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일본 관서(關西)지방의 고베(神戶)에는 근대(17~19세기) 일본으로의 서양 문물 유입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동양 사회의 근대화-현대화가 서양 문명을 통해 이뤄졌음을 생각해볼 때, 근대 시기에 서양 문물이 언제-어떻게-어떤 물품들을 통해 들어왔고, 또 그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우리의 오늘을 아는 거울이 되기에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고베는 인구 150만 명 정도의 중도시다. 옆의 대도시 오사카(大阪)와 가깝고, 내륙의 교토(京都)와도 멀지 않다. 바다를 접한 항구 도시이기에 근대에는 나가사키(長崎), 요코하마(橫濱)와 더불어 서양 문물이 유입되며 새로운 문명을 내륙에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일본에 온 서양인들이 생활하던 구 거류지에 들어서 있는 고베시립박물관 전경.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박물관은 고베 시의 중심지에 있어 찾기 쉽다. 이곳은 옛날에는 상선을 타고 도착한 서양인들이 활동하던 무역 사무소들과 거주지가 집결해 있던 구거류지(舊居留地)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고급 호텔, 사무실 건물들과 양품점, 레스토랑들이 늘어선 고급스러운 지역이다. 박물관 주소는 神戸市 中央区 京町 24.
망원경 들어오자마자 자체적으로 망원경 흉내내 만든 일본
박물관 건물은 본래 1935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도쿄은행 건물을 시 정부가 인수해 내부를 전시 공간에 맞게 리모델링해 1982년 개관했다. 근대 건축물로서도 가치가 높다는 이 건물은 전면에 대형 6개 기둥이 있는 구조로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킨다.
▲고베항 근처의 외국인 거류지 모형.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고베에 거주하던 서양인의 거실 모형을 만들어놨다.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네덜란드 상선이 도착한 항구와 네덜란드 상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박물관은 3층에 지하 1층이 있는 구조로서, 1층과 2층에는 근대 서양 문물의 유입 역사 전시실과 아동교육실이 있다. 2층에는 근대 서양 예술 전시실과 고베가 속한 효고현(兵庫懸)의 역사 전시실, 도서실이 있다. 3층은 특별 전시실과 사무실이 있고, 지하 1층은 소강당과 자료실이다. 전체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상설 전시와 더불어 종종 기획 전시와 아동 교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에도 시대(1603-1867년) 동안 폐쇄적인 정책을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淸)-조선과 교역을 계속했고, 서양과는 유일하게 네덜란드와 교역하면서 근대 서양 문물을 흡수할 수 있었다. 이때 개항은 곧 개화(開化)와 근대화를 의미했다. 서구 문물의 유입과 더불어 들어온 근대 유럽의 과학과 문화는 일본의 전통 학문과 문화예술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켰다.
▲17~18세기 네덜란드에서 유입된 망원경들.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서양에서 들어온 인쇄 시설.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이후 19세기에 들어서서는 산업기계들과 기차, 자동차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과 전기가 도입됐다. 그리고 주거 방식과 음식, 의복, 헤어스타일 등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변화가 일어났다. 소위 개화기에 일어난 이런 여러 변화와 발전의 모습들이 고베 시립박물관의 기록물과 유물 외에도 그림-사진-모형 같은 시각 자료들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진다. 전시물에 대한 설명은 일본어 외에 영어, 한국어, 중국어로 표기돼 이웃 국가 관람객을 배려한다.
근대 서양 문물의 유입에 관한 전시물들은 대부분 1층에 있다. 1층 로비에서 오른쪽 전시실로 가면, 당시 서양인들이 고베에 장기 체류했던 흔적들을 보여준다. 17~19세기에 배를 타고 온 서양인들은 고베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당시의 재현 모형들이 보여준다. 항구에 가까운 지역에서 활동하고 살았던 서양인들의 거류지 모습이 재현돼 있고, 그들 주택에 관한 기록 자료들과 더불어 거실 모습도 모델로 만들어져 있다. 현재 이들의 거류지는 대부분 파괴되고 없어져 현대식 빌딩들이 들어섰지만, 이런 재현 자료를 통해 추측하고 상상해볼 수 있다. 당시 고베는 소위 국제적인 무역도시였던 것이다.
