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 잘 타는 소녀 같은 여인’을 만난 배경이다. 필자가 유머작가이긴 하지만 꼭 웃기는 코미디 글만 쓰는 건 아니다. 간혹 진지함을 넘어 숫제 엄숙하다 싶은 글인 무덤이나 동상의 비문(碑文)도 더러 쓴다. 그런데 이 비문이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다.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의 경건한 마음을 담아야 하기에, 고인에 대한 존경의 염이 아주 고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구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쓴 비문 중 일부 내용이다. “소인(素人) 선생 계신 세상 그토록 환하더니, 아니 계시니 사뭇 어두워진 듯 하였어라. -중략- 세속에 물들지 않는 희디 흰 명주실 같아 素人이신 분이여! 아직도 이 나라 경제 부흥 염원, 다 떨치지 못한 사랑, 고고한 이상, 실천코자 하는 진실들이 심경에 가득하시겠지요. 영감으로라도 전해주시면 당신 품으신 소망 이제 살아있는 자들이 꼭 펼쳐드리겠나이다” 이 소인(素人)이 바로 경제기획원 장관에 경제부총리, 굴지의 은행과 대그룹 회장을 지냈으며, 문학가로도 뛰어난 글을 남긴 故 김준성 선생이다. 몇 해 전 선생의 1주기가 있었고 새로 비를 세울 때 영광스럽게도 필자의 졸문이 들어갔다. 그 일을 마음에만 두고 지내오던 차에! 한 달 전쯤이었을까? 분당의 ‘뱅 골프’에서 골프채를 새로 바꾸려는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을 만났다. “우리 아들과 며느리가 새로 이 채를 쓰는데, 거리가 꽤 나더라구요. 나도 거리 욕심이 있어서 호호~!”하는 이 여인을 보니, 한 눈에도 우아하고 아주 높은 지적풍모에 활기가 넘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대기석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골프 말고도 급기야 ‘인생’을 논하기도 했는데, 잠시 후에 나타난 뱅 골프 이형규 사장이 들려준 말에 필자의 가슴이 뭔가가 확 박히는 듯한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 이 여인이 바로 김준성 선생의 미망인 ‘이성호’ 여사이셨던 것. 사실 필자는 비문만 썼지, 유가족은 그때 처음 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연세가 자그마치 91세라니! 건강관리 하기에 따라 사람들의 나이가 달라 보이긴 하지만, 아흔이 넘은 분이 ‘젊디젊은(?)’ 필자랑 활발하게 ‘요즘 언어’로 토론을 하고, 무엇보다도 상당한 힘이 들어가는 골프를 거침없이 즐기신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사께서는 필자가 쓴 글이 적힌 그 비(碑)를 자주 쓰다듬으시며 부군을 그리워하신다고 하셨는데, 변변치 못한 작가에게는 큰 영광일 따름이었다. 이 분, 90세 넘은 이성호 여사를 ‘소녀 같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졸라대도 한사코 거절을 했는데, 그녀가 다음날 필자에게 전화를 했다. “어젠 함께 사진을 못 찍어 미안해요. 내가 미장원엘 못가 머리가 예쁘지 않았어요. 호호호! 담에 만날 때 꼭 찍어요! 그리고 내가 채를 바꿨으니, 이제 거리가 좀 실하게 나가겠지요?!” 필자가 이전까지 라운드를 한 최고령자는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이었는데, 그 분이 76세일 때였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나라 골프기자 1호에 골프칼럼니스트 1호이신 최영정 선생과 라운드를 하면서 그 기록이 깨졌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최 선생은 올해로 85세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확실치 않은 약속이긴 하지만, 91세의 이성호 여사와도 라운드를 하기로 했으니, 필자의 고령자와의 라운드기록은 또 갱신될 것이다. 필자는 사람들을 만나서나 골프관련 강의를 할 때, 늘 외친다. “골프의 매력은요! 누구나 즉,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시작해 걸을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기에 가장 오래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수십여 년 더 골프를 할 수 있는 필자 역시 참으로 행복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언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