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러브 액츄얼리’ 시즌이 다가왔다. ‘러브 액츄얼리’는 배우 휴 그랜트, 콜린 퍼스, 리암 니슨, 키이라 나이틀리 등이 출연하며,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지난 2003년 개봉 당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다음달 19일이면 10주년 기념 재개봉을 앞두고 신세대 숨은 커플들의 사랑이야기가 다시 쓰여 진다고 한다. ‘사랑은 늘 당신 곁에 있다’는 카피가 가슴에 팍 와 닿는 시즌이다. 비단 가을의 끝자락에 몰아쳐 오는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피해 지하철 역사를 가로질러 출구를 나오다보면 으레 껴안고 서로의 손목을 하염없이 붙잡고 있는 젊은 연인들을 자주 만난다. 어느 도시에서나 있을법한 풍경이지만, 특히 겨울철이 되면 서로의 체온으로 상대를 더 꼭 껴안고 헤어지기 아쉬운 눈빛을 교환하며 추운 겨울을 때로는 포근하게, 때로는 격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 든다. 최근 대학 동창 가운데 오랜 유학 생활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과 동시에 아이도 낳고 박사까지 취득해 잘나가던 회계사 친구가 있다. 그는 지난해 귀국 당시에는 아이도 잃고 사랑하던 아내와도 이혼한 상태로, 가진 건 달랑 기내가방 두 개와 골프 캐디백을 안고 십 오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다만 그가 아픈 이혼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건, 바쁜 일과 중에도 골프를 즐기는 취미가 있어서 뼈아픈 이혼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고국 땅에 돌아와서도 제일 먼저 한 일이 집을 얻는 일보다 가장 손맛이 느껴진다는 퍼터 구매였다. 여기 저기 친척 집과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도, 코스가 좋다는 골프장과 골프채에 목을 맸다. 그러던 그가 이년 만에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 그것도 8살 연하의 잘 나가는 모 기업의 의상디자이너라는데 새로운 프러포즈를 꿈꾸고 있었다. 그 자리에 필자도 초대돼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영화처럼 아름답고 에너지 넘치는 순간이었다. 가을 풍광이 아름답다는 강원도 일대 계곡 골짜기를 그대로 살려 코스를 설계했다는 한 골프장에서, 그는 새로운 여자 친구에게 보기 드믄 사이클 버디까지 선사하며 프러포즈를 했다. 그의 단단하고 야무진 각오는 거의 신의 경지였다. 인생에 있어서 기회인가 싶으면 위기가 찾아온다. 그는 유학생활에서 멋진 아내와 아이, 그리고 잘나간다는 회계학 박사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위기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그 아름답던 아내가 하루는 그의 집으로 남자친구를 초대해 뜨거운 정사 후에 다정히 외출을 서둘렀던 것이다. 그때 멋모르고 한낮에 집에 들어간 그로서는 일생일대의 큰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신이 그에게 고국 땅에서 새로운 배필을 대기해 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 여인이 나타났다. 이것이 기회인가, 위기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댓츠 오케이’다. 그렇다고 동고동락한 아내를 버려…! 그러나 아프고 지옥 같은 자연산 아내보다 언제나 생기로운 캐릭터로 젊고 활기에 찬 여인을 맞을 준비로, 한번쯤 백마 탄 왕자로 인생 구원 투수가 되어보는 것도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된다. 오늘도 그의 골프에 대한 광기어린 집념은 계속된다. 아니! 그는 골프를 통해 사랑의 영적 해방감을 얻은 듯하다. 아직도 그가 해낸 사이클 버디의 스코어 카드는 그녀의 책상위에서 방긋 웃고 있다. 그들은 올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약혼과 더불어 내년 봄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 손영미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정회원 (극작가/서울아트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