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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vs 뮤지컬] '스위니토드', 원조 뮤지컬의 위엄

영화는 팀 버튼 감독다운 괴기 더하고 뮤지컬은 위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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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1호 김금영 기자

▲뮤지컬 영화 '스위니토드'(위)와 뮤지컬 '스위니토드'의 한 장면. 영화와 뮤지컬은 각자의 특성을 살린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오디컴퍼니)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찌이이이이잉!” 막이 오르고 고막을 찌르는 섬뜩한 소리에 주변의 관객들도 동시에 살짝 비명을 질렀다. 이어 “들어는 봤나, 스위니토드, 창백한 얼굴의 한 남자”라며 배우들이 입을 맞춰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막의 시작이 산뜻 발랄하지 않다. 배우들의 얼굴은 새파랗고, 갈기갈기 찢어진 옷까지. 꼭 한여름 납량 특집을 보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이 무대를 감돈다. 언뜻 보면 좀비들의 합창 같기도 하다.


이런 느낌, 이전에도 받은 적이 있다. 뮤지컬 영화 ‘스위니토드’도 스산한 분위기가 특징이었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스위니 토드(부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는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연출로 마니아들에게 사랑 받았다.


그리고 이 영화 이전에 뮤지컬 ‘스위니토드’가 먼저 있었다. 1846년 출간된 영국 잔혹물 시리즈 소설에서 등장한 스위니토드 캐릭터를 바탕으로 1979년 3월 뉴욕 유리스씨어터에서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 및 작곡, 휴 휠러 극본, 해럴드 프린스 연출로 초연됐다. 국내엔 2007년 첫선을 보였다. 올해엔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뮤지컬 ‘스위니토드’가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내용은 잔혹한 복수극이다. 극의 배경은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경제적·문화적 성장 속 심각한 혼돈을 겪은 19세기 영국이다. 부패, 광기, 살인, 복수 등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감이 ‘스위니토드’ 전반에 흐른다. 이 극심한 시대 배경 속에서도 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딸 루시와 오순도순 즐겁게 살았다.


하지만 루시에게 흑심을 품은 터핀 판사에 의해 벤자민 바커는 추방을 당하게 되고, 터핀 판사는 루시를 잔혹하게 탐한다. 충격을 받은 루시는 독약을 마시고, 이후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벤자민 바커가 돌아온다. 이제 그의 이름은 스위니토드다. 분노만이 가슴에 있을 뿐, 이전의 따뜻한 벤자민 바커는 온데간데없다. 터핀 판사가 자신의 딸 조안나를 양딸로 데리고 가고, 이어 조안나까지 탐하려는 걸 알게 된 스위니토드는 복수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 복수를 스위니토드에게 연정을 품은 파이 가게 주인 러빗부인이 돕는다. 그 복수의 내용이 뮤지컬과 영화 모두에 흐른다.


서늘한 매력의 조니 뎁-헬레나 본햄 카터
vs 허를 찌르는 귀요미 조승우-전미도


▲영화 '스위니토드' 속 조니 뎁(왼쪽)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하는 스위니토드와 러빗부인은 섬뜩한 느낌이 강하다. 미소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내용은 같지만 배우들의 표현 방식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는 여러 뮤지컬 영화에 출연하며 가창력과 연기력을 드러내온 바 있다. 조승우와 전미도 또한 공연계의 ‘믿고 보는 배우’로 꼽힌다. 이 각양각색 배우들의 특유의 개성을 입은 스위니토드와 러빗부인의 표현 양상이 살짝 다르게 느껴져 흥미를 끈다.


영화 속 조니 뎁이 연기하는 스위니토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늘한 매력이 강하다. 그리고 도도하다. 느낌이나 비주얼은 이전에 조니 뎁이 연기한 ‘가위손’의 에드워드를 떠올리게도 한다. 뽀얗다 못해 아예 새하얗게 탈색을 시킨 것만 같은 창백한 얼굴, 거기에 묘한 표정까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에드워드에게 있었던 순박함이 스위니토드에게서는 사라졌다. 조니 뎁의 스위니토드는 시종일관 냉소적인 표정이다. 미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항상 심각하고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속내를 알 수 없어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런 조니 뎁과 호흡을 맞춘 헬레나 본햄 카터도 섬뜩한 느낌을 지녔다.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의 호흡은 다양한 영화에서 비춰졌는데, ‘스위니토드’에서뿐 아니라 ‘다크 섀도우’에서도 섬뜩한 커플 호흡을 보여줬다. 새하얀 얼굴에 다크서클이 짙은 조니 뎁의 스위니토드는 매우 느낌이 강렬한데, 헬레나 본햄 카터는 여기에 뒤지지 않는다. 비주얼, 그리고 광기 흐르는 눈빛으로 남자 배우에 묻히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동시에 바로 아래로는 내 배에 칼을 꽂을 것만 같은 서늘한 공포감이 그녀에게 있다. 그래서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의 호흡은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흐른다.


