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인 - 들꽃집] 7평 정원에 들꽃만발하니 호화 전원주택 안 부러워라
▲서울 성북동의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 사진 = 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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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마당 있는 집을 꿈꾸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사방이 꽉 막힌 아파트에서, 창문 너머 보이는 거라곤 콘크리트 벽뿐인 도시 생활에 지칠 무렵, 사람들은 으레 마당 있는 집을 꿈꾼다. 서울 성북동 좁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이 집도 마당이 있는 집이다.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들꽃집)으로 근사하게 불리는 집은 이름만큼이나 재밌는 사연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이 들꽃집은 지금의 건축주가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의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에서 우연히 20평 남짓한 집을 보고 매입하면서 지어졌다. 원래 아주 낡은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방치돼 있던 곳이었다. 땅을 가득 메우고 들어앉은 집 밖으로 손바닥만한 마당이 있었다. 크기는 작더라도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던 건축주는 집을 고쳐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을 구입했다.
들꽃집을 설계한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의 부부 건축가 임형남, 노은주 소장은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좁은 골목의 두 번째 집이었다. 너무 낡아서 손가락으로 튕기면 그냥 주저앉을 듯한 집이 한 채 있었다”고 그곳의 첫 인상을 전했다. 그런 장소가 어떻게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이 됐는지 궁금했다.
먼저 가온건축이 들꽃집의 설계를 맡게 된 사연부터 재밌다. 건축주는 동네를 둘러보다 집 근처 대로변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렀다. 그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다 인근 현장에 공사하러 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건축주는 자연스레 인근 집을 샀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가온건축에 한 번 가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들꽃집은 그렇게 바람에 날리는 들꽃처럼 가온건축 품에 떨어졌다.
▲다락 층 일부를 전통 가옥의 누마루 공간처럼 꾸몄다. 사진 = 박영채
▲7평 남짓한 들꽃집 마당에 예쁜 정원이 꾸려져 있다. 사진 = 박영채
처음에는 그냥 낡은 집을 보수해 사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건축주와 협의해 여기저기 칸막이를 세우고, 방수와 통기, 채광을 하면서 보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을 고쳐 사용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보수에서 신축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원점에서 새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들꽃집이 지금과 같은 꼴을 갖춘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신축을 하려면 현행 건축법에 맞춰야 했고, 법이 허용한 범위는 한 층 면적이 7평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단층으로 넙적하게 자리 잡고 있던 기존의 집 형태와 달리, 현행 법규에 따라 2m 폭의 도로에 길을 일부 내줘야 했기에 가용 면적이 줄어들었다. 집의 연면적이 14평인데, 그 면적으론 아무리 단출한 살림이라도 턱없이 작았다.
▲옛 집의 흔적을 간직한 담벼락. 대나무를 엮어 담장을 세웠다. 사진 = 박영채
▲작은 정원을 만든 데다 ‘들꽃 지도’까지 그려 넣었다. 사진 = 박영채
층수도 3층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들꽃집은 2층 위로 법의 허용 한도 내에서 다락방을 넣었고, 결국 7평 두 개 층과 5평 규모의 다락방, 그 옆에 작고 낮은 누마루가 있는 지금의 형태가 됐다.
가온건축은 “여러 가지 여건상 가장 적합한 방식은 경골 목구조였다. 집들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가급적 햇빛을 잘 받을 수 있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얇은 집’ 형식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전통 가옥의 ‘누마루’ 설치
집은 단출했다. 1층은 거실 용도로 사용하고, 2층은 침실, 다락 층은 서재와 누마루로 구성했다. 그리고 계단 쪽 벽에는 수납장 겸 책장을 붙여 웬만한 소품들은 다 수납해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거실과 주방이 ‘ㄱ’자 형태로 이어진 1층은 마당을 향해 커다랗게 발코니 창을 내서, 항상 마당 가까이서 생활할 수 있게 했다. 한 층 올라간 2층엔 침대와 옷장, 책상이 놓였고 침대 쪽으로 길게 난 가로 창을 통해서는 길상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2.5층인 다락 층은 들꽃집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다락의 일부를 한국 전통 건축에서 안과 밖의 경계를 뜻하는 ‘누마루’ 같은 분위기가 나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다락 측 지붕 아래 일부 벽을 없애고 난간을 달았다.
철 되면 감 열리고
들꽃은 번갈아 피우며 계절 알리고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누마루는 집 주인이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라고 가온건축은 전했다. 다락의 원형 창 아래로 긴 삼각형 철판을 매달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를 볼 수 있도록 한 장치도 들꽃집의 은은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계단실을 수납장으로 짜 넣어 책과 소품을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 박영채
물론 들꽃집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마당이다. “작아도 좋으니 나무나 꽃을 심고 바라볼 수 있는 마당과 정원이 꼭 있었으면 한다”는 건축주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원래 있던 담장 일부를 자연스럽게 살리고, 이 담과 집 사이의 7평 남짓한 공간이 자연스럽게 마당이 됐다.
일단 담장을 거실에서 바라다 보이는 편안한 벽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 앞에 감나무 한 그루를 심어 계절을 느끼게 했다. 노란 감이 열리는 가을철의 감나무는 들꽃집을 아늑한 보금자리로 만드는 주역이다.
가온건축의 부부 건축가는 마당에 다양한 풍경이 담길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작은 마당이지만,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각 장소에 의미를 부여했다. 볕이 들지 않는 그늘에는 고사리나 관중 등 음지식물을 심고, 대문 앞마당에는 다양한 들꽃을 50종 정도 열심히 심었다.
▲‘ㄱ’자 형태로 거실과 주방이 이어져 있다. 사진 = 박영채
담장 한 쪽에는 블록을 쌓고 대나무를 꽂아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우리가 이름을 알기 전에는 그냥 뭉뚱그려 잡초나 들꽃이라고 불렀던 것들의 이름과 위치를 일일이 기록한 ‘들꽃지도’를 담벼락에 그려 넣기도 했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이런 세심한 배려 하나하나가 작지만 편안한 ‘마당 있는 집’을 만든 배경이 됐다. 마당 있는 집을 꿈꾼다고 해서, 넓은 정원에 화려한 조경을 갖춘 근사한 전원주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은 증명했다.
-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
설계: 임형남, 노은주(가온건축)
설계담당: 최민정, 문주원, 이상우, 손성원, 이성필, 이한뫼, 박선민
위치: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76㎡
건축면적: 23.49㎡
연면적: 46.98㎡
규모: 2층+다락
높이: 7.84m
건폐율: 39.79% 용
적률: 79.57%
구조: 경량목구조
외장: 청고 벽돌
시공: 스타시스
감리: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설계기간: 2014.7~2015.3
시공기간: 2014.9~2015.7
사진: 박영채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