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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눈시울을 붉혔다. 라디오와 TV로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국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음식점에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대한독립만세에 버금가는 특종이다. 석유 발견 뉴스를 확인하느라 문의가 빗발쳤다. 1976년 1월 15일 중앙청(현 청와대) 제1회의실에서 열린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말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된 건 사실이다.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분석한 결과 매우 좋은 석유로 판명이 됐다.” 갖가지 발굴얘기가 쏟아졌다. 모 장관은 청와대에 공수된 원유를 접시에 담아 맛보기도 했다.
40여년 만에 달성한 박정희 대통령의 꿈…세계 95번째 산유국
이렇듯 온 국민이 유전개발에 신경을 곤두세운 건 제1차 오일쇼크 때문이다. 1973년 10월 석유는 전쟁무기로 둔갑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이 전격적으로 석유 무기화를 선언했다. 그해 겨울 국제 원유가는 연초 대비 네 배나 뛰었다. 중공업 위주로 행보를 디딘 조국근대화가 삐걱댔다. 이 와중에 유전개발 특종은 구세주였다.
그러나 그토록 갈망하던 산유국의 꿈은 끝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1977년 8월 11일 휴가지 진해에서 이례적으로 특별기자회견을 가졌다. “포항 석유개발은 기름이 조금씩 나오고 있으나, 희망은 희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에 갇힌 지 1년 7개월 만에 깨어났다. 안타깝게도 경제성 때문에 유전개발을 지속할 수 없었다.
건국 이래 우리나라가 최초로 경험한 유전개발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 일이 세삼 주목받는 건 자원개발은 국가개조를 앞당기는 중요한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99%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석유수입 세계 5위, 석유소비 세계 8위다. 석유수입에 연간 100조원 이상을 쓴다. 수입량은 9억5000만 배럴이 넘는다. 상암월드컵경기장 67여개 채우고도 남을 양이다.
장황하게 40여년이 지난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과 산유국의 꿈을 들먹인 건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원외교 실상과 비전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국격과 국익,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MB정부 자원외교가 유감스럽게도 정치게임에 휘말려 국정조사를 받게 됐다.
MB정부 자원외교 국조 유감…유가하락 시기는 자원개발 적기
2004년 7월 11일 우리는 세계에서 95번째 산유국이 됐다. 울산 동남쪽 해상 동해-1 가스전에서는 원유와 가스가 10년째 솟고 있다. 40여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꿈과 회한이 묻힌 곳이다. 중동의 검고 끈적한 원유와 달리 맑고 투명하다. 울산시 34만 가구에 매일 공급되고 있다. 전체 수입분(250만 배럴)의 0.4%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수입국으로서 의미가 크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와 가스는 수입품의 10배 효과가 있다. 생산량 1000배럴은 1만 배럴과 같다. 동해-1 가스전은 10년간 17억5000만 달러의 수입대체효과를 냈다. 3만5000명의 고용창출효과와 2조원의 부가가치를 생산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가스와 원유를 뽑아 올리는 플랫폼을 설계했고 현대중공업이 제작했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최첨단 해상 유전이다.
MB정부 자원외교 국정조사는 유감이다. 전쟁에서 졌다고 작전을 수행한 장수에 책임을 돌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문제는 경제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엑손모빌 등 글로벌 에너지회사들의 탐사성공률도 20∼30%에 불과하다. MB정부는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2배 이상 성장시켰다. 자원생산량을 기준으로 한 총투자회수 전망도 역대 정부 중 가장 높다.
유가 하락에 날개가 없다. 최근 6개월 사이에 두바이유 값이 배럴당 100달러에서 50달러대로 떨어졌다. 오일쇼크 시기는 해외 자원개발 적기(適期)다. 지속가능한 지혜를 모으자. 공전의 히트작 미생에 이런 말이 있다. ‘남 공격하기 전 자기부터 살펴라’(我生然後殺他). 건반 위 흑백처럼 다름을 존중하고 같음을 추구하는 게 진정한 국익창출의 길이다.(求同尊異)
(CNB저널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