▲뮤지컬 '스위니토드'의 러빗부인(왼쪽, 전미도 분)과 스위니토드(오른쪽 사진 뒤, 조승우 분)는 섬뜩한 가운데 푼수끼가 더한 매력이 있다.(사진=오디컴퍼니)

무대 위 조승우와 전미도가 연기하는 스위니토드와 러빗부인도 잔혹하고 섬뜩하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과도 같은 귀여움도 찾아볼 수 있다. 계획이 잘 실행되지 않을 때 안절부절 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인다. 1막 때 조승우의 스위니토드는 겉으로는 툴툴대지만 결국은 러빗부인의 말에 따라가는 ‘츤데레’와도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복수심이 가득 불타는 야수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가 러빗부인이 만든 파이를 한 입 먹고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며 황급히 뱉어내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자아낸다.


전미도의 러빗부인은 푼수끼가 강하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스위니토드에게 빠진 그녀는 끊임없이 스위니토드에게 들이대지만(?) 그 과정이 수월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잔혹한 복수극이 이어지는 가운데, 웃음 포인트를 담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스위니토드의 뺨에 수없이 뽀뽀를 날리기도 하고, 스위니토드의 뒷수습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분명히 잔혹한데 귀엽다. 요상한 매력이다.


이들의 귀여움이 폭발하는 장면이 있다. 1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이자, 가장 많은 박수가 쏟아져 나오는 ‘어 리틀 프리스트(A Little Priest)’다. 노래 가사는 엽기적이다. 스위니토드가 자신의 본래 정체를 아는 인물을 살해한 뒤, 러빗부인이 시체를 버리기 아깝다며 고기파이의 재료로 쓰자고 제안하는 내용이다.


“너무 아깝다, 정말 낭비야, 오동통한 게 아주 실해” “푸른 바다향 가득한 해군을 먹어봐요, 육즙이 대박, 짭잘한 게 간도 딱 맞거든요” “사체업자 드려볼까” “배우 드실라우” 등…. 비위가 약한 자에게는 거슬릴 수 있는 가사들이다. 그런데 이 가사를 조승우와 전미도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함께 왈츠를 추며 노래한다. 가장 잔혹한 계획이 실행되는 첫 단계에서 이들은 가장 활발하게 웃고 발을 동동 구르며 춤을 춘다. 오히려 천진난만해 보일 정도다. 그리고 행복이 가득 넘쳐흐르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보는 관객들 또한 미묘하게 따라 웃게 되는, 가장 묘한 구간이다. 그야말로 잔혹 코미디다.


영화의 다채로운 장면들
vs 현장감을 바탕으로 한 무대


▲영화 '스위니토드'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톤을 지녔다. 이 가운데 살인이 벌어질 때는 빨간 핏빛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연출 방식에 따라서도 영화와 뮤지컬은 각각의 특성을 보인다. 화면 줌아웃이 가능하고, 장면 전환 때마다 다양한 장소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넓다. 스위니토드의 얼굴 주름 하나의 변화까지 놓치지 않으며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특히 스위니토드가 면도와 이발을 하러 자신의 이발소에 찾아온 사람들의 목을 칼로 그어버리고, 그 시체를 아래 창고로 배달하는 장면은 그로테스크의 진수다. 발아래 설치된 레버 장치를 밟으면 바닥의 공간이 열리면서 시체가 떨어진다. 그리고 이 시체를 받고 러빗부인이 좋아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이 장면이 화면에 비춘다.


우아한 노래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잔혹한 살인 장면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강렬함을 극대화하는 것은 영화가 지닌 전체적인 색감에서도 비롯된다. 영화의 전반적인 톤은 어둡다. 거의 원색을 배제하고 어두운 블랙 계열의 톤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렇게 블랙 톤에 익숙해졌을 무렵, 영화는 강렬한 빨간색의 핏빛을 마구 뿌린다. 목에서 넘쳐흐르는 피는 차분한 전체 배경 속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기에, 더 눈을 사로잡는다.


