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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최영태 편집국장) 연말연시를 맞아 재벌 회장님들에 대한 가석방이 거론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정말 정부 말대로 재벌 회장님들을 풀어드리면 경제가 살아나느냐는 점이다. 회장님들 풀어드려 경제가 살아났으면, 벌써 한국 경제는 여러 번 살아났어야 한다. 회장님들 풀어드릴 때마다 경제가 점프했다면, 한국 경제는 지금 쩔쩔 끓고 있어야 옳다.
재벌 회장님들을 풀어드리면, 국민경제에는 몰라도 누군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어딘가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누구의 주머니인가는 상관없이 돈만 들어가면 경제성장이 된다고 고집한다면 그런가부다라고 할 밖에.
죄지은 재벌 회장님들을 풀어드릴 때마다 정부나 법원이 되뇌는 주문은 ‘경제-투자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여기서 또 하나 질문. “회장님들이 풀려나 투자를 하시면 정말 일자리가 늘어나나요?”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장하성 교수는 자신의 책 ‘한국자본주의’에서 이미 답을 내놓았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투자하면 일자리가 늘었지만, 요즘에는 재벌들이 투자를 하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대세라는 진단이다. 대기업들은 설비에 투자하기 때문에, 전에 없던 기계가 들어오면 그 기계를 관리할 극소수의 고급 관리자만 새로 채용하면 되고, 기계가 할 일을 손으로 해오던 보통 노동자들은 방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현재 한국의 재벌들은 한국 안의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없다. 국내에서 투자를 하면 대개 인력절감을 위한 설비투자를 한다. 반대로 근로자를 많이 써야 하는 투자는 임금이 싼 나라에서 하거나, 아니면 미국처럼 소비시장 인접지에서 한다. 이러든 저러든 국내 일자리와는 상관없고 해외 일자리는 늘어난다. 그래서 ‘글로벌 대기업들’ 아닌가?
죄지은 회장님들을 풀어드릴수록 일자리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소리가 되는데, 어쩌려고 가석방 합창들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서민 입장에서 한국 경제의 최대 과제가 지금 일자리 창출이라면, 그래서 근로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을 일으켜야 할 시점이라면 이해가 안 되는 합창이다.
어차피 내년에 한국에는 또 한 번 ‘고용 피바람’이 불 전망이다. 정부의 이른바 중규직 구상이다. 한국의 고용사정은 현재 이른바 ‘20 대 80’ 구도로 양극화돼 있다. 20에 들어간 근로자는 이른바 ‘주식투자 하는 근로자 분들’이시고, 나머지 80은 벼랑 끝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가 워낙 크기에 두 노동자 진영 사이에는 반감도 크다. 그래서 정부의 중규직 구상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대기업 노조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요즘 같은 한국 사법부 분위기라면 노조의 반발을 법치로 단죄할 준비는 단단히 돼 있다.
한국의 진보 진영은 아직도 ‘고용에 기반을 둔 복지사회’라는 꿈을 말하고 있지만,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고용 기반에 아무 관심도 없다. 노동의 황금기에 노동자들은 “착취를 당한다”며 분노했지만, 이제 자본과 국가가 손잡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들은 ‘착취당할 기회’ 자체가 없다. 앞으로는 “착취 한 번 당해봤으면”이 소원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