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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페루 마추픽추] 절로 천천히 살게되는 해발 2300m 古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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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6.10.10 09:20:47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3일차 (마추픽추 → 쿠스코)

잃어버린 도시

해발 2300m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 예일대 교수인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깊은 수풀에 묻힌 채 아무도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잃어버린 도시’ 혹은 ‘공중도시’라고도 불린다. 마추픽추는 우루밤바 강 위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건설돼 아래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고 접근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마추픽추 가는 길

페루 정부는 마추픽추 국립공원의 하루 입장객 수를 25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험준하고 머나먼 이곳까지 왔으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하면 큰 낭패다. 페루 문화부 공식 사이트에서 예약 및 발권이 모두 이뤄진다(공원 입장료 126Sol, 한화 약 5만 원). 
마추픽추행 열차는 쿠스코와 올란타이탐보(Ollantaytambo)에서 출발하지만 올란타이탐보 출발편이 훨씬 더 빈번하고 요금도 훨씬 저렴하다. 따라서 쿠스코에서 올란타이탐보까지는 버스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열차표는 자기가 원하는 시간대와 가용한 예산에 따라 시간과 등급을 결정하면 된다.

빗소리인줄 알고 걱정스러워 잠을 깨니 계곡의 물소리다. 지금 아침 8시 반, 새벽 5시 반부터 마추픽추행 버스가 운행하므로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올라갔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소답게 마추픽추 올라가는 버스 대기승객이 많다(버스 요금 왕복 미화 17달러). 

골짜기에 급류가 흐르며 산을 휘감는 것이 영월 동강과 흡사하다. 버스는 깊은 숲을 뚫고 U자 커브로 난 길을 20분 숨차게 오른다. 역시 공중에서 봐야만 찾을 수 있는 ‘감춰진 도시’로 가는 길답다. 공원 게이트를 지나니 마추픽추를 발견한 지 50년 되던 1961년에 건립한 기념비가 있다.

▲마추픽추엔 영적 기운이 감돈다. 끝없이 펼쳐진 계단식 밭 또한 장관이다. 5000명에서 1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다. 사진 = 김현주

영적 기운 감도는 마추픽추

까마득히 저 아래 우루밤바 강이 굽이치고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산봉우리들이 마추픽추를 둘러싸고 있다. 이 광경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고지대에만 산다는 야마(라마 혹은 쟈마, Llama) 녀석들은 방문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는다.

원래 모습대로 도시를 복원하니 2000년 전 바로 그 모습이다. 하염없이 이 광경을 바라보니 뭔가 내 몸에 영력이 깃드는 것 같다. 태양신전(Templo del Sol), 콘도르의 신전과 감옥 같은 건축물들이 잊힌 도시의 존재와 미스터리를 한껏 자극한다.

끝없이 펼쳐진 계단식 밭 또한 장관이다. 5000명에서 1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다. 전염병이 돌았거나 전쟁터에 나간 남자들이 돌아오지 않아 여자들끼리만 살다가 종족 번식이 안 돼 소멸했다는 등 사라진 도시에 대한 추측이 분분하다. 큰 돌을 깎아 만든 해시계인 인티와타나(Intihuatana) 앞에서 관광객들이 모두 발길을 멈춘다.

▲고지대에만 산다는 야마(라마 혹은 쟈마, Llama) 녀석들이 방문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고 있다. 사진 = 김현주

오전 11시, 구름이 걷히니 새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그 유명한 마추픽추 전경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비스타 포인트에 올라 수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지금 여기는 관광객들로 소란하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고요하다. 저 아래 우루밤바 강이 내 마음을 아는 듯 물소리로 화답해 준다.

아쉬움을 남긴 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하산길에 나선다. 버스 정류장 앞에 ‘세계에 평화가 깃들기를’이라는 문구가 각 모서리마다 케추아어(원주민어, 옛 잉카 언어), 스페인어, 영어, 그리고 일본어로 쓰인 작은 방위 표지 기둥이 눈길을 끈다. 사라진 문명, 잊힌 도시, 소멸한 제국을 기억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에게 꼭 맞는 글귀다. 마침 비마저 내려주니 기분이 묘하다.

