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안창현 기자) 지난 2014년 서울 석촌호수에 출몰한 노란 고무 오리 한 마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 노란 오리를 보기 위해 하루 평균 15만 명 이상이 석촌호수를 찾았다고 한다. SNS에도 노란색 오리 사진으로 가득 찬 건 마찬가지. 당시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떠올랐던 러버덕 얘기다. 한국에서 러버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곳이 앰허스트다. 이 외에도 키스 해링 전시나 ‘1600 판다+의 세계여행 프로젝트’ 등 유명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대규모 전시를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앰허스트의 최진한 대표는 일찍이 문화예술 콘텐츠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나 제레미 스캇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기업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등 새로운 마케팅 활동도 적극 선보여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다양한 활동에도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앰허스트만의 기준은 분명했다. “재밌거나, 놀랍거나, 감동적일 것.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우리 스스로가 재밌어야 그것을 보는 사람도 재미있고, 놀라고 감동 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최 대표는 말했다.
러버덕 프로젝트는 공공미술 기획사로서 앰허스트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당시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예상하긴 힘들었다.
러버덕은 네덜란드의 설치예술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흔히 볼 수 있는 장난감 인형인 고무 오리를 가로 16.5m, 세로 19.2m, 높이 16.5m 크기로 키운 작품이다. 그런데 이 노란 고무 오리를 보기 위해 한 달간 400만 명 이상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프랑스 생나제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본 오사카, 호주 시드니, 브라질 상파울루, 홍콩 등 전 세계 14개 도시를 거쳐 석촌호수에 이른 러버덕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러버덕을 보기 위해 하루 평균 15만 명 이상이 석촌호수를 찾았다. 사진 = 앰허스트
석촌호수에 러버덕을 띄운 첫날 바람이 빠지면서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통통했던 러버덕이 바람이 빠져 조금씩 고개를 숙이더니, 결국 물속에 머리가 반쯤 잠긴 채 서 버렸다. 그런데 바람 빠진 러버덕 사진이 인터넷과 SNS에 퍼지면서 오히려 더 인기가 높아지는 기현상을 낳았다.
앰허스트와 최진한 대표는 화제를 불러오기 위해 일부러 바람을 뺀 것 아니냐는 얘길 들었다. 주변에선 마케팅의 천재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최 대표는 “오리 안에 바람을 불어넣는 송풍기가 있는데, 그게 고장이 나서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기술자를 현장에 긴급 투입해 송풍기를 교체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화제가 되면서 유명세를 탔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당시 러버덕이 쓰러졌을 때 나 역시 같이 쓰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 프로젝트 준비하며 힘들었던 데다 사고까지 터져서 몸이 말이 아니었다”며 웃었다. 이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현장에서 별의별 일이 다 발생하는데, 사람들에게 소개할 좋은 프로젝트라는 소명의식이 그런 힘든 현장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앰허스트가 운 좋게 러버덕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설립된 이후 LG전자, 롯데백화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이나 크리스천 디올, 샤넬 등의 글로벌 기업과 꾸준히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러버덕 쓰러져 대박났다지만 그때 저도 쓰러져”
앰허스트는 처음부터 일반 전시기획사처럼 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미술을 미술관 밖으로 끌어내 대중들과 만나게 한 것이다. 그런 만큼 전통적인 미술 분야만 취급하지도 않았다. 팝아트, 그래픽디자인에서 피규어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려고 노력했다.
▲국내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돼 만든 ‘LED 장미정원 프로젝트’를 홍콩으로 옮긴 프로젝트는 현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사진 = 앰허스트
최 대표 역시 미술품을 사고파는 것에 그치기 마련인 미술 시장과는 다른 영역을 개척하려고 했다. 예술가와 기업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아트마케팅, 미술관 밖에서의 공공예술 등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개척한 이유다.
