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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큐레이터 다이어리]감동에 집중하다

갤러리 공간 한 가운데 서서 산림욕 하듯 작품의 기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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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3호 신민 진화랑 실장⁄ 2014.06.19 13:14:09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오랜 시간 쌓여져 온 사랑 어린 우정 혹은 우정 어린 사랑이 뜻하지 않게 무너져 버렸을 때 밀려오는 먹먹한 가슴은 그 무엇으로 어루만져야 할까. 또 다른 관계의 우정, 새로운 사랑이 망각의 시간을 돕고, 위안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인연이 아닌 것을 붙들고 있는 것은 집착이며 인생은 흐르는 데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진리라는 공자님 말씀. 부처님 말씀, 하느님 말씀이 지당한 줄은 알지만 도저히 외면하기 힘든 것이 있다. 

내 진심과 열정을 나눈 그대는 이 지구상에 하나라는 유일무이함. 흘려보내면 다시는 할 수 없는 그 관계 속의 유일한 경험이 너무도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는 추억에 대한 예의를 어디까지 지켜가야 할지 혼란스럽다.
함께 하는 것이 서로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시점이 왔을 때 놓아주는 것이 배려인지 노력을 조금 더 해보는 것이 진정 현명한 길인지 선택하기란 때마다 어렵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아름다운 기억, 배 아플 정도로 깔깔대던 웃음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서로를 등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현실은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일처럼 느껴지는 오늘이다.

아무리 가슴이 아린 날일 지라도 나는 살아가야 하고 작품 앞에 선다. 작품을 바라본다. 관객이 발걸음 하기 전 갤러리 공간 한 가운데 서서 산림욕을 하듯 작품의 기운을 받아본다.

시간이 멈춘 듯 한 순간. 이 작품을 만들어내기 까지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작업실에서 나눈 진지한 대화 속 피어났던 에너지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기도 하고, 오픈식에 서있던 작가 가족 분들의 표정과 박수 소리, 한참 어른인 분들께서 깍듯이 내게 감사하다고 인사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청승맞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초대장은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시간, 매번 쓰는 보도자료 이지만 또 다시 긴장하고 머리를 조아리던 시간,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도록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설레어 하고, 홀로 디자인을 할 때 맘껏 욕심 부리던 시간. 모든 순간의 단편 영상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면 뭉클한 하나의 드라마다. 
 
내게는 매달 일어나는 일이지만 각각의 전시가 누군가에게는 일생에서 한번 있는 기념적인 일이다. 이벤트가 막을 내리면 작가는 세상과 소통하는 동안 흥분되었던 가슴을 가라앉히는 과정에서 비롯한 공허함을 다시 작업으로 채워나간다.

▲국립중앙박물관 오르세미술관전 관람객. 사진 = 왕진오 기자


작가는 어느 날 느꼈던 감정을 유일하고 영원한 물질로 남긴다. 붙잡고 싶은 생각을 담는 몸부림.

예술의 시작은 흘려보내기를 언제나 어려워하는 여린 인간의 불안감과 집착을 달래는 것에 있을지 모른다. 작가들이 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를 풍기는 것은 아마 그들은 자신의 혼을 흠뻑 작품에 쏟음으로써 추억과 감정을 완벽히 영원한 소유물로 남기기에 집착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작가의 작업실은 도를 닦는 공간

감정에 대해 정성을 쏟는 정도가 작가들을 따라갈 자 없지 않은가. 작가의 작업실은 도를 닦는 공간이다. 고뇌에 집중하고 그것을 토해내는 시간을 누구보다 길게 갖는 만큼 그는 맑고 가벼운 영혼으로 돌아가므로 결국 희망과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슬픔과 환희 모두를 창조의 원천으로 쓰고서 그들이 얻는 자유는 결과적으로 세상 곳곳에서 많은 이들의 감성을 움직인다. 

영화 ‘역린’에서 그려진 왕의 지혜는 내가 겪는 혼란스러움을 초월하게 해준다. 왕(정조)은 가족을 비롯하여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온갖 배신과 암살 위협 속에서 죽기 살기로 버티는 비극적 운명의 존재다.

하지만 그는 하루하루를 육체와 정신을 단단하게 하는 시간으로 채우며 인내했고, 그 내공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웠다.

▲영화 ‘역린’ 스틸 컷.


그는 상대가 자신에게 가장 악한 순간에 한 번 더 선택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가장 선한 자기편의 최고로 만들었고, 자신의 곁을 지켜온 사람을 끝까지 믿어주고 존중했으며,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는 자들은 과감히 제거하거나 제 발로 사라질 수 있도록 했다.

오늘의 적을 내일의 내편으로 만드는 지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한다면 보낼 수 있는 판단과 결단의 지혜는 다음 구절이 영감의 원천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_중용 23장

내가 행복할 길은 여기에 있다.

- 신민 진화랑 실장 (정리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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