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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동행 취재]“사랑과 위안 주는 작은 거인”

황애란 세브란스병원 아동청소년완화의료 가족상담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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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2호 김금영⁄ 2013.04.15 13:20:44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의 ‘작은 거인’. 황애란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 아동청소년완화의료 가족상담사의 별명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체구는 작지만 우리에게 주는 사랑과 힘이 한없이 큰 사람”이라는 뜻에서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관련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 별명의 뜻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하늘로 떠나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황 상담사의 작지만 큰 품에 안겨 울기도 하고, 해맑게 함께 웃으며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받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늘 동행하며 기자에게도 힘을 실어줬던 황 상담사. 이번에는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어떻게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일을 시작했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어떤 점들을 느꼈을까. 또한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 아동청소년완화의료 가족상담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에서 아동청소년완화의료 가족상담사를 맡고 있어요. 아동청소년완화의료는 2003년 3월 2일부터 시작됐어요. 세브란스병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분야를 도입했죠.” - 호스피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87년에 같이 근무하던 왕매련 교수님이 10년의 기도의 결실로 세브란스 호스피스를 간호대학에 창립하셨어요. 이 당시 제 안에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고통이 있는 분들과 함께 동행하는 일이 저에게 맞을 것 같아서 1989년 자원봉사자 교육을 이수하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첫 시작을 했어요.” - 아동청소년완화의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상담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간호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정신과 간호학 쪽을 공부하려고 했었죠. 그러다 의학의 기초학문인 생리학을 전공하면서 교수를 하게 됐지만, 40대 중반이 되니 남은 삶은 교수보다는 호스피스 전문인으로서 고통이 있는 분들과 동행하며 살고 싶다고 결단하게 됐어요. 그래서 교수를 2002년 8월 말로 그만두기로 결정했지만 구체적으로 호스피스의 어떤 영역에서 일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 탐색을 하던 중 1999년 가을, 연세대 간호대학의 이원희 교수님이 아동 호스피스 국제 학술대회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다고 가보라고 추천해주셨어요. 그래서 무조건 탐색을 위해 가봤는데, 환아의 부모를 상담하는 가족상담사가 있더군요. 그래서 ‘아하! 바로 이 가족상담사가 내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러나 실제로 부모 상담을 해 봐야 제가 이 일을 잘 해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는 것이기 때문에 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 파트의 유철주 교수님을 뵙고 이러한 뜻을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000년 1월부터 자원봉사자로 암으로 투병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이에 대해 체험적으로 확신을 다시 다진 후 2003년 3월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에서 아동청소년 완화의료를 개척하게 됐어요. 그 중간에 미국 버펄로 아동호스피스 센터에 3주 동안 가서 훈련도 받고 왔어요. 이 당시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실 실장님이었던 방사선 종양학과 이창걸 교수님께서 새로운 분야인 아동청소년완화의료를 시작시켜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 한국과 미국의 호스피스 모두를 경험해봤는데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한국은 부모님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아이들이 투병하는 동안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평안한 환경을 조성해 주세요. 인간의 욕구 중 안정과 안전 욕구는 신체적 욕구 다음으로 중요해요. 이러한 아이들의 욕구가 충족돼질 수 있도록 헌신하는 희생적인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렇게 까지 심리적으로 힘들지 않고 투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보호의 측면에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지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미국에 비해 아이들의 자기주도성이나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는 배려를 충분히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의 성숙은 약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처음 마주하게 됐던 환자와 가족들을 기억하나요? “물론이죠.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89년에 제가 자원봉사를 할 때 처음 만났던 아이는 청소년이었는데 집으로도 방문했었어요. 제가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그 아이가 임종할 때 목에 걸어 줬어요. 입관할 때도 아이의 어머니가 그 목걸이를 목에 걸어 줬고요.” - 첫 대상자의 경우처럼 호스피스 가족상담사로서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도 많았을 텐데요. “아이들이 죽는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에요. 길 가다가도 울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울고, 자려고 누워 있다가 울기도 했죠.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하고요. 제가 아이들의 가족은 아니지만 늘 함께 동행해 오기 때문에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어요. 사랑한 만큼 그 상실의 슬픔이 큰 것이니까요.” - 그런 힘든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울고 싶을 때 울고 싶은 슬픔의 감정을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호스피스 일은 대상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려고 애쓰고 그 고통을 내 안에 품고 사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요. 호스피스 전문인은 다른 직종의 전문인과는 달라서 대상자와 거리를 많이 두지를 않아요.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을 밖에서 에워싸며 함께 아파하며 동행합니다. 또한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삶의 소중함도 더 없이 느끼게 되지만, 죽음은 더 신성하고 경견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삶과 죽음을 통합할 수 있는 호스피스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게 제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 구체적으로 환자와 가족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요? “진단 초부터 시작해서 투병의 전 여정을 가족들과 동행합니다. 그러면서 필요로 되는 도움이 있다면 그 때 개입해서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가족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별화된 상담을 하게 돼요. 많은 경우 의료적 의사결정 과정도 지원하게 되고, 특히 임종 시에는 이별의식을 통해 부모와 자녀가 이별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이 과정이 한국의 부모님들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녀사별상담도 하고 있어요. 때로 놀이치료사나 미술치료사를 통해서 형제자매 사별 상담도 연결하고 있고요.” -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들도 많이 준비하던데… “부모 상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투병 중인 아이들의 마음도 알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실제로 힘든 투병의 여정을 거쳐 가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아동청소년 완화의료 봉사자, 놀이봉사자, 놀이치료사, 음악치료사, 미술치료사, 화가, 성악가, 피아니스트, 마술사를 통해서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이 분들 중 일부는 가정방문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요. 이 이외에 생일잔치, 돌잔치, 크리스마스파티, 산타와의 가정방문, 마술공연, 챔피언 프로그램, 등의 이벤트도 하고 있죠. 형제자매를 위한 집단프로그램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기뻐하고 눈에 총기와 생기가 가득할 때 저희들은 가장 기쁘답니다. 투병중인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몰라 고민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연세상담코칭지원센터장이신 권수영 교수님입니다. 권수영 교수님의 지원으로 2007년 아동청소년완화의료 놀이, 미술, 음악, 동작 치료팀을 만들었어요. 전문가 집단의 도움으로 아이들의 발달 단계별로 적합한 돌봄 방법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 앞으로 사람들에게 또 어떤 도움을 주고 싶나요? “우선은 저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아동 청소년들에게 좀 더 양질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저 스스로가 커가야 하겠죠. 그리고 함께 일할 동역자를 찾아 훈련시켜야 하고요. 그리고 앞으로 전국적으로 아동청소년완화의료를 보급하고 싶어요. 10년 동안 기초적인 기반은 확립했으므로 앞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아동 청소년이 필요시 이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인력훈련, 국민과 의료인의 인지도 향상 및 제도적인 지원 등을 위해 일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여러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겠죠?” 10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작은 거인의 행보. 그 행보에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모여 나중에는 아주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작은 거인은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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