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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호주] 日에 폭격맞고 中 노려보는 호주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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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03.17 08:56:29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4일차 (멜버른 → 다윈)

항공기 뒷좌석의 행운

다윈(Darwin)행 항공기는 멜버른공항을 01시 45분 정시에 이륙한다. 다행히 드문드문 빈  자리가 있다. 항공기 뒤쪽 좌석을 예약해 놓은 덕분에 옆 두 자리가 모두 비어 4시간 넘는 야간 비행을 덜 힘들게 했다. 이번 여행도 각박한 일정이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야간 비행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항공기는 멜버른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호주 대륙을 종단한다. 도시의 불빛이 전혀 없는 호주 중부 내륙 황량한 사막의 하늘을 4시간 10분 날았다. 드디어 티모르해를 끼고 자리 잡은 도시가 나타난다. 멜버른에서 1941마일(3100km) 거리다. 영국의 박물학자,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의 저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이름을 딴 도시다. 다윈과 함께 세계 일주 항해를 했던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Beagle) 측량 기사가 훗날 이 지역을 탐험하고 지은 이름이다. 참고로 찰스 다윈은 시드니, 태즈매니아 등 호주 남동부 지역을 탐험했으나 여기는 들르지 않았다.

다른 나라 수도가 더 가까운 다윈

강하게 냉방을 가동하는 공항터미널을 나오니 찜통더위가 밀려온다. 사우나에 들어온 느낌이다. 지금 새벽 4시 반, 기온 29도다. 남위 12도, 적도가 멀지 않다. 북반구로 따지면 필리핀 마닐라나 태국 방콕 쯤 해당하는 위도다. 인구 12만 7000명의 다윈은 호주 노던준주(Northern Territory)의 수도로서 호주 사람들은 이 지역을 톱 엔드(Top End)라고 부른다. 호주의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이웃 나라의 수도가 더 가까운 지역이다. 시드니 3131km, 멜버른 3105km, 캔버라 3137km인 반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2720km,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 모르즈비(Port Moresby)는 1808km, 그리고 동티모르 수도 딜리는 불과 720km다.

▲티모르해가 보인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 지역이다. 사진=김현주

전략 요충 다윈

바로 이런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다윈은 북반구 질서에서 아주 멀리 빗겨나 있던 시드니와 멜버른과는 달리 세계사의 격동 속에도 휘말린다. 세계 2차 대전(태평양 전쟁) 당시 1941년에는 1만 명의 연합군이 다윈에 상륙했고, 1942년 2월 일본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던 것에 버금가는 규모의 대규모 공습을 두 차례 감행해 243명의 사망자를 내고 도시를 처절하게 파괴했다. 다윈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2011년 길라드(Gillard) 당시 호주 총리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맺은 조약에 따라 2012년부터 미 해병이 다윈에 주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당연하다. 70년 전 경계 대상이 일본이었다면 이번에는 중국으로 바뀐 것이다.

호텔에 곧바로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각이어서 공항터미널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낸다. 호주 각지로 떠나는 새벽 비행기를 타려는 승객들로 붐비던 터미널이 곧 한산해진다. 시드니나 멜버른보다는 한국이 한층 가까워진 곳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더 멀고 깊숙한 곳에 와 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아시아 쪽으로 가는 항공편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발리행 제트 스타(Jet Star) 정도가 있을 뿐으로, 원활한 항공 연결을 위해서는 시드니나 멜버른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노던준주 박물관에 전시된 애버리진의 예술품이 눈길을 끈다. 원주민의 예술품은 화려함과 정교함이 극치를 이룬다. 사진=김현주

거리의 방랑자 애버리진

더는 지루해서 못 기다릴 정도까지 기다리다 시내 호텔을 찾아 간다. 그래도 아침 8시 전이라 당연히 방은 준비가 안 됐지만 대신 샤워를 하게 해준다. 가방을 맡기고 도시 탐방에 나선다. 도시가 반듯하고 가지런하다. 1942년 일본의 대규모 공습과 1974년 사이클론 트레이시(Tracy)로 도시가 두 번 파괴됐지만 그때마다 새로 건설됐기 때문에 정돈은 잘됐다.

