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파워열전 - 여우별컴퍼니 정진국 대표·홍연우 이사]“힘들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연극 마니아 덕분에 못 떠나요”
연극 ‘애정빙자사기극’ 시즌3 돌입, 정 대표가 실제 경험에서 아이디어 얻어
▲공연 제작사 여우별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는 정진국 대표(왼쪽)와 홍연우 이사. 사진 = 김금영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사랑하는 연인이 날 가차 없이 버렸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① 펑펑 울며 매달린다. ② 전화 받을 때까지 계속 연락하고 집 앞에 찾아간다. ③ 쿨하게 그냥 잊고 내 갈 길 간다. ④ 감히 날 버려? 복수를 계획한다. 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겪었을 문제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사랑 앞에서는 늘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내 마음이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혼란스럽다. 이 모든 선택지가 연극 ‘애정빙자사기극’에 담겼다.』
애정빙자사기극은 두 남녀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여진’은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한다는 이기적인 면모 때문에 남자친구 ‘승배’에게 차인다. 하지만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여진은 승배에게 계속 매달리다가 승배의 새로운 여자친구 ‘아름’의 전 남자친구 ‘태양’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여진은 태양을 이용해 승배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의외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사랑 이야기를 여우별컴퍼니 정진국 대표와 홍연우 이사가 애정빙자사기극에 담았다. 이 공연은 2012년 첫 선을 보인 뒤 관객들의 공감을 많이 얻어 재정비를 거치고 업그레이드돼 현재는 시즌3까지 왔다. 정 대표가 자신의 실제 연애 경험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본 작업에 참여했다.
처음엔 춘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룻밤 사랑이야기를 그리려 했는데, 배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작가들과 회의도 거쳐 애정빙자사기극의 첫 대본이 완성됐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완성된 대본을 더 좋게 만들고자 현재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차 시즌까지 오면서 이전 시즌들과 비교해 변화를 거쳤어요. 극 중 인물들의 관계를 관객들이 봤을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정했죠. 그리고 특히 많은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 공연의 경우 극 중 여러 역할로 등장하는 멀티 배우로 웃음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애정빙자사기극에는 멀티 배우가 없어요. 이야기를 풀어가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주고 싶었거든요.”
▲창작 연극 ‘애정빙자사기극’은 엽기발랄한 두 남녀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달콤씁쓸하게 담은 작품이다. 사진은 공연 장면. 사진제공 = 여우별컴퍼니
‘애정빙자사기극’의 목표는 공감과 웃음
이들의 말처럼 애정빙자사기극엔 실제로는 섬뜩할 상황이 무대 위에 이야기로 풀어지면서 재미있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난다. 한 예로 여진이 술에 취한 태양을 자신의 집에 끌고 와 다음날 깨어난 그에게 “우리는 전생의 인연”이라며 “전생에 당신은 바보온달, 난 평강공주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대뜸 들이대기 시작한다. 우연히 아름의 핸드폰을 주워 태양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여진은 그가 지니고 있는 습관을 모두 꿰고 있다.
태양의 입장에서 보자면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을 납치한 뒤 자신의 세세한 습관까지 모두 달달 외는 섬뜩한 상황이다. 실제라면 스릴러 장르가 될 법한 이 상황이 애정빙자사기극에서 처음엔 코믹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 두근거리는 모습으로 펼쳐진다. 점점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두 커플의 모습은 달콤하고도 씁쓸한 사랑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울리고 웃긴다.
심각하고, 어렵게 보는 게 아니라 공연장에서 편한 마음으로 실컷 웃고 즐기다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공연의 목표다. 대학로에 너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공연만 난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데 정 대표와 홍 이사는 “영화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그 중 코미디 영화도 하나의 장르로 인정해주는데 공연 또한 로맨틱 코미디를 하나의 장르로 인식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공연계에서 너무 쉽고 가볍다고, 그래서 진정한 연극이 아니라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진지하게 어떤 문제의식을 제시하고 관객들이 이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연극이 필요하긴 하죠. 하지만 바쁘고 각박한 생활에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해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연극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극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고, 보면서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런 것만이 연극이다’는 식으로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해요.”
이들은 “영화관은 영화를 장르별로 볼 수 있게끔 마련돼 있는데, 공연계에서도 이런 형식이 갖춰졌으면 한다”며 “공연 예매 사이트를 보면 수많은 공연이 나열만 돼 있다. 이 공연들을 장르별로 목차를 나눠 관객들이 다양한 장르를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고 입을 모았다.
질문을 하나 던질 때마다 정 대표와 홍 이사의 답변은 거의 일치했다.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라고 느껴졌는데 이들이 어떻게 모여 공연 제작사 여우별컴퍼니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원래 이들은 대표와 이사로서가 아니라 같은 배우로서 처음 만났다. 그런데 첫 인상은 둘 다 별로였다고.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순정만화’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 “연기를 너무 잘 해서 얄미웠다. 그때는 별로 안 친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던 중 정 대표가 가을엔터테인먼트에서 배우에서 연출로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여기서 연출로서 처음 애정빙자사기극을 선보였는데 시즌2 공연 때 홍 이사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여우별컴퍼니의 정진국 대표와 홍연우 이사는 연극 ‘애정빙자사기극’ 연습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왼쪽부터 정진국 대표, 배우 황희정, 황영준, 권용인, 홍연우 이사, 배우 김지안. 사진 = 김금영 기자
배우에서 공연 제작사 대표·이사로 새로운 길
열정적으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창작 공연에 투자의 손길이 잘 이어지지 않아 공연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애정빙자사기극이 앞으로 더 잘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직접 올해 초 공연 제작사를 차리고 이 공연을 다시 살려냈다. 그리고 정 대표의 생각에 동의한 홍 이사가 여우별컴퍼니의 파트너로 함께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로 내여페극장을 운영하면서 여우별컴퍼니의 대표 브랜드 공연이라 할 수 있는 애정빙자사기극을 선보이고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공연의 연출을 같이 맡으면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보완해주죠. 둘 다 배우 출신이기에 연극 출연 배우들에게 직접 연기 지도를 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연극 을 사랑하고, 계속 공연계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같아요.”
인터뷰 외 다시 공연장을 찾았을 때 이들은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한창이었다. 공연장에 배우들과 모두 함께 둘러앉아 애정빙자사기극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했고,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연극에 대한 이 열정이 계속 무대를 꾸려갈 수 있는 이유다.
“연극을 만들면서 때로는 화나고, 속상하고, 힘들 때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흥행이 저조하면 공연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연극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못 떠나고 계속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극을 보고 ‘정말 재밌다’는 그 한 마디가 다시 가슴을 뛰게 하죠. 대학로에서 창작 연극으로서 그래도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하고 더 열심히 연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작품을 계속해서 쉬지 않고 선보이는 게 앞으로의 목표예요. 내년 5월정도 신작을 선보일 계획이고요. 열심히 연극을 만들어 10년 뒤에도 자랑스럽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현재는 여우별컴퍼니의 대표와 이사지만 완전히 배우의 길을 접은 게 아닌 이들은 “‘마지막 공연 땐 우리가 무대 위에 오르자”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고 한다. 애정빙자사기극이 계속 사랑을 받고 몇 십 년 뒤에도 공연돼 지금은 농담과도 같은 이 말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애정빙자사기극은 현재 서울 대학로 내여페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서울 뿐 아니라 광주와 대구에서도 공연 중인데, 배우 김지안, 장지훈, 이준희, 권용인, 최지영, 김보람, 허인범, 황영준, 마미선, 황희정, 이승하, 서원호 등이 출연한다. 공연 문의는 070-4870-1931.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