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가면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이 있다. 누구라도 이곳에 들어서면 국내의 다른 병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이한 환경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마치 놀이동산처럼 꾸며져 있는 소아전용 응급실을 비롯해 휴양지의 펜션이라도 옮겨 놓은 듯한 통유리의 녹색정원에 파묻혀 있는 정신과 입원 병동이 있다. 암 환자를 치료하는 방사선 치료실에서는 환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된 조명이 켜지고, 모차르트 음악이 흘러나온다. 또 항암제 주사실에서는 환자들이 아이패드를 가지고 주사를 맞는 2~3시간 동안 드라마나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이 병원은 ‘환자 제일주의’를 지향한다. 즉 환자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병원 경영을 시작한지 15년 만에 대학병원, 중소병원, 지방병원, 요양원 등 5개 병원에서 1500여 병상을 보유한 의료계의 거물이 됐다. 이 이사장은 “혁신은 창의적이지만 지속성이 떨어지고, 헌신은 숭고하지만 답답하고 갑갑할 때가 많다. 얼핏 보면 혁신과 헌신은 대립적이어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하지만 이 둘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혁신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는 끊임없는 헌신이 필요하고, 헌신이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에 의하면 병원이라는 조직은 상당히 특이한 조직이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에 해당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이기도 하다. 의료와 관련된 면허만 58종에 이를 만큼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 경영을 통해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을 45% 이하에 맞추는 것이 해심이다. 만약 어떤 병원이 45% 이상의 인건비를 지출하게 된다면 이익을 내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외과 전문의 백수에서 최연소 병원장으로 이 이사장은 “나는 경영이 힘든 많은 병원으로부터 컨설팅 문의를 자주 받는다. 그런데 병원의 경영진단은 매우 간단하다. 인건비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면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는 같은 의료인으로서 매우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 병원의 경우 매출대비 인건비 비율이 약 85%에 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래서는 도저히 병원을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 199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외과 전문의를 취득했지만, 곧바로 백수신세로 전락했다. 당초 취직하기로 약속이 됐던 병원이 IMF 외환위기를 맞아 경영난에 빠지면서 그의 자리로 예정된 외과과장 자리가 없어진 탓이다. 그렇다고 다른데 갈 곳도 없었고, 대다수 병원들은 스펙이 화려한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이른바 ‘전문의 백수’ 생활이 수개월간 이어졌다. 이 이사장은 “아이가 첫돌을 맞았는데 월급봉투는 없고 집에 들어갈 힘도 나지 않았다. 가슴이 시려질수록 뜨거운 눈물이 솟아 나왔다”고 잠시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려 있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주변에서 부도로 망한 병원이 하나 있는데 인수해서 운영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결국 동네의원도 해본 적이 없던 이 이사장이 덥석 병원 경영에 뛰어들게 된 계기였다. IMF 직후여서 경제 상황도 좋지 않던 시기에, 인수하려는 병원은 노사분규와 더불어 부실한 의료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부채 등 문제 덩어리였다. 하지만 모든 부채를 떠안은 채 병원 건물을 담보로 해서 은행 대출을 받아 일단 문을 열고 진료를 시작했다. 그 당시 34세로 최연소 병원장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실상은 말 그대로 ‘화려한 빚잔치’의 주인공인 셈이다. 이 이사장은 병원 이름을 ‘인천사랑병원’이라 짓고, 병실에서 먹고 자며 100일간의 응급실 당직을 도맡았다. 혈기왕성한 젊은 맨주먹 하나 믿고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병원이 정상화될 때까지 직종 최저 월급인 80만 원을 받았다. 1992년에 사회운동 차원에서 발행한 의료계 대표 전문지인 ‘청년의사’ 창간 멤버들 위주의 우수한 의사들로 의료진을 꾸렸다. 첨단 의료장비에도 과감한 투자를 했다. 이에 따라 환자들이 제법 늘기 시작하면서 병원이 회생하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병원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을 무렵, 원래 강성노조로 소문난 노조원들이 노사분규를 일으켰다. 대학에 다닐 때 운동권의 조직부장이라는 핵심 위치에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노동자들 편에 섰던 그가 이제는 병원의 노동자들과 맞서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이사장은 “그 와중에 한 병실 환자에게 심장마비가 왔다. 