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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 김은주 실버영화관 대표]노인을 위한 회사는 있다

사회적 기업으로 영화관 운영, ‘효행과 덕행의 표상’ 칭찬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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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68호 이성호 기자⁄ 2014.03.03 13:20:04

▲사진 = 정의식 기자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 있는 대한민국 대표 영화관 허리우드극장. 차츰차츰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늘면서 관객도 줄고 그 명성도 사그라지고 축소됐다. 하지만 2014년 현재 허리우드극장은 실버영화관으로 완전히 탈바꿈되면서 활기차게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실버영화관 관객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이곳을 그 누구보다 아끼고 계속해서 이 자리에 있어주길 바란다. 그 어떤 영화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따뜻한 정이 흘러넘친다.

단순히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라 인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적기업인 ‘실버영화관’의 김은주 대표는 늘 웃는 얼굴로 세심한 배려와 함께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관객들 또한 그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아낌없는 격려를 해주고 있다.

훈훈한 풍경이 곳곳에서 넘치는 실버영화관. 따뜻한 사람들의 공간,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이곳에서 김은주 대표를 만나봤다.』


지난 2009년 옛 허리우드극장에 실버영화관(단관 300석)을 개관한 김은주 대표(41). 그는 1999년 모 회사에 근무하면서 서대문아트홀(화양극장)과의 교섭을 성사시킨 게 계기가 돼 이 업계에 발을 디뎠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극장 운영이 잘 돼 흑자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안 하자 크게 실망해 사표를 내고 나왔다. 이후 한 기업이 지원을 해줘 스카라극장을 직접 오픈했다.

스카라극장의 경우에도 1년 만에 흑자를 냈지만 허무하게도 건물주가 건물을 허물게 됐으니 나가달라고 했다. 사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서대문아트홀에서 다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대표를 맡아 달라고 했다.

▲실버영화관을 찾은 관객들 모습.


수락은 했지만 김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당시 스카라극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나이는 대부분 70대였다. 극장이 문을 닫자 갈 데가 없어진 이들을 그대로 모른척 할 순 없었다.

“화양극장도 이미 직원이 꽉 차 있어서 채용할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분들과 같이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궁리 끝에 극장을 하나 더 내자는 생각에 허리우드극장을 맡아서 해보기로 한 것이지요”

2009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아 출발한 실버영화관의 탄생 배경이다.

임대로 들어왔으나 관객이 너무 없었다. 하루에 20여명이 전부였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시장조사를 한 후 주변 환경을 고려해 어르신을 위한 영화관을 만들기로 했다.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추세를 알고 있는데 허리우드극장을 맡은 것은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직원들이랑 같이 운영만 되는 정도면 만족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샘플로 영화를 보여드렸는데 너무 반응이 좋았습니다.


추억의 허리우드극장, 실버영화관으로 탈바꿈

‘그럼 실버영화관이다’는 생각이 번뜩 떠오르더군요. 극장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굳이 이곳에서 젊은 관객을 모으기 위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좋은 의미로 좋은 영화를 보여드리자고 콘셉트를 잡으니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옛 추억의 영화를 보여드리기로 했다. 가격도 돈 벌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니 2000원으로 하고 2009년 정식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실버영화관을 오픈했다. ‘벤허’로 처음 스타트를 끊었다. 고마워하며 우는 관객도 있었다.

▲사진 = 정의식 기자


지방에서도 어르신들이 올라와 영화를 관람했다.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정부에서 하는 극장인줄 알았다가 사정을 듣고 관계기관에 이런 극장도 있다며 칭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은 심각하게 어려웠다. 극장 월세만 1800만원이고 인건비·저작권료 등 각종 비용을 더해 연간 운영비가 7억원 가량 소요되는데 관객은 하루에 많아봐야 100명~200명이 왔다. 이에 매달 2000만원씩 적자가 났다.

