자는 뛰어넘었다. 태경 군은 나중에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허 씨도 지켜볼 생각이다. “태경이에게 보내준 사랑에 감사드려요. 자원봉사자 분들이 와서 태경이와 놀아주기도 했었고, 후원금으로 수술도 받을 수 있었어요. 또 가정전문간호사 선생님들은 피곤한 내색 없이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결 같이 애써 줬어요. 밥 한 끼 정말 해드리고 싶어요. 예전에 방송에 출연했던 그때 그 태경이가 지금 이렇게 건강해졌다는 걸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태경이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건강해진 모습을 보고 중증 장애를 앓는 아이를 둔 부모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합니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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