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 ㉓ 동대문서 장안2파출소 김형태 경위]주민 하소연 경청해 자살 시도자 살려
▲동대문서 장안2파출소 김형태 경위. 사진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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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각박하고 바쁜 현실에서 주변 이웃을 살피는 일은 쉽지 않다. 서로 바쁘고, 주변을 돌볼 여유도 없다. 심지어 가족 사이에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고, 서로 대화를 잇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다. 관심어린 말 한 마디, 전화 한 통화가 아쉬운 현실이다. 동대문경찰서 장안2파출소에 근무하는 김형태 경위(45)의 따뜻한 미담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최근 그는 자살을 시도했던 지역 주민을 가까스로 구했다. 자신의 신세를 비관한 주민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경청하면서 도우려고 했기에 가능했다. 주변의 칭찬과 격려에 “경찰로서 마땅히 할 일을 했다”고 말하는 김 경위를 만났다.
김형태 경위가 동대문서 장안2파출소에 온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는 1998년 경찰이 돼 다른 경찰서 내근 부서와 형사과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동안 여러 지역의 파출소에서도 근무했다.
파출소에 근무하다 보면 일상적인 업무 외에도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 사기를 당했다며 어떻게 할지를 상담하러 오는 사람부터, 애완견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술에 잔뜩 취한 주민이 파출소에 찾아와 괜한 시비를 걸거나 신세한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11일 토요일, 여느 때처럼 야간근무를 하던 김 경위는 평범한 차림의 한 남성이 술 냄새를 풍기며 파출소에 들어오는 것을 봤다. 김 경위는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밤 근무를 하다 보면 주취자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모두 관내 주민이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날도 김 경위는 평소처럼 남성에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고, 그 남성은 화장실을 쓰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분이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서도 계속 머뭇거리는 거다. 더 도와드릴 게 있냐고 물어도 별 대답이 없고. 단순 주취자라고 보기엔 얼굴도 진지해 보였다. 그래서 우선 앉으시라고 말했다.”
김 경위는 이 남성과 함께 앉아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된다”고 얘기했고, 이 남성은 관심을 보이는 김 경위에게 조금씩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 남성의 사연은 이랬다.
그는 육남매 맏이로 태어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들을 지금껏 자식처럼 돌봐왔다. 동생들 학비를 대기 위해 젊은 시절에는 사우디 현장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동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이제 한 숨을 돌리는 듯 했지만, 그는 며칠 전 막내 남동생과 심하게 다퉜다고 말했다.
▲4월 11일 토요일, 야간근무 중인 김형태 경위가 파출소로 찾아온 한 남성의 사연을 주의 깊게 듣고 있는 모습. 사진 = 서울동대문경찰서
김 경위는 “그 분이 다툼 끝에 남동생의 제수씨가 하는 가게 집기를 파손했는데, 며칠 뒤 동생에게서 100만 원을 보상하라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고 사과하고 물어줄 용의도 있지만, 동생에게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이야기 도중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그동안 쌓인 마음이 폭발한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김 경위는 남성의 얘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따뜻한 말로 위로할 수밖에 그를 도울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 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것만으로도 김 경위에게 무척 고마워했다고 했다.
김 경위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려 했는데, 가실 때에도 그 분의 심란한 표정은 여전했다.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어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라도 하자’고 해서 간신히 이름만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남성이 파출소를 떠난 후 ‘혹시’ 하는 생각에 경찰시스템 조회로 인적사항과 주소를 적어 두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김 경위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조금 전 파출소를 찾아와 하소연하던 그 남성이었다. 김 경위는 “전화로 그 분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지금껏 누군가 챙기기만 했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당시 예감이 좋지 않던 김 경위는 그 남성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기 전에 그가 집 근처 지하주차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몇 차례 반복해서 그에게 다시 전화를 했지만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았다.
“시민이 갑이란 마음으로 봉사”
김 경위는 “그 분이 안 좋은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미리 알아둔 주소지로 동료 경찰과 함께 바로 출동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남성의 집에 도착해 그의 아내를 만났고, 김 경위는 다급하게 근처 지하주차장이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그리곤 아내와 동료경찰에게 119신고를 시키고, 자신은 주차장으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약 70여 대의 차량이 주차된 지하주차장 한쪽 구석에 매캐한 연기가 나오는 봉고차 한 대가 보였다. 다급한 마음에 봉고차로 뛰어가 화물칸 천막을 열었더니 남성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번개탄이 벌써 절반쯤 타고 있었다.”
천막을 해체한 김 경위는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다행히 얼마 뒤 남성은 헛기침을 하며 의식을 회복했다. 119구조대도 도착해 남성을 병원으로 후송했다. 김 경위는 그제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김 경위는 걱정되는 마음에 당사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직접 통화를 하지는 못하고 가족에게서 안정을 찾고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경찰 생활 16년 동안 이런 일은 나도 처음이었다. 이럴 때는 경찰 일에 정말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동대문서에서는 ‘시민은 갑이다’라는 인식으로 대민 서비스에 더욱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주변의 가족과 이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지막 그 전화가 자살 직전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메시지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