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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톡톡' 두드려보는 이 시대의 "난 안돼" 강박증

유쾌한 코미디로 접근하는 현대인의 복잡미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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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09호 김금영 기자⁄ 2016.11.11 09:52:56

▲나름의 강박증들을 지닌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터진다. 연극 '톡톡'의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인기 예능 프로그램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허지웅은 먼지웅이라 불린다. 먼지 한 톨조차 용납하지 않는 깔끔함으로 먼지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청소이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서는 음식이 묻을까봐 김장비닐을 거실 한가운데 깔아 놓는다. MC 서장훈은 이 모습이 이해가 간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이다, 병”이라고 꼬집는다. 그런데 먼지웅의 모습이 현 사회에 과연 낯설기만 한 존재일까.


꼭 깔끔함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집중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있다. 다만 집중의 강도가 지나칠 정도로 높다고 여겨질 때 강박증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연극 ‘톡톡’엔 이런 독특한 사람들이 모였다. 국내에 첫선을 보인 ‘톡톡’은 2005년 프랑스 파리 초연 이후 유럽 각국에서 10년 동안 공연된 작품으로, 로랑 바피가 집필했다.


가장 먼저 무대에 등장하는 건 프레드다. 프레드는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벵상에게 “뭘 자꾸 쳐다봐, X자식”이라고 한다. 발끈한 벵상을 보고 프레드는 당황하면서 자신이 뚜렛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고백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이 튀어나오는 질환이다. 프레드는 은근 진짜 욕을 섞을 때도 있다지만.


그렇다면 벵상은 평범할까? 그는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마다 계산을 한다. 머릿속에서 숫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계산벽이다. 벵상이 머리에서 숫자를 지우지 못한다면, 블랑슈는 눈에 세균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과 접촉이 있을 때마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달려가는 그는 질병공포증후군 환자다.


마리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피곤하다. 뭐든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 확인강박증을 가진 그는 외출하기 전 가스, 수도, 전기를 계속 확인하느라 몇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확인하고 나서도 밖에 나오면 안심이 되지 않아 또 집에 돌아가야 한다.


마리는 행동을 반복하고, 릴리는 말을 반복한다. 자기소개를 할 때도 “제 이름은 릴리예요. 제 이름은 릴리예요.” 동어반복증이 있는 그는 자연스레 말이 짧아지고 자신감이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밥이 등장한다. 밥에게는 두 가지 강박증이 있다. 선 공포증이 있어 바닥의 선을 밟지 못하고, 모든 것이 대칭이 아니면 불안한 대칭집착증도 있다. 그래서 그의 가르마도 촌스러운 5 대 5다. 본인은 만족하지만.


이들이 한 공간에 모인 건 자신들이 겪는 강박증을 치료받기 위해서다. 강박증 치료의 최고 권위자 스텐 박사에게 진료 예약을 하고 찾아왔다. 하지만 스텐 박사는 비행기 문제로 공항에 발이 묶여 자꾸 오는 시간이 늦어진다. 처음 모인 사람들은 “저 사람 정상 아니네” 식으로 바라보고 서로 대화하길 꺼린다. 그러다가 결국 계속되는 기다림에 지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너


▲강박증을 치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나름의 특징이 있는데, 공통점은 자신은 정상이고, 다른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사진=연극열전)

게임할 때 모습은 특히 압권이다. 지루함에 지친 이들은 서로 영토 영역을 넓히는 보드 게임을 시작한다. 이때 각자가 지닌 강박증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프레드는 게임이 잘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욕설을 내뱉고, 벵상은 다른 사람들이 게임 지폐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다 계산한다.


블랑슈는 주사위를 던질 때 휴지에 감싸서 던지고, 마리는 게임 도중에도 전기, 수도, 열쇠 이야기만 나오면 집에 확인하러 가야 한다고 벌떡 일어난다. 말이 짧았던 릴리는 게임을 하면서 점점 말이 길어지고, 그에 따라 반복되는 말의 길이도 늘어 게임 시간이 길어진다. 밥은 자신의 주사위가 게임 보드 위의 선에 닿지 않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빈다.


처음에 분명 이들은 서로를 불편해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웬걸.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은근히 통하는 구석이 있다. 외로움이라는 공통분모였다. 