설명판들을 끝까지 읽자니 어느덧 문닫을 시간.
2층 카페의 진한 커피로 마음을 달래보지만…
당시 서양인들은 일본에 무엇을 갖고 왔을까? 실로 매우 다양하다. 1층 입구에서 왼쪽 전시실로 가면 이에 관한 전시물들이 잘 정리돼 있다. 근대 과학에 근거한 천문학, 수학, 의학 서적들과 세계 지도가 있고, 또 망원경, 시계 같은 과학 도구도 있다.
이들 중 근대 전기 17세기에 들어온 세계 지도와 망원경은 당시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유럽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나던 시대에 갈릴레오 등이 만든 망원경은 인간 스스로 세계(우주)를 관찰하고자 시도한 시각적 과학 도구였다. 또한 세계 지도는 전 세계의 모습을 측량하고 파악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19세기 말경 전기와 전등의 도입으로 밝아진 일본 거리를 보여주는 전시물.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근대(17~19세기) 일본의 대외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들. 오른쪽 위는 조선통신사 방문도이며, 아래는 서양과 중국 상선의 모습이다.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당시 폐쇄로 일관했던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노력이 없었다. 한국은 조선 시대 후기까지도 외부 세계를 알려고 하지 않았음을 돌이켜볼 때, 세계 지도와 망원경은 세계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과학 도구들이었다.
에도 시대의 일본이 놀라운 것은, 당시 이렇게 많은 물품들이 유입됐다는 점 외에도, 첨단 과학 기구로서 망원경이 입수된 얼마 후에는 일본에서 유사한 망원경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일본은 단지 서양 문물을 수입만 한 것이 아니고, 이들을 연구해 제작하는 데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이는 19세기에 경제와 산업 발전에 직결되는 기계(방직, 인쇄, 자동차 등)와 전기 기구들이 유입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현대화에 앞서는 데 이런 바탕이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비로도 천으로 고풍스럽게 꾸며 놓은 박물관 2층의 카페. 진한 커피를 내놓는다.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한국인은 특히 이런 부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6~17세기부터 세상이 많이 바뀌기 시작했건만, 조선은 쇄국으로 일관하다가 세계사 진행과 동떨어져 버렸던 것 같다. 이어 19세기 말에는 개항과 쇄국 사이에서 갈등하다 길을 잃어버렸다.
2층에는 ‘남만 미술(南蠻美術)’ 전시실이 별도로 있어 16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유입된 미술품들을 모아놓았다. 일본에는 대략 17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근대 판화술(동판화, 석판화)과 유화 작품들이 들어오면서 서양화의 미학(원근법, 구도, 명암, 색감 등)도 도입됐다. 당시 일본 미술은 이런 양화(洋畵)를 모방하며 발전했다. 널리 알려진 목판화 형식인 우키요에(浮世繪)도 여기서 발전됐다.
▲1664년 당시 네덜란드가 만든 세계 지도. 오른쪽 위로 한국과 일본이 보인다. 사진 = 이상면 편집위원
그런데 왜 유럽을 ‘남쪽 야만인’을 뜻하는 남만(南蠻/南蠻, southern barbarian)이라 부르는지 의아했다. 그것은 당시 네덜란드 상선들이 동인도회사의 아시아 거점인 인도네시아, 즉 남쪽에서 나가사키로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일본이 유럽 예술로부터 배웠으면서도 유럽을 그렇게 불렀으니 그 기개가 가상하다. 이 전시실은 종종 기획전시실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현재는 대영박물관 전시(9월 20일~내년 1월 10일)가 진행되고 있다.
고베시립박물관에서 근대 서양 문물의 유입과 관련된 전시물들을 둘러보면 한국 근-현대사와 비교해볼만한 점이 많으므로, 우리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개항과 근대화, 한국 사회의 서구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므로,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했다. 설명판들을 세심히 읽어보며 끝까지 관람하니 피곤해졌다. 2층 카페에 들어가 자주색 비로도 천이 입혀진 산뜻한 의자에 앉아 예의바른 여종업원이 갖다준 진한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고베시립박물관 웹주소는 www.city.kobe.lg.jp/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