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행근 중국 부자 이야기 - 와하하그룹 쭝칭허우]“경영은 독재…온정은 아버지처럼”
소금 노동자에서 세계 5대 ‘음료 대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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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송행근 중국문화학자) 21세기 중국의 소비시장 확장은 부자가 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누구보다 한 발짝 앞서 그 같은 천금의 기회를 이용해 대부호가 된 인물이 있다. 바로 쭝칭허우(宗慶後)다.
‘음료대왕’으로 불리는 쭝칭허우는 중국 최대 음료 업체이자 세계 5대 음료업체인 와하하(娃哈哈)그룹 회장이다. 그는 2011과 2012년에 각각 중국 최고 부자였다. 그러나 2014년 4월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 리포트가 발표한 ‘2014년 중화권 부호 명단’에서 5위를 차지했다. 당시 그의 순자산은 1200억 위안(약 22조 원)이었다.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중국 부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부자 순위의 유동성이다. 발표 시기마다 부자 순위가 바뀐다. 둘째, 부를 쌓는 비법이 부동산에서 IT로 업종이 이동되었다. 셋째, 갈수록 갑부의 나이가 젊어진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노익장 쭝칭허우는 2010년 이후 6년 연속 중국 10대 부자에 뽑히는 저력을 과시했다.
가문은 좋았지만 친일 전력 때문에…
쭝칭허우는 자수성가형 갑부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굴곡진 성장 과정과 별 볼일 없는 학벌에 전문적인 기술도 없는데도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1945년 10월 12일 장쑤 성 수첸(宿遷) 시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20세기 군벌이었던 장쭤린(張作霖) 수하에서 재정부장을 지냈다. 부친 쭝치뤼(宗启騄)는 중국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인텔리로, 중국이 건국되기 전 친일 정권인 왕징웨이(汪精衛) 정권에서 공무원을 지냈다. 한마디로 매우 훌륭한 가문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상하이-홍콩 경제’ 잡지의 커버 인물로 선정된 쭝칭허우.
그러나 마오쩌둥이 이끄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운명이 곤두박질했다. 부친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온 가족은 부득이 그가 4살 때 원래 호적이 있던 항저우로 이사를 가야 했다. 항저우로 돌아왔지만 부친은 나쁜 출신 성분 때문에 취직하지 못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가 번 쥐꼬리 월급으로 7명의 가족이 살았다.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인해 그는 1963년 뒤늦게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곧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저장성(浙江省) 저우산(舟山) 마무(馬目)농장에서 소금 공장에서 일했고, 이듬해에는 인근 뤼싱(綠興) 농장에서 관리인 생활을 했다. 무려 15년여 동안 육체노동을 했다. 33세부터 4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항저우(杭州)의 종이상자 공장 등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세파를 겪었다.
쭝칭허우가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때는 1987년이다. 그는 퇴직 교사 2명과 함께 은행에서 14만 위안을 빌려 항저우에 회사를 차렸다.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문구류를 학교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회사 명칭은 ‘어린이(娃)의 웃음소리’에서 따온 ‘와하하(娃哈哈)’였다. 당시 그의 나이 42세였다.
현재 와하하그룹은 유산균 음료와 생수, 탄산음료, 차 음료, 주스, 통조림, 건강식품, 유아 분유, 아동복 등 10가지 분야에서 150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중국 29개 성과 시, 자치구에 있는 생산 기지가 무려 66곳에 달한다. 자회사는 170개, 전체 직원 수는 3만 명에 달한다. 2011년 679억 위안(11조 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중국의 대표적인 식품 기업이 되었다.
▲‘상하이-홍콩 경제’ 잡지의 커버 인물로 선정된 쭝칭허우.
개당 1000원도 안 되는 음료 제품을 팔아 매출 10조 원을 훌쩍 넘는 성공 신화를 이룬 쫑칭허우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성공 노하우이다. 그는 “남들 뒤를 쫓아가서는 성공할 수 없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앞서나가도 소비자가 외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경쟁자보다 반걸음만 앞서나가라(領先半步)”고 팁을 제시한다. 성공의 가능성은 남들보다 한 발짝만 앞서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례로 그는 1989년 와하하의 발판이 된 어린이 영양 음료를 개발했다. 당시 영양 음료를 만드는 회사는 많았지만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춘 것은 처음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개혁·개방 이후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위해 부모들이 더 많은 돈을 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적중했다.
“독선” 비난에도 “권한 나눠줄 수 없다” 역설
둘째, 강력한 리더십이다. 그는 아직도 모든 결재를 직접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진과 부회장단 없이 독자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린다. 소소한 비품 영수증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철저하다. 경영방식이 독선적이라는 비난에도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그는 “기업 경영의 권한은 내가 쥐는 게 당연하며, 작은 권한도 나누어 주면 안된다”고 역설한다.
반면 와하하 그룹은 도매상에게도 판매 수익의 일부를 나누어 주고, 마흔다섯 살 이상의 직원은 절대 정리해고하지 않는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모든 직원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3000위안씩 여행비를 지원해준다. 권력을 나누어주지는 않지만, 자신을 중심으로 전 직원이 똘똘 뭉치게 하는 독특한 경영철학이다.
셋째, 절약과 검소함이다.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하루 용돈은 150위안(2만 7000 원)”이라고 밝힐 정도로 검소하다. 와하하그룹 본사도 항저우 역 인근에 있는 낡은 6층짜리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본사 건물과 사무실 고치는 데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며 “그럴 돈이 있으면 공장을 짓겠다”고 말한다. 당연히 옷차림은 검소하고, 술도 좋아하지 않으며, 도박이나 골프와 거리가 멀다. 식사는 회사 직원 식당에서 해결한다. 고작 다비도프 담배와 용정 차를 사는 게 소비의 전부다.
▲2010년 당시 중국 최고 부자로 소개된 쭝칭허우.
쭝칭허우는 2002년 이후에는 전국인민대표회의 대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돈과 권력을 다 가진 것이다. 그는 좋은 일도 많이 한다. 지난 21년 동안 공익사업, 자선기금에 투자한 돈만 2억 4500만 위안(480억 원)에 달한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 직원들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종종 말한다.
쭝칭허우 회장은 각고의 노력 끝에 엄청난 갑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와 아내가 미국 영주권자이고 외동딸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 때문이다.
쭝칭허우 회장의 목표는 앞으로 와하하를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음료업체로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부동산업처럼 잘 모르는 영역으로는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또한 후계 수업에도 대비를 잘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 외동딸 쭝푸리(宗馥莉)를 지명한 이후 경영자 수업을 시키고 있다.
“와하하 음료수를 마시면, 밥맛이 돌아온다(喝了娃哈哈, 吃飯就是香).” 25년 전 와하하가 처음 선보인 광고 카피다. 당시 이 광고 문구는 음식을 매우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공감을 불러와 대박을 쳤다. 지금 이 순간에 중국인들이 손에 들고 먹는 음료가 있다면 십중팔구 와하하다. 와하하그룹이 세계적인 음료업체로 성장한다면 지구촌 사람들의 밥맛이 돌아올 날도 멀지 않을 것 같다.
(정리 = 안창현 기자)
송행근 중국문화학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