더불어 서대문아트홀의 경우 3~4억원을 들여 재단장 했으나 1년 만에 재개발이 돼, 보상도 못 받고 정리됐다.
김 대표는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면서 집도 팔아봤고 차도 팔았다. 대출도 많이 해 금융신용도도 낮아졌다. 직원들은 김 대표를 포함해 총 16명인데 젊은 여직원 1명을 빼고는 다 70대 노인들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극장 운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하게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그의 노력을 알아 준 것이다.

SK케미칼·유한킴벌리·서울시 등에서 후원을 해줬고 초기에 비해 관객수도 많이 늘어났다. 관람객도 2012년도부터 부쩍 늘어 하루에 500명 가량을 기록하다가 현재 많을 때는 하루에 1000여명에 달한다. 떼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관람료가 2000원으로 저렴하다보니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매월 부채를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유지만 된다면 내년쯤 일단 빚에서는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수준이다.

“제가 실버영화관을 꾸려나가는데 저 혼자만의 힘이었다면 불가능 했을 겁니다. 관객 즉 어르신들이 이곳을 소중하게 아껴주시고 자신의 일 이냥 세세하게 신경써주고 관심을 가져주시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정(情)’이지요. 현재까지 공짜로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극장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걱정들 하십니다. 서명에 탄원서·편지 등을 써서 극장을 지원해 달라며 스스로 정부에 보내기도 하십니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관계기관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시켰냐고 하더군요(웃음). 이처럼 어르신들께서 이곳을 이토록 사랑하고 있다는 그 고마운 마음 탓에 극장을 버릴 순 없습니다. 막연하게 실버영화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비우고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진짜 잘해나가야 한다는 사명감보다 훨씬 더 웃도는 그 무엇인가가 저를 계속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관객인 어르신들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 간 힐링을 통해 극장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일일이 찾아오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말기암에 걸려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한 노인은 이곳 극장을 우연히 들리게 된 다음부터 힘을 얻어 자살할 생각을 접어버리고 매일 같이 찾아오고 있다.

또 외국으로 이민 간 노인들도 한국에 오면 실버영화관을 필수로 찾고 있다. 너무 많이 변해 버린 고국에서, 향수를 달래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힐링을 하고 간다.  


인간미·온정 넘치는 아름다운 문화공간 변모

오히려 관객들은 표를 끊으면서 수고한다고 사탕·초콜릿·사과·귤 등을 건네준다. 대보름 등 특정일에는 관객들이 주는 작지만 소중한 선물을 통해 오늘이 무슨 날 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대한민국에서 어느 극장주한테 관객들이 이러한 감사의 선물을 보내겠는가? 관객들은 김 대표에게 멋있는 일을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서로 극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외국에서도 실버영화관을 만들 테니 운영을 해달라는 제안도 들어오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취재도 많이 오고 있다.

“달라지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볼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처음에 제가 영화 좀 재미있으셨습니까? 하고 물으면 무뚝뚝하게 대답하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도 많이 하시고 얼굴도 한층 밝아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황혼이혼도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집에서 싸우고 나서 갈 데도 마땅치 않아 영화를 보러 혼자 왔다가 다음에는 아내를 데리고 옵니다. 처음에는 들어와서도 싸우지만 영화를 보고 나갈 때는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나오며 또 오자고 합니다”

황혼이혼을 생각할 만한 갈등이 있는 부부들에게 실버영화관이 갈등을 해소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 노부부는 영화관을 찾고부터 부부관계가 좋아져 자신들이 어디 놀러 가니깐 이 기간에는 틀지 말고 다녀오면 상영해 달라고 김 대표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70·80년을 열정적으로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어 색다른 이벤트도 없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부부나 친구들과 같이 영화를 보면서 즐기고 이야기 꺼리도 만들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실버영화관이다.

▲사진 = 정의식 기자


“부모님께서 모르는 분이든 아는 분이든 나이가 많으시면 무조건 인사를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공경의 가르침을 많이 받고 자랐기에 현재 어른들과 대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간혹 억지를 부리는 어르신들도 있지만 제가 나설 필요도 없이 주변에 다른 어르신들이 이 극장에 대한 스토리를 다 알기 때문에 당신 같은 사람은 나가라고 도와주십니다. 그럼 그분이 몰랐다며 미안해하십니다. 여기는 이처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가만히 있어도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일반 극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아껴주시는 관객들이 많다 보니 더욱 잘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든다는 김 대표.

