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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행근 중국 부자 - 양란] 얼굴 아닌 의지로 거부 이룬 ‘中 12대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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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1호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2016.07.11 09:20:53

(CNB저널 = 송행근 중국경제문화학자) 부자들은 사랑받고 존경받을 수 있을까? 중국인들은 결코 부자를 사랑하거나 존경하지 않는다. 부러워하고 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바로 양꽝(陽光) 미디어투자그룹 회장 양란이다. 

양란(杨澜)은 중국 미디어의 여제(女帝)이다. 중국의 ‘오프라 윈프리’로 불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 상하이엑스포 등 중국의 초대형 국제행사 때마다 개막식 사회를 맡았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여성이자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미모와 지성 그리고 명망 등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2014년 자산 70억 위안을 보유하여 중국 여성부호 20위를 차지할 정도로 갑부다.  

양란은 1968년 3월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베이징외국어대학 교수였다.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베이징외국어대 영어학과에 진학했다. 그의 꿈은 미국 금융가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중국 국영 방송인 CCTV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한 것이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최종 합격한 사람은 당시 1000여 명이 넘는 경쟁자 가운데 가장 예쁜 후보였다.  

양란은 처음으로 실의에 빠진다. 그리고 외모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라는 값진 교훈을 얻는다. 사실 양란은 중국 최고의 미인 가운데 한 명이다. 오드리 헵번과 오프라 윈프리를 합쳐 놓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 남방인물주간지가 중국 건국 이후 60년 동안 중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중국인의 마음에 깊이 아로 새긴 미인 12명 중 하나로 선정하였을 정도이다. 

하지만 양란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미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땐 통통한 편이어서 예쁘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유년 시절부터 대학을 다닐 때까지 여자에게 있어 외모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인식했다. 그런데 아나운서 선발에서 최고의 미인이 합격된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뀐 것이다. 외모가 여성의 가장 중요한 무기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아나운서 시험의 낙방으로 인해 힘들어할 때 그를 일으켜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너는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그것을 가꾸라”고 하셨다. 

마침내 양란은 대학 4학년 때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CCTV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다. 어떻게 합격했을까? 당당한 자기만의 철학이 주효했다. 당시 중국의 여자 아나운서는 남성 앵커의 보조에 불과하였다. 남성 앵커가 주연이고 여성 앵커는 화병이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여성 앵커는 예쁜 화병이 아니라 남성 앵커와 똑같이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강한 설득력은 합격이란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2012년 세계 경제 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양란. 사진 = 위키피디아

양란은 입사와 동시에 자질을 인정받는다. 중국 최초 오락 프로인 ‘정다중이(正大綜藝)’를 진행하면서 앵커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최고 아나운서에게 수여되는 ‘골드 마이크’를 입사 5년차에 받았다. 아울러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대만·싱가포르 등 중화권 시청자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으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실력 아닌 미모로 아나운서 뽑히는 거 보고 
“미모 아닌 실력” 외치며 성공가도 달린 미모 여걸 

아나운서로 실력을 한창 인정받던 그는 모험을 한다. 1994년 과감히 사표를 내고 유학을 떠난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국제관계학과 저널리즘 등을 공부했다. 미국 유학은 양란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 준 기회와 행복의 시공간이었다. 1996년 대학원 재학 중이던 친구와  ‘2000년 한때’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컬럼비아방송을 통해 오후 7시 황금 시간대에 미국 전역에 송출됐다. 그 결과 ‘미국 주류 매체에 진출한 최초의 중국인’이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97년 컬럼비아대학 이사에 뽑히는 등 미국에서도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또한 미국 유학 시절 평생의 반려자 우정(吳徵)을 만나 1995년 결혼한다. 우정은 홍콩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교육 받은 인텔리였다. 그는 양란이 미디어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경제적으로 적극 후원했다. 현재 중국 시나닷컴의 주식을 25%이상 보유하고 있다.  

양란은 1997년 다시 미국에서 이룬 모든 것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1999년 남편과 함께 양광(陽光) 미디어투자그룹을 설립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선 TV’가 첫 미디어사업이었다. 주로 중국 문화와 중국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특히 ‘콘텐츠가 힘’이라는 원칙 아래 IP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현재 양광그룹이 보유한 문화 콘텐츠 IP는 약 500여 개에 이른다. 이는 중국 부동산 기업인 완다(萬)그룹이 주로 극장을 사들여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식으로 문화 산업에 진출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부인 양란과 함께 양광문화재단을 창립한 남편 우정. 사진 = 양꽝 미디어투자그룹 웹사이트

2000년 남편의 도움을 받아 홍콩 증권시장에 상장해 있던 위성방송사인 량지를 3500만 위안에 인수하며 미디어산업에 뛰어들었다. 2001년부터 양광위성TV를 통해 ‘양란방담록(楊瀾訪談錄’)이라는 인터뷰 성격의 토크쇼를 진행했다.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전직 미국 대통령들,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영국의 앤드루 왕자, 소피 마르소 등 세계 유명인사 800여 명과 대담한다. 이를 계기로 양광TV의 인기와 브랜드 가치를 크게 끌어올리면서 세계적인 미디어 여왕으로 부상한다. 

양란은 사회공헌 사업에도 열심이다. 중국의 다른 부자들과 달리 그가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다. 2005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7백억 원을 투자해 양광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수익의 51%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환경보호, 교육단체의 홍보대사를 맡아 기금을 모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매년 재단에 2억~3억 위안을 출연하며 교육과 빈곤 퇴치 사업에 힘쓰고 있다. 

양란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 세계 최대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華爲)의 쑨야팡(孫亞芳) 회장 등과 함께 중국의 여성 리더로 영향력과 함께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3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했다. 

양란은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여성’으로 통한다. 1조 원이 넘는 재산에다 뛰어난 미모와 재능, 여성 앵커로서의 명망, 행복한 가정 등 모든 것을 가졌다. 그는 중국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의 의지를 큰소리로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원한다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주변 사람에게 널리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래야 여성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10회부터 전국정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남녀 퇴직연령 차별 철폐 등을 주도하며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양란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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