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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소설가)) 연애를 오래했다고 해서 서로 상대에 대해 더 잘 파악하거나 연애의 메커니즘을 더 잘 꿰뚫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골프를 오래, 많이 했다고 골프 이론에 통달하거나 실력이 출중하지도 않은 것 같다. 서당 개가 3년 만에 풍월을 읊었다고 치자. 그럼 6년이면 사서삼경을 막힘없이 읊조릴 수 있을까?
라운드를 할 때마다 필자에게 조언을 하는 분이 있다. 테이크 백이 어떻고, 임팩트는 어떻고, 팔로우를 어떻게 하라는 등. 하지만 그녀는 필자보다 골프 실력이 출중하지도 않고, 연륜도 그리 깊은 것 같지 않다. 티칭프로 테스트에 몇 번인가 응시했었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다.
결국 그녀의 거듭되는 잔소리에 짜증이 나서, 필자는 참지 못하고 “라운드 시작하기 전에 부탁 말씀이 있는데요, 저도 인생의 연륜으로나 골프의 구력으로나 은퇴할 때가 가까운데요, 제발 이리 쳐라, 저리 휘둘러라, 가깝게 잡아라, 멀리 서라는 등의 조언은 좀 삼가주셨으면…”이라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런데 그 날 그녀의 대응은 참으로 놀라웠다. “어머!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실례를 범했다고… 내 실력을 내가 아는데, 내가 누구를 가르치려 들었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오지랖(?)이 얼마나 넓은지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필자에게 틈만 나면 이래라 저래라 했던 일이 없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보기 플레이어는 자신에게 묻지도 않는데 솔선수범해서 조언을 남발하고, 싱글핸디캡퍼는 겸허한 태도로 청해야 한 수 가르침을 베풀며, 프로골퍼는 수업료를 바쳐야만 난치병을 낫게 해주는 의사처럼 우문에 현답을 들려준다.
언젠가 중국 황산을 여행할 때였다. 단체 여행객들에게 한 시간 쯤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20여명의 여행객들이 바구니에서 빠져나온 어린 게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숲속으로 사라졌다. 제한된 자유시간은 끝났고, 일행은 다음 행선지로 떠날 장소에 모였다. 가이드가 머릿수를 헤아리는데 한 사람이 모자랐다. 필자가 잘 아는 그는 마라토너였고, 시간을 잘 지키는 교사였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아마는 따귀 맞으면서도 훈수 두고,
프로는 돈 받아야 두지요.
라운딩 중 훈수하는 당신은 어느 쪽?
황산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어느 누구라도 넋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시심을 부추기는 명미한 풍광에 빠져 그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는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실족해서 저 깊고 깊은 계곡으로 추락하지는 않았는지 등등 필자는 온갖 걱정으로 가득 찼다.
결국 그는 스스로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를 찾아내 끌고 왔다. 산 좋고 물 좋고 바람 좋은 정자에 앉아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단다. 신선 같은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들이 벌이는 장기판 옆에서 훈수를 두고 있었던 것. 훈수 삼매경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그는 자신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동행자들을 그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필자는 바둑이나 장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장기판이나 바둑판에서 훈수를 두다가 승부에서 진 사람에게 따귀를 얻어맞았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울러 따귀를 얻어맞고도 또 하는 짓이 훈수라는 소리도 얻어들었다. 훈수는 본디 얄팍한 지식이 넘치면서 스스로의 인품을 해치는 일이다.
골퍼라면 누구든지 가슴에 반드시 새겨야 하는 교훈이 있다. ‘헤드업을 하지마라!’ 즉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고 라운드에 임하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겸손을 일깨워주는 스포츠인 골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정리 = 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