“실버영화관의 입장료는 55세 이상은 2000원, 이하는 7000원입니다. 하지만 부모님 즉 55세 이상 어르신과 자제들이 함께 오면 똑같이 2000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젊은 사람들에게 효도 좀 하라는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셔와 좋은 가격에 좋은 영화를 보고 이후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사드렸으면 하는 취지죠”

실버영화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대학생들이 논문을 쓰기 위해 많이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들에게 한 달간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이유가 뭘까?


녹록치 않은 경영, 어르신을 위한 복합문화메카 구상

“수많은 학생들이 논문을 쓰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고 있지만 몇 시간 와서 어르신들을 인터뷰하고 제게 이것저것 묻고 가면 진실성이 없습니다. 자원봉사를 해보면 진실로 다가가게 되고 가깝게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말시키고 그러면 상영시간에도 못 들어가는 경우도 생겨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끝나도 보람을 느껴 계속하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젊은 층은 물론 노인들도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 순번을 정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모두가 함께하는 영화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 번은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70세가 넘는 할머니의 자제가 김 대표를 찾아와 확인서를 써달라고 했다. 병이 있는데 수술을 받으면 자원봉사 자리를 뺏길 거 같다며 수술을 안 하겠다고 한 것.

이에 수술하고 나서도 자원봉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며 확인서를 받으러 온 것이다.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 자원봉사인데 말이다.

“결국 수술 잘 받으셨고 한 달 동안 며느리와 딸이 번갈아 가면서 같이 오시다가 지금은 회복이 돼 혼자 나오십니다. 제가 물어 봤죠. 어르신 이게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왜 그러셨습니까? 했더니 ‘난 집에 있으면 바로 죽을 것 같아. 하지만 여기 나오면 너무 재미있어. 사람 사는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순간 그 분의 말씀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김 대표는 행복한 사람이다. 서로 고마워하고 보듬어 준다. 땅문서를 들고 와 사업에 보태라며 찾아온 분도 있지만 돌려보냈다. 또 맛탕을 좋아 한다고 했더니 토요일마다 맛탕을 들고 오시는 분도 있다. 어떤 분은 지나가는 말로 공갈빵이 맛있다고 했더니 매일 사오시기도 한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아 김 대표는 안 되겠다 싶어 오늘까지만 먹고 안 먹겠다고 말씀드린다.

“너무 고맙지만 딴 분들도 제게 뭘 줘야 한다고 생각할까봐 정중히 감사의 뜻을 표하고 거절합니다. 이것이 우리 극장의 매력이지요. 종로 한복판에서 우산 없이 비가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우산을 씌어주시고 또 지나가다 보면 어르신들이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저처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더 좋은 영화를 보여드리기 위해 지난해부터는 엉망이었던 영화의 번역을 새로 했다. 특히 자막도 1.7배로 확대했다. 

어르신들이 반응은 바로 나타나 관객수가 더욱 늘어났다. 이러다 보니 실버영화관으로부터 필름을 사가는 곳이 생겨났다. 여건이 나아진다면 더빙판도 계획하고 있다. 비싼 영화는 2년 판권에 3000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간혹 일반극장에서 필름을 사서 상영하지 않고 불법으로 DVD를 틀기도 하는데 이러한 불법행위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직하게 수입해 정직하게 상영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철칙이다.

최근에는 자매회사로 서울시·보건복지부와 함께 고령자친화기업인 도시락카페 ‘추억 더하기’를 만들었다. 옛날 오리지널 DJ가 레코드판으로 신청을 받아 음악을 틀어주며 양은도시락·잔치국수 등을 3000원에 팔고 있다. 일하는 분들도 70대 어르신 20명을 채용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곳에서 추억의 음악도 듣고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돈을 벌기 보다는 실버영화관에서 파생된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사회적기업으로서 관객료로 자생하고 여기서 돈이 남는다면 주변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서 이곳을 어르신들을 위한 복합문화메카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 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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