“앰허스트는 저를 포함해 마케팅 일을 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만든 회사다. 10년 이상 직장을 다니며 매너리즘에 빠질 당시, 앞으로 우리들의 미래는 어디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첨단 기술이나 IT, 금융 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생각이 달랐다고 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하드웨어로 버틸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소프트웨어,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마침내 뜻을 같이 한 친구들과 함께 앰허스트를 창업했다.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우선 미술 분야에 주목했다. 음악 같은 경우는 이미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해 있었다. K-팝 등 대중적인 관심도 많이 받았고, 일정한 규모로 산업화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미술은 아직 그렇지 않아 기회가 많은 분야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미술가를 꿈꾸기도 했다고 최 대표는 덧붙였다.
해외 콘텐츠 수입에서 이제 국산 콘텐츠 수출로
앰허스트의 첫 번째 작품은 2010년에 열린 미국의 유명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 전시였다. 국내에서 유료 관객만 15만 명을 모았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키스 해링은 작품이 국내에 잘 알려져 있었지만, 작가는 그렇지 못했다. 전시를 통해 키스 해링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평가다.
대박을 터뜨린 키스 해링 전 이후 독일의 현대미술가 요셉 보이스, 오스트리아 출신의 그래픽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등의 전시도 꾸준히 진행했다. 소설과 미술을 접목한 ‘어린왕자 한국 특별전’도 관심을 끌었다.
앰허스트는 여타 전시기획사처럼 전시 기획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었다. 전시를 꾸리면서도 그 전시를 통해 다른 예술가나 기업, 단체들과 협업을 한다든지, 전시의 성과 일부를 사회에 환원, 기부한다든지 해서 다른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점이 아마도 앰허스트만의 독특한 개성일 것이다.
앰허스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들도 꾸준히 진행했다. 앰허스트가 진행한 ‘1600 판다+의 세계여행 프로젝트’ 또한 러버덕 만큼이나 화제를 낳았다.
▲서울시 광장에서 선보인 ‘1600 판다+의 세계여행 프로젝트’. 사진 = 앰허스트
전 세계적으로 2008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폐지를 재활용한 판다 인형을 전시했는데, 1600마리는 당시 야생 대왕판다의 생존 개체수를 의미한다. 플러스(+)는 환경 보존을 위한 노력의 결과, 판다 개체수가 최근 늘어난 것을 뜻한다고 했다. 프로젝트에서는 아기 판다를 200마리 추가했다.
이런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미술관 밖에서 미술 작품의 가치를 대중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앰허스트는 최근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최 대표는 “외국에서 좋은 콘텐츠, 가치 있는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한국에 들여온 게 이제까지 앰허스트가 해온 첫 번째 단계였다면, 지금부터는 국내 콘텐츠를 가공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해외에 소위 ‘팔리는 콘텐츠’로 만드는 두 번째 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터가 꿈꾸는 놀이터
앰허스트는 이미 올해 국내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돼 만든 ‘LED 장미정원 프로젝트’를 홍콩에 소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최 대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이 프로젝트를 보고 가능성을 봐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기념으로 홍콩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해외 진출의 좋은 선례를 남긴 것 같아 힘이 됐다. 이 프로젝트로 청도, 싱가포르, 상하이, 뉴욕, 쿠알라룸푸르, 방콕, 오사카 등 전 세계 도시를 순회할 예정이다.”
최 대표는 국내 문화예술 콘텐츠들이 오히려 국내에서 평가절하 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해외에서 좋은 작품을 가져오는 일도 중요하지만, 성공 가능성 있는 국내의 좋은 작품을 진출시키는 일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국내에 통로가 없어서 그렇지 해외에 나가 성공할 가능성이 큰 콘텐츠들이 많다”고 최 대표는 지적했다.
앰허스트에서 자체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준비도 하고 있다. 앰허스트 내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진행해 자체 콘텐츠를 많은 이에게 소개하는 것이 앰허스트의 최종 비전이다. “본질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크리에이터가 되자는 생각이다. 앰허스트의 비전도 거기 있다”는 최 대표는 이를 위해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