동남아시아가 가까운 지역이라서 인종 구성이 더 다양해졌다. 게다가 노던준주는 애버리진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만큼 그들도 자주 눈에 띈다. 윤기 나게 검은 얼굴에 심한 곱슬머리, 작은 체격에 유달리 가는 다리가 특징이다. 멜라네시안과 다르고 아프리카인과도 다른 이들은 과연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변변한 직업도 없이 하루 종일 그늘을 찾아 잠을 자는 노숙자이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대부분이어서 가슴이 아프다.

▲부끄러워하는 애버리진을 겨우 달래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김현주

관리로 가꾼 열대 낙원

다양성은 음식점에서도 나타난다. 전 세계 모든 음식점이 여기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윈 시내버스 1일 승차권(AUD 7달러)을 구입해 이동을 시작한다. 민딜 비치(Mindil Beach)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야자수로 조성된 공원도 그렇고 한없이 긴 해변 백사장도 그렇다. 배가 다닐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망망대해 티모르(Timor)해도 그렇다.

해변에는 스카이 시티(Sky City)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서 있다. 최고급 휴양 시설이다. 바로 여기가 열대 낙원 아닌가? 가슴 벅찬 열대 해변공원 풍경을 바라보며 티모르해에 발을 담그는 세리모니를 거행한다. 한국의 삼복더위가 생각나게 할 만큼 무덥지만, 공기가 매우 맑아 견딜 만하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방충 작업이 잘되고 물웅덩이와 쓰레기 관리가 잘 돼 모기나 날파리, 성가신 벌레들이 붙지 않는다. 땀이 물 흐르듯 흐르지만 이상하게도 찐득거리거나 불쾌하지 않다.

▲민딜해변에서 두 아름다운 여인이 평화로운 오후 한 때를 보낸다. 사진=김현주

빙하기 랜드 브리지

민딜 비치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노던준주 아트 & 갤러리(Northern Territory Arts & Gallery) 박물관은 이 지역의 고고학을 소개한다. 인간이 도래한 것은 5~6만 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30m 낮아 동남아시아에서 이곳으로 랜드 브리지(land bridge)가 연결됐다고 한다.

원주민의 예술품은 화려함과 정교함이 극치를 이룬다. 열대 미술의 화려한 자연 색채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동적이다. 박물관의 또 다른 주제는 1974년 크리스마스에 다윈을 찾아와 71명의 사망자를 내고 도시를 70% 이상 파괴한 사이클론(cyclone) 트레이시에 관한 기록이다. 동남아시아 예술 전시관이 있는가 하면 자연사관도 있어서 다양한 볼거리로 유명한 박물관이다.

일본의 다윈 공습

다윈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물이 있는 디펜스 오브 다윈 익스피리언스(Defense of Darwin Experience)와 다윈 군사박물관도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버스가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있어서 할 수 없이 택시를 불러 타고 간다(택시 요금 AUD 20달러). 1942년 일본의 다윈 공습을 집중적으로 다룬 곳이다.

일본 공습 이전까지만 해도 다윈은 군사 요충지라기보다는 선박들이 들러 석탄과 물을 보충하고 가는 보급 요충이었다. 그러나 차츰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연합군 주둔 등으로 군사력을 보강한 상태에서 다윈 공습이 발생한 것이다. 다윈 공습은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 공습에 버금갈 만큼 대규모였다. 진주만 공습에 항공모함 6척과 항공기 350대가 동원됐다면, 다윈 공습에는 항공모함 4척과 항공기 242대가 동원됐다. 폭격으로 인한 항구 잔해 제거 작업은 1959년 한 일본 기업이 자기 비용을 들여 자발적으로 담당했다고 한다.