계단을 날아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환자가 반응이 없었다. 전기쇼크 최대 용량까지 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잠시 후배의사에게 심폐소생술을 맡기고 허공을 쳐다봤다”면서 “머릿속에는 의료사고 보상하라며 관을 메고 시위를 벌이는 환자 가족 모습과 파업 중인 병원근로자들이 외치는 구호가 겹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파업 때문에 멀쩡한 환자 죽였다는 소문이 금세 퍼질 일이었다. 나의 도전이 여기서 끝나나 보다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전기충격기 스위치를 눌렀는데 기적같이 환자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분신이라도 할 기세로 병실을 나와 노조와 협상테이블에 앉았고, 마침내 그들과의 기싸움에서 이기며 파업은 종료됐다”고 말했다. 당시 130여 병상에 불과하던 인천사랑병원은 2011년 6월엔 400병상에 연매출 450억 원대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병원을 고치는 의사…환자를 위한 혁신과 헌신 이 이사장은 지난 2009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경영난을 겪고 있던 명지병원이 매물로 나온 것이다. 명색이 대학병원이었던 탓에 일부 대기업들도 관심을 보였지만, 경영 부진을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다들 입질만 하다가 물러났다. 이에 이 이사장은 부채를 떠안고 명지병원을 인수했다. “당시 최연소 대학병원 의료원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자칫 병원 경영에 실패라도 하면 잘 나가던 인천사랑병원마저 흔들릴 수 있는 대모험이었다”고 말했다. 명지병원을 인수한 후 처음 100일 동안은 매일 아침 7시에 회의를 열면서 1000여명의 의료진 모두와 일일이 면담했다. 그러면서 문제점이 튀어 나오면 그 즉시 개선책을 시행했다. ‘환자 제일주의’를 모토로 진료 시스템을 모두 환자 중심으로 개편하자 병원은 살아났다. 그가 인수하기 전인 2008년 721억 원이던 매출은 2010년에 876억 원으로 무려 22%나 껑충 뛰어 올랐다. 또 그 수익금을 모두 재투자해 암 센터와 응급의료센터를 새로 열었다. 이 이사장의 도전은 계속됐다. 2011년에는 충북 제천에 부도난 중소병원을 같은 방식으로 인수해 200병상 규모의 ‘제천 명지병원’을 열었다. 지방 병원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였던 소아과에 전문의를 대거 배치하자, 어린이 환자와 그 부모 환자들이 병원에 몰려와 개원한지 두 달 만에 병실이 꽉 차면서 의료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 명지병원의 성장신화의 배경에는 신종플루도 한 몫 했다. 신종플루가 대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고열과 기침환자들이 속출했지만, 당시 병원들은 신종플루의 진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신종플루 전담병원으로 소문나게 되면 일반 환자들의 방문이 줄어들 수도 있고, 기존의 암환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우리 명지병원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신종플루는 독감의 일종이기 때문에 특별한 병과 전문의가 필요치 않다. 따라서 모든 의료진이 돌아가면서 24시간 진료가 가능했고, 이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당시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던 신종플루 환자들이 구름처럼 병원에 몰려왔으며, 정성어린 의료진의 진료 덕분에 이들은 잘 회복되어 병원문을 나갔다. 오히려 이 일로 인해 의대입학 순위 전체 41개 대학 중 37위에 불과하던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결국 열정과 헌신이 혁신을 이뤄내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최근 의료계에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거세다. 기존의 의료 중심 패턴에서 환자 중심의 패턴으로 의료시스템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차병원에서 운영하는 차움의 경우는 병원에 호텔 개념을 도입했다. 즉 입원실을 객실의 개념으로 바꾸고, 외래 진료는 식당이나 커피숍 등으로, 건강검진센터는 컨벤션과 유사하며, 장례식장은 나이트클럽에 비유된다. 그리고 환자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의료진과 의료기구들이 입원실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이사장은 “궁극적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끄는 사람은 결국 리더다. 리더가 권한을 위임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는데, 리더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이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또 하나는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는 것도 리더의 몫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위기에 처하면 배신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리더는 이러한 직원들에게도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열정과 헌신으로 조직에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조언했다.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