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법률 칼럼] “미운 자식에게도 조금 남겨줘라”는 유류분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최근 상속과 관련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류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수강생 한 분이 유류분의 한자 뜻에 대해 질문해 당황했습니다. 저도 평소 유류분의 한자 뜻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유(遺)는 ‘전하다, 끼치다’는 뜻이고 류(留)는 ‘지체하다, 기다리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분(分)은 ‘부분, 나누다’는 뜻이니 유류분(遺留分)은 ‘후세에 전하는 것을 지체하는 부분’ 정도가 됩니다. 즉 “다 물려주지 말고 일부는 남겨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류분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의는 ‘일정한 범위의 상속인에게 상속재산 중 일정 비율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면 법률 전공자가 아닌 한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류분에 대해 ‘미운 자식에게도 조금은 남겨줘라’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자식에게도 일부 재산은 물려주는 것이 바로 유류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제도가 왜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모은 재산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주는데, 왜 국가가 나서서 간섭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류분이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이어져 왔던 전통적인 권리도 아닙니다. 1977년에 법으로 규정되면서 도입된 권리입니다.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유언장을 써도 유류분에 대한 권리는 박탈하지 못합니다.
그럼 유류분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유류분은 기본적으로 3순위 상속인까지 인정되는 권리입니다. 우리나라의 상속은 4순위까지 이뤄집니다.
1순위: 직계비속(자녀) + 배우자(50% 가산)
2순위: 직계존속 + 배우자(50% 가산)
3순위: 형제자매
4순위: 4촌 이내의 방계혈족(삼촌, 이모, 조카, 사촌형제)
예를 들어 내가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1, 2, 3순위 상속인들이 없는 상황, 보통 친척으로 조카들만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그 중 나는 내게 평소 잘 했던 한 명의 조카에게 재산을 다 물려줘도 나머지 조카들이 유류분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3순위까지만 유류분권이 인정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실제로 제가 실버타운에서 유언장을 작성했던 경우들 중 재산을 물려줄 상속인이 조카들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유언자는 생전에 자신에게 잘했던 조카에게 재산을 물려주려 하고, 이를 위해 유언장을 많이 작성합니다.
보통 유언장을 쓰시면서 “평소에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조카가 내 재산을 가져가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많이 하시기도 합니다. 유류분으로 인정해야 하는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자 상속분의 2분의 1에서 3분의 1이 유류분으로 인정됩니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2.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3.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4.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예를 들어 아버지가 부인과 남매를 자식으로 두고 사망한 경우 상속분과 유류분 비율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인(배우자)의 상속분은 50% 가산하기 때문에 유류분의 경우에도 그 비율이 커집니다
만약에 아버지가 7억 원의 재산이 있습니다. 이를 부인에게 모두 물려주고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은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7억 원에 대한 상속분과 유류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장남과 장녀는 아버지의 부인이 받은 7억 원 중에서 각자 1억 원씩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유류분권이 있습니다.
앞서 유언장 작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유류분은 유언으로 박탈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설사 유언으로 전 재산을 특정인에게 주도록 했더라도 상속인은 유류분만큼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위의 경우 아버지가 유언장을 써서 부인에게 7억 원을 모두 유산으로 남겼더라도 장남과 장녀는 각각 1억 원을 유류분으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유언장을 남길 경우, 작성 단계부터 유류분을 미리 고려해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언장은 언제나 법률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물려줄 재산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면 유류분 계산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식, 부동산, 채권 등 액면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유류분을 계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효에 의해 소멸할 수 있어 주의
그리고 유류분과 관련해 가장 많이 놓치는 것이 시효입니다. 종종 사무실에 몇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상속재산을 가지고 유류분 청구소송을 의뢰하겠다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민법은 “반환의 청구권은 유류분 권리자가 상속의 개시와 반환하여야 할 증여 또는 유증을 한 사실을 안 때로부터 1년 내에 하지 아니하면 시효에 의하여 소멸한다. 상속이 개시한 때로부터 10년을 경과한 때도 같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1117조).
상속이 개시된 날(위 사례에서는 아버지가 사망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하거나 유류분의 침해를 안 날로부터 1년이 지나면 더 이상 유류분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위의 기간 중 하나만 경과해도 유류분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즉, 몇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상속재산을 가지고 유류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특별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한’ 매우 어렵습니다.
(정리 = 안창현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