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 집은 이제 부부-자녀가 동물과 반려하는 정글?
‘반려동물’전 vs ‘사람풍경’전
▲윤정미, ‘주현과 찡꼬와 베리, 경기도 지축동’. 디지털 C-프린트. 2014. 사진 = 이화익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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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영화 ‘고령화 가족’의 가족 구성원들을 보자. 철없는 백수 첫째, 흥행참패 영화감독인 둘째, 결혼만 세 번째인 셋째, 개념상실 막내까지 그야말로 막장 가족들이다. 이들이 모이면 사건이 벌어지기 일쑤다. 화목하고 따뜻하게 그려지는 전통 가족의 이상적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데 이런 가족이 이제는 말도 안 되는 경우도 아니다.
가족(家族). 사전적 의미로는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된 친족원으로 구성된 집단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 가족의 의미뿐 아니라 형태까지 변화를 거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주목한 두 작가가 전시회를 연다.
윤정미 작가의 ‘반려동물’전엔 가족이 있다. 그런데 그 가족 사이에 유독 눈길을 끄는 존재들이 있다. 강아지가 가족들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는가 하면, 또 다른 작품엔 거대한 이구아나가 사람 팔에 올라가 있다. 가족 구성원도 서로의 얼굴보다는 이 동물을 사랑스럽게 쳐다보기 바쁘다.
과거엔 사람이 키우는 동물을 ‘가축’이라 불렀다. 소, 돼지가 대표적으로, 일을 시키고 나중엔 식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이젠 사람이 키우는 동물이 가족 구성원으로, 인생의 반려자로 승격되는 추세다.
1인가구가 증가하고, 결혼이나 독립 등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에, 외로움을 채워주는 존재로 반려동물이 자리한 것이다. 부자가, 가족이 아니라 생전 자신이 기르던 애완견에게 수십억 재산을 상속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아이를 낳는 대신 동물을 키우는 부부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윤정미, ‘정현과 초록이와 뽈뽈이, 서울, 하월곡동’. 디지털 C-프린트, 2015. 사진 = 이화익 갤러리
윤 작가는 2008~2015년 주인과 반려동물들을 촬영한 사진을 전시한다. 이들은 집에서 여유를 만끽하는가 하면,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하나같이 웃는 표정이다. 심지어 동물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보인다. 이 공간 안에 반려동물이 없으면 삭막하고 쓸쓸해 보일 것 같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를 반기기 위해 강아지가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는 드라마, 영화 속 모습이 연상된다.
윤 작가는 주인이 어떤 상태에 있든 항상 반겨주는 영원한 친구이자 가족인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사진에 담았다. 그의 작업은 강아지 몽이로부터 시작됐다. 아이들이 원해 키우기 시작한 몽이를 실질적으로 돌보는 일은 작가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유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몽이의 나비 날개처럼 예쁘게 펼쳐진 귀 아래 잔털들이 내 흘러내린 잔머리와 닮았다. 몽이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런 막내 아들”이라고 적었다.
신혜영 평론가는 “우울하거나 힘들 때 몽이에게 많은 위안을 받는다는 작가는 그 뒤 수십 명의 ‘반려인’을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의 지인들과 그들의 반려동물을 찍기 시작했고, 점차 소개를 받아 대상을 늘려갔다. 고양이, 기니피그, 토끼, 거북이, 이구아나까지 종류도 다양했다”고 설명했다.
▲윤정미,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 서울, 삼성동’ 디지털 C-프린트, 2014. 사진 = 이화익 갤러리
이어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작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연스러운 자세와 표정을 포착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몽이와 작가의 사이처럼 표정, 자세, 분위기, 혹은 그 무엇이 됐건 서로 닮아 있다. 마치 처음부터 함께 했던 것처럼 둘 사이엔 어떤 불안이나 불행도 감지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현 사회를 반영한다. 신 평론가는 “이번 전시는 동물에 관한 사진이라기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들이 속한 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드러내는 사진일지 모른다”며 “도시에 사는 동물과 사람을 둘러싼 이런 모순적 상황을 암시하는 무덤덤한 사진들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이화익 갤러리에서 1월 13일까지.
아내는 육식동물, 남편은 슈퍼맨?
서기환 ‘사람풍경’전
‘반려동물’전이 가족 구성원이 된 동물과의 따뜻한 교감을 보여줬다면, ‘사람풍경’전의 가족은 무언가 불편해 보인다. 표정은 분명 편안한 것 같지만, 주위에 펼쳐지는 풍경이 요상하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얼굴이 핼쑥하다. 맹수들이 맹렬하게 싸우는 가운데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남성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매우 어지럽혀진 부엌에서 ‘육아 전투’에 뛰어든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서기환의 ‘사람풍경’전은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의 형태를 꾸리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로, 한 가족의 일상을 동물, 식물이 함께 등장하는 초현실적 화면 구성으로 희화해 풀어낸다.
▲서기환, ‘사람풍경 - 스위트 냅(Sweet Nap)’. 비단에 채색, 130.3 x 193.9cm. 2015. 사진 = 충무아트홀 갤러리
전통적 의미의 가장(家長)은 가족을 통솔하고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가부장 제도를 이끌어 왔다. 하지만 요즘은 가장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 맞벌이 부부가 많고, 퇴근 뒤 “밥 차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사나 육아에 나서는 아빠의 모습도 각종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낯설지 않다. 작가는 이런 사회에서 남녀가 만나 결혼으로 엮이며, 남편으로 또 두 딸의 아빠로서 사는 희로애락을 유쾌하게 그린다.
그림 속에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기들이 등장한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매일 살 부비며 살아가며 쌓이는 삶의 무게와 인간관계, 행복과 상상 등을 작품에 구체화시켰다.
먼저 ‘남녀의 만남 그리고 결혼’ 이야기가 있다. 반쪽짜리 남녀가 날아갈 것 같은 풍선을 마주잡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작품이다. 이들이 쓴 선글라스엔 집안의 풍경이 비춰진다. 이는 결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부케로 얼굴이 표현된 신랑과 신부의 모습도 있다. 남자는 정면을 보며 결혼을 직시하지만, 여자는 옆을 보며 이상적 결혼을 꿈꾼다.
▲서기환, ‘사람풍경 - 슈퍼맨 고 투 워크(Superman Go to Work)’. 비단에 채색, 76 x 120cm, 2013. 사진 = 충무아트홀 갤러리
그 다음에는 결혼 이후의 가족생활이 펼쳐진다. 결혼은 결코 아내와 왈츠를 추며 와인 잔을 비우는 우아한 삶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정글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맹수처럼, 아내도 순한 초식동물에서 엄마와 주부로 살면서 육식동물로 점차 변화한다.
아내뿐 아니다. 남편 또한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 슈퍼맨으로 변신해 전투기가 가득 들이찬 하늘로 날아오른다. 선물상자, 와인, 여행가방 등 두 남녀가 소망하는 물건들이 야생동물들과 불연속적으로 나열돼 결혼의 아이러니를 위트 있게 풀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꿋꿋하게 살아간다. 작가가 가족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가족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이자,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육체적-심리적으로 연결된,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가족 관계를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그러면서 ‘가족은 바로 나이며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시는 충무아트홀 갤러리에서 1월 24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