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설계교수회, ‘단독주택: 나의 삶을 짓다’전
▲김중업박물관에서 7월 3일까지 열리는 ‘단독주택: 나의 삶을 짓다’전. (사진=안창현 기자)
(CNB저널=안창현 기자) 이제 조금씩 집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 김중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단독주택: 나의 삶을 짓다’를 보면 이런 추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가 그저 자산가치로 환산만 하거나, 먹고 자는 기거처 정도로만 생각했던 집은, 이제 삶의 가치와 풍요를 담는 그릇이란 생각으로 변하는 추세다.
안양문화예술재단과 한국건축설계교수회가 공동 주최한 전시 ‘단독주택’은 제목 그대로 단독주택이란 렌즈를 통해 집이란 장소를 다시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주최 측은 “최근 변화하고 있는 집에 대한 인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소영-장동건 부부의 집으로 유명한 ‘신천리 주택’을 만든 곽희수 건축가, ‘도천 라일락집’을 설계한 정재헌 건축가 등 유명 건축가의 단독주택들을 현장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색다른 즐거움이다. ‘아파트=좋은 집’이라는 공식이 흐려져가는 요즘, 다양하게 전시된 단독주택들을 보면서 우리의 집과 삶을 돌아보게 된다.
▲2015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정재헌 건축가의 ‘도천 라일락집’ 전시 전경. (사진=안창현 기자)
1부와 2부로 구성된 전시에서 1부는 단독주택의 여러 면모를 살필 수 있도록 ‘누가, 어디서, 어떻게’라는 키워드를 동원했다. ‘누가’에서는 단독주택을 매개로 한 건축가와 건축주의 관계를 보여주고, ‘어디서’에서는 도심과 전원의 여러 주택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어떻게’에서는 획일화된 집이 아니라 우리 삶에 맞는 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몇 가지 대안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협소주택, 원도심 주택, 적정 주택 등
다양한 단독주택 프로젝트 보여줘
먼저 첫 전시실의 ‘누가’는 건축가와 건축주 모두를 가리킨다. 건축가의 작업은 1차적으로 건축주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를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는 이를 넘어 건축을 통해 건축주의 일상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시는 곽희수, 정재헌, 이중원-이경아 건축가의 단독주택을 통해 건축가와 건축주가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곽희수는 일반적인 건축 형태와 공간 구성을 벗어나는 창의적 건축가로 유명하다. 또 유명인의 집과 건물(루트하우스, 신천리 주택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곽 건축가의 주택은 단순히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합리적이고 건축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집이란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게스트하우스 리븐델이나 신천리 주택 같은 교외주택에서 그는 집 안에서 외부의 자연을 새롭게 지각할 수 있도록 건축과 자연을 연결하는 데 공을 들였다.
특히 루트하우스나 루프런하우스를 보면 지면이 자연스럽게 주택의 지붕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거나, 거주자가 경사진 지붕에서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도록 배려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종로에 소재한 정재헌 건축가의 ‘도천 라일락집’. (사진=박영채)
▲성남 판교주택단지의 이중원-이경아 건축가 작 ‘삼대헌_건축가 부부가 사는 집’. (사진=진효숙)
정재헌 건축가의 도천 라일락집은 한국 서양화의 1세대인 도상봉 화백이 당대 화가들과 교유하고 후학을 양성하던 집터에 세워졌다. 도 화백의 후손들이 4대째 사는 곳이다. 이 집에선 살림집과 도 화백의 기념관을 겸한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친밀한 소통의 결과로 만들어진 도천 라일락집은 2015년 한국건축가협회상, 서울시건축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또 건축가 이중원과 이경아의 ‘삼대헌’은 문자 그대로 삼대가 사는 집이다. 건축가 부부인 이중원과 이경아는 현실적인 이유로 부모님과 자신들, 그리고 자녀가 함께 살 집을 설계하며 동네와도 막힘없이 소통하길 원했다.
삼대헌은 판교 주택 단지 내에 있는데, 이 단지에는 담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조례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단지 내 단독주택들은 밖으로는 닫혀 있고, 안으로는 열려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프라이버시 확보라는 이유로 도로를 향한 창이 매우 적고, 안쪽으로만 큰 창을 내는 스타일들이다.
그런데 삼대헌에서 부부 건축가는 주택의 공적 생활 영역과 사적 생활 영역을 나눠 공적 영역은 투명하게, 사적 영역은 불투명하게 설계했다. 공적 영역은 마을 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도록 설계됐다. 주택 안에서 거주자끼리의 소통만이 아니라 건물 주변과의 소통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 얻은 결과다.
전원과 도심의 서로 다른 집들
전시의 두 번째 주제 ‘어디서’는 단독주택이 놓인 장소에 주목한다. 풍성한 자연경관 속의 주택과, 복잡다단한 도심 한가운데 놓인 집을 대조해 볼 수 있다. 이 섹션에서 선보인 김현진 건축가의 ‘혼신지집’은 경북 청도군의 호수 혼신지를 마주한 전원주택이다. 풍성한 자연을 어떻게 집 안으로 들여놓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집이다.
