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 골프 세상만사] 연장이 좋아야 잘 세운다
(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내가 분에 넘치게 사치하는 물건 중 필기구가 있다. 문단에 등단했을 때, 선친이 한국에서 제일 크고 두꺼운 국어사전과 그 시절에는 결혼 예물로도 주고받는 고급 만년필을 축하선물로 줬다. 그날 이후로 나는 명품 필기구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늘 고급 수성펜과 볼펜과 샤프펜슬을 소지하고 다닌다.
요즈음엔 평소 볼펜 한 자루도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잠깐이라도 메모할 일이 생기면 “작가니까 펜은 있겠지?” 하며 잠시 빌려달라는 시늉을 한다. 작가가 상시 펜을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한 사람에게 즉각 대령하는 사람의 대명사는 아니련만, 빌려주면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여벌로 허접한 볼펜을 꼭 소지한다.
어느 날 지인들 십여 명이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에서 만났다. 다들 허겁지겁 출국신고서를 쓴다고 날더러 필기구를 내놓으란다. 어쩌다가 그만 허접 볼펜과 함께 애장품까지 끌려 나오게 됐다.
“김 작가, 볼펜 너무 좋네. 볼펜이 저 혼자 달리네.” 전담 개인 비서가 아니면 읽지도 못하게 괴발개발 끼적거리면서 그가 말했다. “괜히 명품인가요? 좋은 필기구를 사용하면 저절로 글발이 섭니다.” 명품 필기구만이 명작을 낳는 것처럼 잘난 척 좀 했지만, 소설이 안 써지는 이유를 연장 탓이라는 작가는 아무도 없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이 속담의 함정은 ‘훌륭한 목수는 자신에게 적확한 연장을 애용한다’이다. 만약에 연장이 기량 발휘에 상관이 없다면 유명한 음악 연주자들은 왜 수억 원이 넘나드는 명품 악기를 쓰며, 운동선수들은 선진 장비를 구입하려고 용을 쓰겠는가 말이다.
▲골프를 칠 때 장비는 무시 요소가 아니다. 자신의 기량이 올라갈수록 장비의 기량도 함께 올라간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나는 골프를 꽤 오래 해 왔지만 연장에는 그다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수정해야 할 것은 스윙 폼이지, 결코 장비가 아니라는 견해다. 나는 지금 라운드를 끝내고 저녁식사 자리에 앉아 있다. “어쩜 그리도 공을 잘 세우고 잘 넣으시는지….” 거의 신기에 가까운 그의 기량을 칭찬했다. 그는 오늘 이븐파를 쳤다. 그의 세컨샷은 곧장 핀을 향해 날아갔고, 버디를 놓쳐서 파를 했다. 나는 아마추어 골퍼가 내 눈앞에서 이븐파를 치는 것을 일생을 통해 세 번째로 봤다. 그는 훌륭한 골퍼였고, 신사였다. 단지 그린을 ‘침대’ 클럽헤드를 ‘거시기’ 등으로 표현하는 것 말고는.
연장은 기량 발휘에 상관없다?
명품 악기와 선진 장비를 이리 찾는데?
“양잔디는 습하고 차져서 거시기를 낙지 빨판처럼 착 감고 안 놓아주거든요. 특히 아이언샷은 필히 다운블로로 찍어 쳐야만 백스핀이 걸리는 동시에 컨트롤이 됩니다. 업라이트 파워스윙으로 과감하게 내리꽂아야…. 침대 위에서 그것이 탁 서죠.”
“침대는 그만 찾으시고요 공을 세우는 비결이나 한 수 가르쳐주심이….”
“그걸 세우려면 단조 아이언이어야 해요 철을 압착하고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는 제조원가가 많이 먹히겠지만, 주조에 비해 타구감과 정교함이 비교가 안 됩니다. 연철로 만들어진 단조아이언은 특히 임팩트 시에 공이 찹쌀떡처럼 척 묻어나는 느낌이 들죠. 일반적인 골퍼들은 정타의 임팩트가 오르가즘이라고 하는데 저는 백스핀으로 봅니다. 침대 쿠션에 파묻혔다가 반발해 튀어 오르는 것 같은 백스핀이 있어야 그것이 서겠죠?”
장비에 대해 중언부언하기는 해도, 최고의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자신의 기량에 영향을 주는 외적인 것들이 무시하지 못할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자신의 기량이 올라갈수록 장비의 기량도 함께 올라가고, 결국 자신의 기량이 최고점을 찍을 때, 장비 또한 최고점을 찍게 된다는 뜻인 것 같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