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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TV의 ‘미란다 고지’, 좀 알고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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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2호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2015.10.15 08:57:34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우리나라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피의자를 체포할 때 묵비권을 고지하는 장면들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범인의 체포 장면에 많이 나오는 대사입니다.

보통 이를 가리켜 ‘미란다 원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위 대사는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것과 다릅니다. 작가와 감독이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외국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입니다.

미란다 원칙(Miranda warning(rights))은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확립된 원칙입니다. 여기서 미란다는 범인 이름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 경찰은 1963년 멕시코계 미국인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를 납치·강간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미란다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신고 후 미란다를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경찰서로 연행된 미란다는 경찰관들의 강요나 가혹 행위 없이 본인 스스로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받으면서 미란다는 법정에서 자신이 수사 기관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하고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한국 경찰이 왜 미국 경찰처럼 
‘미란다 고지’를 TV 속에서만 하나?

예전처럼 ‘자백이 증거의 왕’은 아니지만 자백이야말로 수사 기관과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 가장 좋은 증거가 됩니다. 결국 미란다의 수사 기관에서의 자백은 법정에서 유력한 증거가 됐고, 애리조나 주 법원은 미란다에게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미란다는 주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역시 무죄는 인정되지 않았고, 다시 연방대법원에 상고하게 됐습니다. 이때 미란다의 변호인은 미란다의 자백이 부적법했고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로 미란다가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제6조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5대 4의 표결로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죄 선고의 이유는 그가 진술 거부권, 변호인 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당시 범죄 피해자나 범죄 예방보다 범죄자의 권리를 더 존중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경찰 수사팀 사무실에 조사실이 따로 마련되기도 했다. 체포돼 온 피의자는 형사 당직 사무실과 연결된 통로로 출입, 민원인이나 피해자와 마주치지 않게 됐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이후 미란다 판결은 미란다 원칙으로 확립돼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체포할 경우 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미국 드라마에서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는 대사가 종종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위 드라마 대사는 우리나라 법과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2조 제2항에서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5항에서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 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합니다.

우리나라는 피의자의 권리를 헌법에 직접 규정하면서 해석으로 인정되는 미국보다 확실한 권리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200조의 5에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는 피의 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피의 사실의 요지, 체포 이유, 변호인 선임권 고지, 변명할 기회 이렇게 네 가지를 고지해야 합니다. 즉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묵비권(진술 거부권)’은 고지사항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당신을 살인죄(피의 사실의 요지) 현행범(체포 이유)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가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렇게 고지되고 있으며, 경찰관이 친절하게 피의자에게 묵비권을 알려주는 우리나라 드라마는 우리 법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묵비권은 언제 알려주나?

우리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3에 규정돼 있는 것처럼 피의자가 경찰이나 검찰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을 때 수사 기관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려줍니다.

1. 귀하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1. 귀하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합니다.
1. 귀하가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1. 귀하가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은 피의자 신문조서의 두 번째 페이지에 ‘부동문자’로 인쇄돼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피의자는 아래와 같이 답하게 됩니다. 물론 아래 질문 부분은 이미 인쇄가 돼 있고, 수사관이 이 질문 사항들을 다시 한 번 피의자에게 물어봅니다. 피의자는 자필로 ‘답’ 란에 권리를 고지 받았는지, 진술 거부권 행사 여부, 변호인의 조력권 행사 여부를 기재합니다.

문: 피의자는 위와 같은 권리들이 있음을 고지 받았는가요?
답: 예.
문: 피의자는 진술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요?
답: 아니요.
문: 피의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요?
답: 고윤기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해 조사를 받겠습니다. / 또는 아니요.

미란다 원칙은 미국에서 나온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헌법에 규정하는 등 피의자의 강력한 권리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피의자 신문조서에 부동문자로 기재된 조항들은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바뀐 것들입니다.

피의자의 권리 보장은 우리 형사소송법 체계에서는 이미 형식적으로는 확립돼 있습니다. 요즘에는 형사소송법의 관심사가 피고인·피의자보다 오히려 피해자의 권리 보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특히 성범죄 피해자는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등 피의자의 권리 보장에서 피해자의 권리 보장으로 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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