우루밤바 강을 따라

쿠스코행 열차는 역시 만원이다. 나는 하필 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탄 열차 칸에 섞여 버렸다. 무척 시끄러운 것이 중국인 단체 못지않다. 남미 관광지에는 이렇듯 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열차는 우루밤바 강을 따라 아름다운 계곡 길을 구불구불, 아주 느리게 내려간다. 

기찻길 옆에는 드문드문 인디오들의 누추한 집들이 있고 집 마당에는 안데스 옥수수가 여름 햇살을 머금고 잘도 크고 있다. 간이역이라서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데 그것도 모르고 꽃 팔러 나왔다가 허탕치고 돌아가는 인디오 할머니의 실망스러운 눈빛이 보이는 것 같다.

▲마추픽추에서 우루밤바 강이 내려다보인다. 쿠스코행 열차를 타고 이 우루밤바 강을 따라 아름다운 계곡길을 지나갔다. 사진 = 김현주

올란타이탐보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쿠스코로 향한다. 버스가 돌아 나오는 동네 어귀 터미널 부근에는 야시장이 섰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는 것 같다. 선술집에선 동네 아저씨들이 맥주잔을 기울인다. 나도 함께 하고 싶은 분위기다. 언제 다시 페루 산골 마을에 와 볼 수 있을까?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풍경이다.

야무지게 생긴 키 작은 인디오 버스 기사는 잉카 음악으로 분위기를 더해준다. 아득한 언덕을 넘는 길엔 보름달이 걸려 있다. 지금 이 시각 지구 반대편 한국 하늘에는 저 달이 해가 돼 걸려 있겠지…. 너무나 멀리 떠나 있으니 자꾸 집 생각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산언덕을 넘으며 내려 보는 우루밤바 마을 야경이 그림 같다. 버스는 출발 두 시간 뒤 밤 9시 30분에 쿠스코에 도착한다. 쿠스코에 진입하는 길, 도시 외곽 언덕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쿠스코의 야경 또한 백만불짜리다.


14일차 (쿠스코 → 리마)

천천히 걷게 하는 쿠스코

오늘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늦잠이라고 해봐야 아침 8시에는 기상이다. 아침식사 시간까지 가벼운 산책길에 나선다. 호텔 주변 산블라스(San Blas) 언덕길을 끝까지 올라가 본다. 건장한 청년들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덕길을 오른다. 이 고원도시에서는 바빠도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아니, 바쁘게 살면 안 될 것 같다. 해발 3400m 아닌가?

▲‘감춰진 도시’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페루 정부는 마추픽추 국립공원의 하루 입장객수를 2500명으로 제한한다. 사진 = 김현주

인디오 할머니가 무언가를 이고지고 가파른 계단 길을 내려온다. 낯선 큰 개 두 마리가 나를 보고 꼬리치며 반긴다. 언덕 끝에서 뒤돌아본 도시 전경은 일품이다. 녹색 기와를 얹은 오래된 집들이 발아래 펼쳐진다. 스페인 그라나다 사크로몬테(Sacromonte) 언덕에 올랐을 때와 비슷한 풍경이다. 하얀 집, 파란 창문들…. 안달루시아의 골목길과 너무도 닮았다.

곧이어 나사레네스(Nazarenes) 광장이다. 멀리 보이는 언덕은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이다. 광장에서 기념품을 파는 소년이 나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영어 솜씨도 제법이다. 나를 보고 중국 대통령(시진핑)과 닮았다고 하기에 고맙다며 웃었다.

▲고원도시 산블라스(San Blas) 언덕길. 건장한 청년들도 가쁜 숨을 몰아쉴 정도로 언덕이 가파르다. 사진 = 김현주

화강암 깔린 좁고 가파른 길을 티코 택시들이 누비고 다닌다. 족히 차령 15~20년씩은 돼 보인다. 길이 좁고 비탈진 이 도시에서는 티코 같은 경차들이 그만이다. 그 덕에 시민들은 요금이 저렴한 택시를 부담 없이 탈 수 있어서 좋다. 쿠스코뿐 아니라 푸노(Puno), 아레키파(Arequipa), 심지어 리마 등 페루 전역에 티코 택시가 많다고 한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마추픽추 오가는 길에 들렀을 뿐이지만 쿠스코에 정들었다. 도시 풍경도 그렇지만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오후 1시 30분 스타 페루 항공기가 이륙하니 인구 26만 명의 도시가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쿠스코여 안녕!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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