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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동행 취재]“흔들리던 저와 딸을 바로 잡아줘 감사”

호스피스실과 봉사의 길 함께 하는 ‘혜인이 엄마’ 이윤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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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24호 김금영⁄ 2013.04.29 14:27:35

호스피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유독 자주 언급돼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 있었다. 아름이 어머니와 만났을 때도 “혜인이 어머니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이 점점 커져가는 가운데, 드디어 혜인이 어머니 이윤경 씨를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날 이 씨는 세브란스병원 언더우드 찬양선교단 일로 병원을 방문한 상태이기도 했다. “지금 세브란스병원에 30개 넘는 찬양단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전 2011년 8월부터 언더우드 찬양선교단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바빠서 가끔 거르기도 하지만 매주 목요일마다 병원에 와서 병동을 돌며 찬송가를 불러요. 분기별로 병원로비에서 연주회도 하고요.” 언더우드 찬양선교단에 들어가게 된 것은 사랑스러운 딸 혜인이 덕분이기도 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혜인이는 2010년 12월 29일 하늘나라로 떠났다. 어려서부터 믿음직스럽고 착했던 혜인이가 2009년 9월말 처음으로 몸에 이상을 호소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보고난 뒤 혜인이는 자꾸 팔에서 힘이 빠져 나가고 어지럽다고 말했다. 딸이 걱정됐지만 이 씨는 예정돼있던 해외출장 길에 올라야 했다. “항암 치료에 힘들어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딸” “혜인이는 늘 제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해외출장에 가있는 2주 동안 혜인이가 계속 아프다고 연락을 했어요. 원래 아파도 제가 걱정할까봐 잘 내색을 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더 많이 걱정이 됐죠. 그래서 일정을 마치고 얼른 귀국했어요. 공항으로 마중 나온 혜인이가 MRI를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다음날 이 씨는 혜인이를 데리고 MRI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갔다. 주치의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뇌종양이니 어서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혜인이가 걱정할까봐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 일단 남편과 친구들, 담임선생님에게 소식을 전하고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 회진을 마친 주치의가 이 씨와 남편을 조용히 불렀다. 주치의는 MRI 사진을 보여주며 혜인이는 뇌종양 가운데 가장 악성인 교모세포종이며 종양이 뇌간에 발생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면 1년까지 생존할 수 있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수개월 안에 사망할 것이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숨겼어요. 혜인이한테는 양성 종양인데 항암제를 복용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얘기했어요. 왜 혜인이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화도 났고 눈물도 많이 났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혜인이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어요. 아마 그 순간까지도 제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했던 것 같아요.” 혜인이는 5회에 걸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방사선 치료 또한 27회나 받았지만 차분하게 치료에 임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길었던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고, 항암제를 복용하면서 구토를 하고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엄마에게는 늘 웃는 얼굴을 보여주려고 하는 착한 딸이었다. 8월 중순 혜인이는 자가 호흡이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달게 됐다. 중환자실을 가는 상황도 자주 찾아왔다. 그러던 중 다시 혜인이가 의식을 잃었다. 그런데 이번엔 지금까지와 상황이 달랐다. 주치의는 혜인이가 곧 뇌사상태로 갈 거라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딸의 맑은 눈빛 간직할 수 있게 해줘 감사” “다행히 다음날 혜인이가 의식을 회복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겪고 나서 주치의 선생님이 호스피스실에 연결해주겠다고 했어요. 처음엔 호스피스가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암 병동에 있는 호스피스실을 찾아갔어요. 거기서 황애란 선생님을 처음 만났죠. 황 선생님과의 만남은 제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됐어요. 혜인이를 위해서 무엇이 더 올바른 판단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황 선생님은 늘 우리 가족을 배려하며 더 좋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지금까지도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특히 기억나는 것은 혜인이의 영적으로 그윽하고 깊은 눈빛을 그림에 담은 일이다. 안과의는 이미 시력을 잃은 상태라고 했지만 이 씨를 바라보는 딸의 눈빛은 너무나도 맑고 평화로웠다. 