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시리즈 ㉘ 한국와인소비자협동조합] 와인 소비자 권리 찾는 협동조합
▲한국와인소비자협동조합은 지역 문화센터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와인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사진 = 한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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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지만, 와인을 일상적으로 즐기기엔 여전히 만만치 않은 장벽이 있다. 비싼 가격 때문이다. 원래 비싼 와인들도 있지만, 국내 시장의 불합리한 유통 구조에서 비롯한 문제도 있다. 또한 시중의 수많은 와인 중 어떤 것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또 마실 때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한다.
한국와인소비자협동조합(이사장 박정진)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소비자 협동조합이다. 좋은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해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즐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5월 정식으로 출범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한와소의 박종서 이사는 “와인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스스로 좋은 와인을 찾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와인을 매개로 한국의 주류 문화가 좀 더 다양해지길 바랐다.
한 소비자 단체가 세계 18개국의 와인 가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특정 와인의 경우 한국이 4번째로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같은 조사에서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 국내에 유통됐다는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박종서 이사는 “수입되는 와인 정보를 대형 업체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와인소비자협동조합(이하 한와소)도 이런 배경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합리적으로 와인을 소비하자며 2015년 5월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9월 6일 신촌문화마켓에 참여한 한와소 조합원들. 사진 = 한와소
한와소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질 좋은 와인을 시중가의 40~50%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대부분이 1만 원대이고, 고가라 해도 5만 원 내외이다. 소믈리에, 식음료 관련 학과의 교수 등 와인 전문가와 애호가 등이 참여한 평가단이 33종의 와인을 선정해 판매하고 있다. 평가단은 물론 한와소의 소속 조합원들이다.
와인 전문가-애호가 모여 1년여 준비
처음 와인 소비자를 위한 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실제 한와소를 설립할 때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박 이사는 “2014년 초 한 대학의 와인 전문가 과정을 다니던 몇몇이 국내 와인 유통의 문제점을 공감하면서 소비자 협동조합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국내 와인 시장에서 합리적이고 좀 더 투명한 유통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를 개선하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단체 형태는 협동조합이 좋아 보였다. 와인 소비자들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기인으로는 박 이사를 포함해 실제 식음료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박정진 이사장 등 모두 7명이 참여했다. “와인 전문가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와인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였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처음 조합을 만들 때 큰 도움이 됐다.”
박 이사는 직접 와인 전문가 과정을 듣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한와소의 발기인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박정진 이사장과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이미 친한 친구 사이다. 평소 와인뿐 아니라 술을 즐겨 하는 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와인 가격의 거품을 빼고 좋은 와인을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와소에 참여했다.”
▲한와소는 일반 시민들에게 와인을 소개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한와소
IT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박 이사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목수로 전업했다.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며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꼈고, 평소 하고 싶었던 목공 일에 새롭게 도전했다. 그는 어쩌면 이런 변화가 한와소에 기꺼이 참여한 계기가 된 듯싶다고 했다.
그렇게 모인 발기인들은 소비자 협동조합을 세우자는 데 모두 동의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기존 협동조합의 여러 정관들을 탐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반 기업이라면 대행료를 지불하고 법무사를 통해 법인 등기를 할 수 있겠지만, 협동조합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운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경제 관련 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협동조합을 꾸려갔고, 1년여 공들인 끝에 협동조합 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소비자 협동조합 형태로 한와소를 만들 수 있었다.
거리 장터에 참가해 인기 몰이
설립 준비 과정도 힘겨웠지만, 설립 이후에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로 설립한 와인 소비자 협동조합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사업 초기여서 운영비를 충당하기 버거워 초기 발기인들이 추가로 출자하기도 했다.
▲한와소는 오픈 마켓에서 와인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진 = 한와소
“협동조합은 잘 운영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을 알았다. 일반 기업이라면 사업 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겠지만, 협동조합은 그렇지 않다. 협동조합은 하나하나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면서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갔다.
한와소는 협동조합을 계속 꾸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지난 9월 세 차례 오프라인 이벤트에서 확인했다. 9월 6일 신촌문화마켓에 이어, 13일 도시형 농부 시장인 ‘마르쉐@혜화’에 참가했다. 또 22~23일에는 서대문 구청 마당에서 열린 추석맞이 직거래 장터에도 부스를 차렸다.
반응은 예상 외로 좋았다. 행사에 참여한 단체들 중에서 매출 규모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와인을 직접 시음하고 만들기도 하는 체험 행사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 상당수가 한와소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와인을 살 때마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인지, 제 값에 산 것인지를 궁금해 했는데 이를 해소할 수 있어서 좋다는 반응들이었다.”
한와소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판로 지원을 위한 거리 장터 등 오프라인 활동에 앞으로 적극 참여할 생각이다. 협동조합을 알리고 조합원을 늘리는 데는 오프라인 행사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9월 행사 이후 신규 조합원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해 현재 100명을 넘어섰다.
조합원 교육에도 적극 나설 예정
한와소 조합원이 되려면 홈페이지(www.winecoop.or.kr)에 접속해 가입 신청을 하고 출자금(1좌당 5만원)을 납입하면 된다. 연간 조합비는 3만원이고, 조합원으로서 연간 10만 원 이상 상품을 구매하면 다음 해 조합비는 면제된다.
1년 이상 이용 실적이 없는 조합원들에게도 연간 조합비를 청구하지 않는다. 협동조합 차원에서 조합원들에게 시중가의 40~50%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공급하기 때문에 연간 조합비 부담이 사실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사회적경제 관련 단체들의 오픈 마켓에 참여한 한와소 부스. 사진 = 한와소
박 이사는 “조합원들에게는 제휴 핫플레이스 서비스도 제공된다. 한와소와 제휴를 맺은 레스토랑, 클럽, 바를 방문하면 ‘코르크 차지(cork charge)’ 무료나 할인가격 혜택을 받는 식이다. 아직 사업 초기 단계라 제휴 레스토랑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 그 수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소개했다.
코르크 차지는 본인이 와인을 가져가 마실 경우 서빙을 받는 조건에 지불하는 비용을 말한다. 음식점에 따라 1~2만원에서 3~5만원에 달한다.
“와인 매개로 주류 문화 다양해졌으면”
한와소는 조합 운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조합원을 대상으로 와인 문화 행사와 교육도 적극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한와소의 와인 교육은 와인 자체에 집중하는 기존의 시음 교육을 지양하고, 사람과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된 교육을 표방할 예정이다. 결국 와인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매개물이기 때문이다.
“한와소는 3년 안에 조합원 1만 5000명을 모집하는 것이 목표다. 이 정도면 조합원 1인당 월 1병씩, 연간 20만 병을 소비하는 규모로 기존 와인 유통 시장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와소는 청년 창업에도 관심이 많다. 박 이사는 “식음료 관련 창업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고, 언젠가는 그런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와소 홈페이지에는 “고독한 소비 활동에서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것이 우리 협동조합의 가치”라고 소개돼 있다.
“누구나 좋은 와인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소비자는 물론 중소 와인 수입업체에도 좋은 일이고 상생하는 게 아닐까요? 그것이 한와소가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라는 박 이사는 “와인이 단순한 알코올음료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공감의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