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을 앞둔 우주인 고산 (39)씨 근황이 궁금했다. 6년 전 최초의 우주인 자리를 이소연 씨에게 내줬고, 미국 유학 중 귀국했다. 비운의 우주인으로 불린다. 3년 전 이맘때부터 종로3가 세운상가에 모습을 보였다. 창업전도사로 변신했고 벤처기업도 세웠다.
그는 우주인양성 프로그램을 복기하기 싫을 것이다. 그렇지만 3년간 260억원이 든 국가프로젝트였다. 2007년 3만6200명의 경쟁을 뚫고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됐지만 정식비행을 한 달 앞두고 탈락했다. 이유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이소연 씨는 미국에서 MBA과정을 밟다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둘 다 우주프로젝트와 동떨어진 길을 가고 있지만 차이가 있다.
창업전도사·벤처기업 대표 변신…제조업 메카 세운상가에 둥지
고산 씨는 2010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러 갔다가 1년 만에 귀국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실리콘밸리에 세운 싱귤레리티대에서 우연히 창업프로그램을 접했다. 그게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렸다. 글로벌 시대정신은 취업이 아니라 창업이라는 걸 알았다. 제조업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다.
3년 전 귀국한 후 세운상가에 우리나라 최초의 팹랩(Fadlab)인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세웠다. 팹랩은 제조(Fabrication)와 연구실(Laboratory)을 결합한 개념이다. 제조업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시제품 제작방법과 공간을 제공한다. 창업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신생벤처 창업아이디어대회(스타트업 스프링보도)도 25회 이상 개최했다.
고산 씨는 직접 3D프린터를 제조하는 ‘A팀벤처’라는 벤처기업을 차렸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3D프린터시장에 당찬 도전장을 던졌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고산 씨가 주목한 3D프린터는 활자를 인쇄하듯 물체를 찍어낸다. 미래를 변화시킬 차세대 신기술이다. 더 큰 의미는 개인이 생산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최근 3D프린터를 제조업의 부활을 쏘는 신호탄이라 했다. 미래를 바꿀 100년 만의 산업혁명이라 불린다. 나노물질부터 전자제품, 집, 총기, 마약류까지 모두 만든다. 인공장기도 가능하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우주선에 3D프린터를 실어 보내기로 했다. 달 표면의 점토를 이용해 그곳에 건축물을 세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나이키신발 시제품 제작도 3D프린터를 이용하면 하루면 가능하다. 종전에는 꿈도 꾸기 어려웠던 일이다.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3D프린터는 ‘100년 만의 산업혁명’ 이끌 차세대 성장 동력
최근 개봉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아이언맨2’에 나오는 아이언맨 슈트도 3D프린터로 출력한 거다. 3D프린터는 창조경제를 이끌 신기술이다. 3D프린트시장 조사기관 홀러스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6년 후 시장규모는 무려 1조 달러(1121조원)에 이른다.
고산 씨가 둥지를 튼 세운상가는 제조업의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메카다. 1968년 대표건축가 김수근 씨가 설계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김 씨는 1966년 건축문화지 공간(SPACE)을 창간했다. 공간은 현재 CNB미디어가 발행하고 있다. 세운상가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부흥의 본산이다. 핵무기 빼곤 못 만드는 게 없는 제조업의 성지(聖地)였다.
세운상가의 잠재력은 놀랍다. 사통팔달 서울 중심부 100만평이 넘는 땅에 1000개가 넘는 테크숍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세계적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창조경제는 도시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했다. 도시 자체가 창조경제를 담는 그릇이라 했다. 세운상가의 부활은 창조경제의 활력이다. 제조업은 국가경제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우주인 고산 씨의 무한변신은 많은 걸 시사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필요하다. 묵은 마음을 비워야 새로워진다. (허밀청원 虛密淸圓)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