한편 윤재민 건축가의 ‘대청동 협소주택’은 원도심에서 새 집이 도시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김승회 건축가는 전원과 도시의 대비되는 환경에서 주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소개한다.
▲윤지민 건축가의 ‘대청동 협소주택’은 부산 원도심에 지어졌다. (사진=윤준환)
먼저 혼신지집은 김현진 건축가의 SPLK 건축사사무소와 다른 협력업체들이 밀도 높은 협업으로 선보인 작품이랄 수 있다. 특히 건축자재 측면에서 주변의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인근 석산에서 가져온 청석이나 시멘트 보드, 목재 등을 적절히 조합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하나의 수공예 작품 같은 느낌이다.
혼신지집이 최적 입지에 들어선 전원주택이라면, 대청동 협소주택은 도심 속 5m 폭에 17m 높이를 가진 집이다. 여기서 윤지민 건축가는 원도심 주거의 새로운 가능성과 확장성을 보여줬다.
윤 건축가는 삶이 도시로 확장되고, 도시가 한 건물로 흡수될 수 있는 구조를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이 협소주택의 1층에는 건축주의 주요 수입원이 되는 상업 공간이, 2층엔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사랑방, 3~5층엔 주거 공간이 각각 자리 잡았다.
김승회 건축가는 그간 작업한 주택 작품들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주택의 전형’을 제시했다. 그는 삶이 형상화된 공간이 집이며, 각 시대는 전형을 만들어낸다고 여긴다. 그러니 전원과 도시라는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주택의 전형이 만들어짐을 보여준다.
그는 집을 단순히 방과 거실, 부엌의 조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들’의 집합으로 볼 것을 권한다. 집은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세계들의 공존이며,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내 집은 어떻게?”
마지막 ‘어떻게’는 현실적인 고민을 다룬다. 내 삶에 맞춰 단독주택을 어떻게 지을지 생각해보는 자리다. 여기서 김동진 건축가는 집이란 거주자들이 각자의 삶에 맞춰 재구성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다가간다. 건축가의 개입보다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재구성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다.
제이와이아키텍츠의 조장희와 원유민 건축가는 건축에서 간과되고 쉽게 지나쳐온 재료들의 가치를 보여주는 한편,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적정한 기술에 의한 적정 주택은 무엇이 될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OBBA의 이소정과 곽상준 건축가 또한 가파른 경사의 자투리땅에 지은 ‘50㎡ 하우스’를 통해 우리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김동진 건축가의 ‘커스토마이집(Customi-Zip)’. (사진=박완순)
▲전남 장흥에 지어진 조장희, 원유민 건축가의 ‘저예산 주택 시리즈 2’. (사진=황효철)
김동진 건축가는 변화를 거듭하는 현대도시와 그 속에서 숨 쉬는 건축,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환경의 상호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집 설계에 대해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재료, 방, 사람들이 자연스런 관계 형성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하고 점차 진화해 가는 장소가 되도록 배경을 그리는 것”이란 자신의 정의를 제시한다.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비교적 큰 규모의 단독주택 ‘커스토마이집(Customi-Zip)’에서 그의 이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집의 맞춤제작(customizing)는 쉽지 않을뿐더러 건축가의 개입에 한계가 있고, 외형 디자인 역시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족 구성원의 움직임에 따라 재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구조를 제시했다. 개인의 생활 패턴에 따라 재구성되는 집의 형태를 모색한 것이다.
‘적정 주택’에 대해 생각하는 조장희, 원유민 건축가는 사회 속에서 건축가의 역할과 함께 건축의 저변을 넓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건축이 건축가와 사용자 모두에게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번 전시에서 두 건축가는 ‘적정 기술, 적정 주택’이라는 제목 아래 그간 작업해온 ‘저예산 주택’에 사용된 재료들을 실물 크기로 설치했다. 벌교, 장흥, 정읍, 보성에 지어진 집들은 건축에서 간과되거나 쉽게 지나쳐온 재료들에 어떤 가치를 담을 것인지에 대한 건축가의 고민을 보여준다.
OBBA 이소정, 곽상준 건축가의 ‘50㎡ 하우스’는 홍제동 개미마을 초입의 자투리땅에 세워졌다. 신혼부부 건축주는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이외의 대안을 고민했고, 의미없어 보이는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기보다 작지만 풍요로운 자신들만의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OBBA는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작은 공간에 풍부한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OBBA는 집에서 정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우리 삶을 담고 짓는 주택
1부에 이어 2부 전시는 한국건축설계교수회 소속 건축가들의 다양한 단독주택 프로젝트들을 보여준다. 총 57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저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데, 서로 너무 다른 단독주택들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양한 단독주택의 형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긴 결과다. 이번 전시 ‘단독주택: 나의 삶을 짓다’는 지금 여기에서 지어졌거나 지어지고 있는 다양한 단독주택들을 통해 우리의 주거 문화를 한 번쯤 돌아볼 기회를 준다. 전시는 7월 3일까지 안양 김중업박물관에서.
▲도시, 건축, 환경의 상호작용에 주목한 김동진 건축가의 ‘커스토마이집’ 전시장. (사진=안창현 기자)
안창현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