▲뮤지컬 '스위니토드'의 무대. 크게 3층으로 구분지어진 무대는 심플한 구성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도록 구성됐다.(사진=오디컴퍼니)

무대는 화면 줌아웃의 기능이 없어 배우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보여주기엔 힘들다. 장면 전환에 있어서도 세트의 한계가 있어 장소의 구체적 재현이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현장감 넘치는 연출이야말로 무대의 백미다. 배우들의 호흡을 직접 느낄 수 있고, 무대 연출 또한 눈길을 끈다. 일단 뮤지컬에서는 세 개의 큰 층을 형성해 마치 아파트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 구성을 취한다. 많은 소품과 세트를 등장시키기보다는 심플한 구성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더욱 집중하도록 했다.


3층부터 1층까지 모든 배우들이 등장해 함께 노래하는 모습은 중압감을 준다. 스위니토드의 이발소가 주로 재현되는 곳은 2층이다. 관객들은 눈앞에서 배우들의 목에 빨간 핏빛이 드리우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2층에 미끄럼틀을 설치해 살인 후 시체가 1층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이 매끄럽게 연결된다. 잔혹한 고기파이 가게의 실체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구성이다. 시체가 배달되는 1층의 부엌은 붉은 조명까지 어우러져 섬뜩한 느낌을 더한다. 일반 정육점 창고에 돼지 시체가 걸려 있다면, 여기엔 사람 시체가 걸린 셈.


신춘수의 ‘스위니토드’
vs 이후 박용호의 ‘스위니토드’


▲뮤지컬 '스위니토드' 포스터. 현재 '스위니토드'는 신춘수 프로듀서가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한 프로덕션이다. 이후엔 박용호 프로듀서가 만드는 '스위니토드'를 볼 수 있을 전망이다.(사진=오디컴퍼니)

영화와의 비교도 흥미롭지만, 또 기대가 되는 건 이후 또 등장할 ‘스위니토드’다. 한국에서 제작되는 이번 ‘스위니토드’는 신춘수 프로듀서와 박용호 프로듀서가 각각의 독창적인 프로덕션을 시즌 별로 선보이는 형태를 택했다. 두 프로듀서는 2015년 뮤지컬 ‘스위니토드’를 공동 제작한 바 있다. 이번엔 각자의 개성을 더 살린 무대를 선보이는 과정을 택했다. 이와 관련해 오디컴퍼니 측은 “스티븐 손드하임의 ‘스위니토드’를 시즌에 따라 다양한 측면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며 “개성 있는 두 가지 스타일의 프로덕션을 기대해도 좋다”고 밝혔다.


첫 시작은 신춘수 프로듀서가 먼저 열었다. 리드 프로듀서로 작품 해석과 제작 방향 등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반영한 작품을, 롯데엔터테인먼트 및 (주)에이리스트코퍼레이션과 함께 선보였다. 신 프로듀서는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드라큘라’ ‘닥터지바고’ 등을 국내에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스위니토드’에서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활발하게 작업 활동을 펼쳐 온 에릭 셰퍼가 연출로 참여했다. 스티브 손드하임과 오랜 시간 작업을 해 온 연출가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서는 연출로서의 첫 무대를 올렸다. 심플한 무대 구성부터 흡입력을 높이는 조명까지 세밀한 연출을 보였다. 그리고 신 프로듀서는 ‘닥터지바고’ ‘지킬 앤 하이드’ 등에서 그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조승우를 캐스팅해 스위니토드 역할로 무대에 올렸다. 또 앞서 ‘스위니토드’에 출연한 바 있는 양준모를 캐스팅했고, 옥주현, 전미도, 서영주, 윤소호, 이승원, 김성철, 이지혜, 이지수를 한데 모았다.


다음 시즌엔 박용호 프로듀서가 리드 프로듀서로서 나선다. 그만의 개성 있는 색깔로 연출을 비롯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팀을 구성해 또 다른 ‘스위니토드’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박 프로듀서는 ‘스프링어웨이크닝’ ‘넥스트투노멀’ ‘번지점프를 하다’ ‘김종욱 찾기’ 등을 선보인 바 있다. 신 프로듀서와는 다른 스타일의 ‘스위니토드’를 또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두 프로듀서에게도 각자 자극을 받는 계기가 될 것 같다.


현재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공연은 10월 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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