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3호 정지우 중국문화 동시통역사⁄ 2014.08.28 09:00:0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중국친구 : 지에지에, 쩌 스 워 게이 니 따이 더 찌엔민엔리.( 누나, 이건 만남 기념 선물이에요. 姐姐这是我给您带的见面礼。)
나 : 아야, 니 타이 커치 러. 라이 찌우 라이 마. 따이 쩨이시에 깐 마. (어머나, 너무 예의 차리는 거 아니야? 그냥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이런 걸 또 챙겨왔어! 啊呀,你太客气了。来就来嘛,带這些干嘛呢!)
중국친구 : 지에지에, 니 차이 커치 너. 니 나머 망 하이 초우 콩 따이 워먼 왈. 리 칭 칭이 쫑 하 (누나야 말로 너무 예의 차리는 거 아니에요? 바쁜 데 시간 내서 우리와 놀아주시고. 선물은 약소하지만, 정은 깊습니다. 하하! 姐姐你才客气呢。你那么忙还抽空带我们玩儿。礼轻情义重哈!)
전화벨이 울린다.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다. 이번에도 역시 지인이 한국을 방문하니 의전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다. 필자는 바쁜 사정을 설명한다. 비용을 지불하고 대행사에 의전을 의뢰하는 방법을 안내했다. 그러나 “한국에 아는 사람이 너 밖에 없으니 꼭 도와 달라”는 청에 무너지고 만다.
처음엔 부탁을 받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국인들은 얼굴이 두껍나? 본인이 오는 것도 아니고, 사돈의 팔촌이 올 때도 부탁을 하다니!’.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을 공항 픽업, 시내 쇼핑 관광, 식사대접까지 원스톱 풀코스로 에스코트 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필자는 오지랖이 넓고 친화력이 좋아 중국인들로부터 쯔라이쇼우(낯을 가리지 않고 바로 친해지는 성격-自来熟)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부탁으로 모르는 사람과 며칠을 함께 보낼 생각을 하니 머리가 무겁다.
한 두 번씩 부탁을 들어주다보니 신기한 공통점이 하나 알 수 있었다. 누구의 소개로 오든, 중국인들은 생면부지인 사람을 십년지기 친구처럼 반가워하고 살갑게 군다는 것이다. 쯔지런(자기사람-自己人)과 쥐와이런(남-局外人)을 확실히 구분하는 문화 때문이다. ‘지인의 친구는 곧 나의 친구, 지인이 소개한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강하다. 또 이런 배경과 함께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빨리 안면을 트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찌엔미엔리(见面礼)다. 이는 중국인의 선물 문화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건네는 최초의 선물이다. 상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주고, 선물을 받는 것이 곧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순식간 어색함의 벽이 자연스레 무너진다.
필자도 처음에는 초면에 선물을 받는 것이 어색하고 민망해서 거절했다. 그 때마다 상대의 정성과 마음을 거절하는 것으로 오해받았다. 상대가 필자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미안해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다.
학습 경험을 통해 중국 출장 시 계획에 없이 만나게 될 누군가를 위해 가벼운 선물들을 준비했다. 중국인들과 똑같이 “찌엔미엔리(见面礼)”라며 건네면 아주 좋아했다. 필자를 예의가 바른 사람으로 기억했다.
중국은 산아정책으로 인해 한 가정에 한아이 밖에 낳을 수 없다. 때문에 인공적으로 혈연을 만든다. 그것이 중국 비즈니스의 핵심인 꽌시다. 이 꽌시의 물꼬를 트거나 돈독히 하는 윤활제가 선물이다. 중국에서는 선물하는 것을 ‘쏭리(예를 보내다-送礼)’라고 해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지켜야할 금기도 많다.
예를 들어 하오스쳥슈앙(好事成双-좋은 일은 쌍으로 생긴다)이 있다. 와인, 빼갈, 월병 등 선물 때는 개수는 꼭 짝수로 맞춘다.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모어리화(茉莉花-쟈스민)차는 선물하지 않는다. 쟈스민을 뜻하는 ‘모어리(茉莉)’는 이익이 없다는 ‘末利’와 음이 같기 때문이다.
숫자 8과 9에 얽힌 선물문화
숫자를 이용하여 선물하기도 한다. 홍콩 여행 시 명품 몽블랑 만년필 매장에 들어갔다. 바이어에게 선물할 제품을 찾았다. 점장은 특별히 제품 시리얼 넘버를 숫자‘8’이나 ‘9’가 많이 들어간 것을 찾아와 보여주며 말했다. “숫자 8은 파차이(대박나다-发财)를 뜻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선물하기 좋습니다. 숫자 9는 오래 지속되는 ‘지우(久)’와 동음이라 오랜 파트너십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보낼 수 있습니다.”
중국 명품 시장의 활성화 제일의 기여는 ‘선물용 구매’라는 재밌는 조사 통계도 있다.
한국에서는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찌에미엔리(见面礼)다. 단어에서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듯이,시엔 “리” 호우 “리” ( 先“礼”后“利” - 먼저 “예(선물)”이 있어야 “이(이익)”이 있다.) 혹은 요우 리 차이 요우 리 (有礼才有利 - 예의(선물)이 있어야 비로소 이익이 있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다. 중국식으로 먼저 선물을 건네면 일이 한결 수월해 진다. 한국식으로 프로젝트가 끝난 후 감사의 의미로 담당자를 찾아가면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다.
중국인은 언어유희를 굉장히 즐긴다. 선물은 상대방이 거절하지 않는 적정선에서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적절한 멘트도 곁들이면 좋다. 예를 들어, 리 칭 칭이 쫑 (礼轻情义重-선물은 약소하지만, 정은 깊습니다), 리 부짜이 뚜어, 다 이 저 링(礼不在多, 达意则灵- 선물은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전달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리 부짜이 쫑, 츄안 칭 저 싱(礼不在重, 传情则行- 선물을 과한거 보다는 정을 전달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등의 코멘트다. 이런 말과 함께 선물을 전달하면 기분 좋게 받아들일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는 선물을 보내는 입장에서도 선물의 경중, 가격보다는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 된다. 쌍방 모두에게 마음을 주고받는 정겨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비즈니스가 좀 더 순조롭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윤활제, ‘예(送礼)’를 보내보자!
정지우 = ‘중국문화 동시통역사’로 중국 비즈니스 스킬 전문가다. SBS, KBS, MBC 등 공중파 방송의 동시통역사로 인기가 높다. 대법원 등의 관공서에서 통역을 하고, 삼성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CJ 등 글로벌 기업에서 중국 비즈니스 실전스킬에 대해 열강하고 있다. 중국 북경대 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중국 교육부가 인정한 유일한 외국인 이(異)문화 코칭 전문강사다. 주중한국대사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담당관, 인천시 중구청 국제교류담당관을 지냈다. www.chinacs.kr
- 정지우 중국문화 동시통역사 (정리 = 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