조금 더 자신의 관심 분야에 집착하는 이들은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 ‘문제있는 사람’이라고 찍힐 수밖에 없다. 벵상은 이혼을 당했고, 프레드는 연애 한 번 못해봤다. 블랑슈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고, 마리와 릴리, 그리고 밥 또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었다. 다수의 평범한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은 소수의 이상한 사람들이 됐다.


공연을 보는 입장에서 또한 이들의 행동이 처음엔 동떨어지게, 그저 웃기게만 보인다. “왜 저러지?”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웃음이 아닌, 이해와 공감이 시작된다. 극중 인물들이 겪는 건 이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기 때문.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내뱉는 프레드가 이상한가? 우리는 길을 가다가 이유 없이 칼을 맞을지도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 혐오 범죄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욕설을 무차별로, 그것도 의도적으로 내뱉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의도치 않게 욕설이 튀어나오는 프레드가 차라리 더 정상적이지 않은가?


벵상의 계산벽과 마리의 확인강박증도 마찬가지다. 현대인에게 계산과 확인은 당연하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월급날을 기다려 카드 값을 내고,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며, 생활비도 계산해야 한다. 또 돈이 필요할 때 대출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도 계산해야 한다. 자칫 잘못 계산하면 생계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에 계산하고 나서 확인에 또 확인을 해야 한다. 끊임없는 계산과 확인의 시대에, 머리로 암산을 멈추지 못하는 벵상, 집 열쇠가 있는지 계속 확인하는 마리를 비정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배려가 지나치면 호구’인 세상에서


▲서로 꺼려하던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서 친해지고, 이야기를 하며 갈등도 겪기 시작한다.(사진=연극열전)

질병공포증후군 또한 당연한 시대다. 의학이 많이 발전했지만, 그에 따라 수명이 늘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 또한 커졌다. 그러면서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 역시 거세다. TV만 틀면 각종 건강 프로그램들이 무수한 정보를 쏟아낸다. 이 정보가 맞는지, 저 정보가 맞는지 헷갈린다. 건강해지려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릴리의 동어반복증에서는 자신감이 없는 현대인들이 보인다. 릴리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 하지 못한 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신감을 잃었다. 이후 말을 되풀이하게 된다. 목소리는 늘 떨리고 남의 눈치를 본다. 스스로의 말에 확신이 없어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굴리는 릴리의 모습 또한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비대칭을 인정하지 못하는 밥의 모습에서는 이분법적인 사회가 읽힌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양쪽이 팽팽히 맞선다. 이 비대칭이 한쪽으로 기울려 할 때 밥은 흥분한다.


이처럼 우리는 극 속의 인물들이 지닌 강박증을 어느 정도씩은 다 안고 살아간다. 출연 배우 김아영은 “이들이 가진 강박증을 내가 모두 조금씩은 갖고 있다. 이상한 애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게 아니라 공감이 많이 갔다. 그 점을 잘 풀어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강박증과 함께 오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은 덤이다. 상부상조가 미덕이었던 과거와 달리, 자기 앞길 하나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현 사회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 돼버렸다. 상대방을 챙기다가 자신을 잘 챙기지 못하면 미련하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게 정설이다. 그래서 자신보다 조금 더 이상한 사람이 보인다 싶으면, 평범한 쪽에 속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는 쪽에 얼른 끼어든다.


이런 얘기들도 맞다. 결국 이 세상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고 나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톡톡’은 이 잔혹한 현실에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그 과정이 극중 인물들의 대화에서 나온다. 각각의 인물들은 타인과의 대화가 별로 없었다. 이는 자신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거부하는 데도 이유가 있었다. 결국은 자신이 가장 중요했기에, 타인과의 교류를 차단한 결과다.


하지만 외로웠던 이들이 입을 열고 톡(talk)하는 과정은 각자의 마음을 톡톡 두드린다. 첫마디는 “힘들었겠네요”. 그 두드림은 크지 않지만 시작하기까지가 굉장히 어려웠다. 서로의 상태를 고쳐보자며 한 명에 집중해 바라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공연의 끝에는 반전도 있다.


‘배려가 지나치면 그게 당연해지고, 호구가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가끔은 호구가 돼보는 것 또한 나쁘지만은 않다고, 공연은 유쾌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 미친 세상’의 강박증을 극복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공연은 대학로 TOM 2관에서 2017년 1월 30일까지.


▲국내에 첫선을 보인 연극 '톡톡' 포스터.(사진=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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