▲기념비 많은 바이센테니얼(Bicentennial) 공원. 주변엔 고급 호텔과 맨션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김현주

일본 공습 미스터리

일본의 공습은 다윈만이 아니었다. 일본은 다윈 공습 이후 20개월 동안 100여 차례 호주 북부의 많은 도시들을 공습했다. 박물관은 일본의 공습에 대한 호주의 반격을 상세히 기록했다. 호주는 파푸아, 인도네시아 등의 전투에서 잡은 일본군 포로들을 호주 내 각 지역(주로 동부 지역)의 전쟁포로(POW) 수용소에 가둔다. 그 중 몇몇은 전쟁포로 수용소를 탈출해 호주 군이 추격에 나서곤 했다.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는 아직도 궁금한 것은 ‘왜 일본이 호주를 공격했는가’이다. 더구나 일본은 공습만 했을 뿐 호주 본토에 상륙한 일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아 호주 영토를 침공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단지 연합군 주축이던 호주가 태평양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경고 메시지 성격이 강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이 그나마 유일한 설명이다.

바로 옆 옥외 군사 박물관에는 당시 호주의 군사 장비와 오늘날 현대화된 군사 장비들을 전시하고 있다. 군사 박물관이 있는 이스트 포인트(East Point) 지역은 군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바닷가로 접근해 본다. 하얀 절벽 아래 파도가 일렁인다. 바람이 일더니 바다가 더 험해진다. 녹색 바다 멀리 수평선이 아득히 보인다. 잠시 북쪽 하늘을 보며 한국을 그려 본다. 참으로 멀고도 외딴 곳에 지금 내가 와 있음을 확인한다. 

▲06 다윈 군사박물관은 호주의 과거 군사 장비와 오늘날 현대화된 군사 장비들을 보여준다. 사진=김현주

다시 찾고 싶은 다윈

이제는 군사 박물관에서 시내로 나가는 것이 문제다. 3km 걸으면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 나오지만 한낮 찌는듯한 더위에 탈진하기 십상일 것 같다. 마침 관람을 마치고 떠나는 일행이 있기에 체면 불구하고 큰 길까지 라이드(승차)를 부탁했더니 반갑게 맞아 준다. 기운이 나는 순간이다. 다윈은 참 멋진 도시다. 3면이 바다여서 어느 방향으로 가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 풍광명미하고 사람들이 넉넉한 이곳을 언젠가 다시 한 번 찾고 싶지만 워낙 깊숙한 곳이라서 그냥 가슴 속에만 담아두어야 할 것 같다.

▲의사당 건물. 공공건물을 거대하게 짓는 것은 여기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사진=김현주

어찌 잊으랴!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한 후 시내를 둘러본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바이센테니얼(Bicentennial) 공원 주변에는 고급 호텔과 맨션이 줄지어 서 있다. 공원 가장 좋은 위치에는 세노타프(Cenotaph), 즉 세계대전 전몰자 추모비가 있다. 호주 어디를 가도 이러한 시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어찌 잊으랴(Lest we forget)’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또한 공원 곳곳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들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들이 많다. 예를 들어 다윈-자바(Darwin-Java) 해저 케이블 개통, 전신 개통 기념비 등이 그것이다. 공원이 항만 지역을 만나는 곳에는 거대한 의사당 빌딩이 있다.

젊음의 거리

호텔에서 오늘 여행 일지를 정리하는 지금 시각은 밤 9시다. 오늘은 금요일 밤, 젊은 여행자들의 파티 시간이다. 다윈의 동서 방향 중심 가로인 미첼 스트리트(Mitchell Street)를 따라 웃음과 담소가 넘친다. 호주 각 지역, 아니 세계 각 지역의 젊은이들이 만나서 정보와 생각을 교환하는 멋진 파티가 열리고 있다. 그들의 빛나는 젊음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적도 남쪽 아래 열대 낙원 다윈의 멋진 밤에 나도 마음으로나마 흠뻑 빠져 본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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