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법 이야기] 협의이혼 해도 사전 재산분할은 효력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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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최근 우리 대법원은 이혼 시 재산분할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놨습니다. ‘이혼 전 재산분할 청구권 포기 각서는 무효’ ‘재산분할 포기 각서, 협의이혼에서도 무효’ 등과 같은 제목으로 관련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이번 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A와 B는 2001년 6월 결혼했습니다. 이 부부는 2013년 9월 이혼하기로 했는데, A는 B의 요구에 따라 “위자료를 포기하고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습니다. 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을 낸 A와 B는 같은 해 10월 법적으로 이혼했습니다.
그런데 이혼 후 A는 B에게 재산을 나눌 것을 요구했습니다. B는 “A가 각서를 써주고도 말을 바꾼다”며 재산분할 협의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A는 B를 상대로 “6억 6800만 원을 달라”며 법원에 재산분할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여기엔 몇 가지 쟁점이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혼 후에도 재산분할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혼 시 재산분할은 이혼 당시에 확정하지 않아도 이혼 날로부터 2년 안에 청구 가능합니다. 즉, 먼저 이혼하고 2년 내 재산분할 청구를 진행해도 문제가 없습니다(민법 제839조의 2). 그래서 이 사건에서도 이혼 후 재산분할을 청구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혼 전 재산분할 합의서의 효력이 쟁점입니다. 이혼과 관련한 법률 상담을 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결혼생활 중에 이혼할 경우를 대비한 재산분할 합의서 또는 각서가 효력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가 “한 번 더 불륜 상대방을 만난다면 이혼 때 내 소유의 모든 재산을 배우자에게 주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습니다. 물론 이런 각서를 쓴 이후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각서를 작성한 이유와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기 마련이고, 결국 이혼 소송에 들어갑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런 경우 이혼 전 작성한 재산분할 포기 각서는 이혼 소송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재산분할 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혼이 성립하기 전의 재산분할 청구권은 아무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이런 이유로 “재산분할 청구권은 성질상 사전 포기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오랜 기간 판결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존 판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기존 판결은 “이혼 전에 재산분할 청구권을 협의했지만, 이 협의가 이혼 소송에서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혼 전 재산분할 협의는 협의이혼 시에도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 = 대법원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협의이혼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재산분할 청구권을 포기하는 서면을 작성했다고 해도 이는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 재산분할 청구권의 사전 포기에 불과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이혼 전 재산분할 협의는 ‘협의이혼’ 시에도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대법원은 “이혼 확정 당시 또는 이혼 후 2년 내에 재산분할 협의가 존재한 경우에만 재산분할 협의가 유효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산분할 청구권은 이혼 확정 후에만 성립
그럼 왜 협의이혼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을까요? 판결문 내용으로 짐작해보건대, 이 사건은 협의이혼 신청서를 작성할 때 재산분할에 관한 사항을 첨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협의이혼 신청 시 양육권과 양육비에 관한 사항은 필수적으로 기재해야 하지만, 위자료나 재산분할과 같은 금전적 부분은 필수 기재사항이 아닙니다. 그래서 재산분할에 관한 내용을 협의이혼 당시 누락했더라도 2년 내에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도, 협의이혼을 진행할 때 재산분할에 관한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첨부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입니다. 즉 협의이혼 때 범한 실수가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재산분할 청구권은 이렇게 이혼이 확정됐을 때 성립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가집행’ 판결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사사건은 1심 선고 때 가집행 판결이 붙습니다. 그래서 패소 상대방이 항소하는 경우에도 별도의 집행정지 신청을 하지 않는 한 일단 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가집행 판결로 채권추심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재산분할 청구권은 아직 확정된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1심 판결이 선고됐다 하더라도 가집행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의 법정이자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일반 민사사건은 패소 시 특례법에 따라 소 제기 이후부터 연 15% 이자를 부담하도록 판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산분할 청구권은 확정된 권리가 아닙니다. 적용되는 특례법 규정의 적용은 없고, 판결 확정시부터 이행지체 책임만 부담됩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