그 눈빛을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로 수도 없이 사진을 찍어봤지만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그때 황 상담사가 최대진 화백을 소개해줬다. “거주지가 일시적으로 제주도였던 최대진 화백은 바쁜 일정을 모두 뒤로 하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와 줬어요. 열심히 혜인이의 모습을 그려주셨죠.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예쁜 모습도 같이 그려줬어요. 그 그림이 지금도 집에 걸려 있어요. 정말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작품이에요.” 2010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눈이 많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12월 22일 저녁, 잠을 자던 혜인이가 살며시 눈을 뜨고 이 씨를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딸의 눈빛을 마주한 이 씨는 “혜인아, 이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자”며 눈을 감겨줬다. 그날 밤은 참 평온했다. 호흡수와 모든 수치도 일정하게 유지됐고 아무 일 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다음날 혜인이에게 유동식을 주려고 침상을 일으켰어요. 그런데 갑자기 혜인이의 얼굴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하얗게 변하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침대를 내리고 간호사를 불렀어요. 혜인이는 혈압이 떨어지고 자가 호흡이 전혀 없는 무의식 상태로 들어갔어요. 이젠 혜인이가 떠날 때가 됐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거죠. 1인실로 병실을 옮겼고, 황 선생님에게도 연락했어요.” 그리고 다가온 크리스마스엔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 했다. 분장을 한 산타클로스와 황 상담사 그리고 박옥자 자원봉사자가 병실로 찾아왔다. 혜인이의 오촌고모는 바이올린으로 크리스마스 캐럴과 찬송가를 연주했고, 모두가 함께 따뜻하게 혜인이 주위를 둘러쌌다. 모두의 사랑이 전해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28일에는 혜인이를 보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모두 병실에서 예배를 드린 뒤 혜인이에게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이 씨도 사랑스러운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이야기했다. “혜인아, 이제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돼. 엄마가 너를 너무 힘들게 붙들고 있었나보다. 이제 엄마는 괜찮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렴.” 가족들과의 인사 시간이 끝나고 마치 혜인이도 준비가 됐다는 듯, 밤 11시부터 산소포화도와 혈압이 서서히 떨어졌다. 그렇게 늘 사람들에게 한없이 사랑을 주고받았던 혜인이는 2010년 12월 29일, 15년 9개월의 생을 마감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파”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서 황 상담사의 조언을 구했다. 빈소를 차리지 않고, 2010년 12월 31일 100여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국환송예배를 드리며 혜인이를 보냈다. 딸을 편히 보내주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그토록 해왔건만 막상 죽음을 마주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혜인이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속에 남아서인 걸까. 이 씨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이때 황 상담사가 대준이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대준이를 처음 만나던 날, 이 씨는 마치 혜인이를 다시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준이를 위해 기도하고, 대준이 어머니와 말벗을 해주며 마치 자신이 치유 받는 느낌을 받았다. 대준이에 이어 12살 여자 아이 정미(가명)도 만났다. 정미는 혜인이와 같은 교모세포종을 앓고 있어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 이 씨는 병실을 홀로 지키고 있는 정미의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 자신이 거쳐봤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아이의 죽음에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아무런 지식과 정보 없이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죠. 저 또한 무지 속에 그저 아이가 무조건 나을 거라는 믿음으로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다가 소중한 시간들을 놓쳤죠. 다행히 황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는 선생님의 조언이 있어 선택의 순간에 덜 힘들었어요. ‘좀 더 일찍 선생님을 알게 됐더라면 혜인이에게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어요. 제 마음을 잘 이해해주면서도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따뜻한 판단을 늘 전해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이 씨와 황 상담사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이젠 보호자와 상담사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파트너로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길에 동행하고 있다. 그 길에는 혜인이도 함께 하며 방긋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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