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대통령‘님’, 국회의원‘님’, 회장‘님’ 세상이다. 정작 국민 뒤에는 ‘님’이 붙지 않고, '개돼지'가 붙는다. 분명 의혹과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고 앵무새처럼 말만 되풀이하는 청문회 현장이 국회에서 펼쳐졌다.
그래서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이 일어섰다. 2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촛불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청와대 100m 앞까지 가서 호통을 쳤다. “착각하지 말라”고. “나라의 주인은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1% 당신들이 아니라, 99%의 우리다”라고.
송경동 시인은 이 현장을 계속 지켜 왔다. 2011년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희망버스를 기획했다. 늘 사회에 관심을 보여 왔던 그다. 그리고 2016년 11월 4일. 여행을 계획했던 그는 여행 짐을 풀고 캠핑 장비를 꾸려 광화문광장으로 갔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고인 물은 썩은 채, 그대로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시국선언을 선언한 문화예술인만 해도 7750명에 달했다. 송 시인은 이들과 함께 캠핑촌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광화문광장이 이들의 베이스캠프다. 그는 지금 광장 캠핑촌 운영의 총관리를 맡고 있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예술이 억압받고 감시당했다는 것이 드러났죠. 이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분노와 항의를 표현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예술인으로서 이 비참한 현실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이런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어 왔어요. 광우병 파동 때는 광우병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늘 상층 연대기구가 구성되죠. 하지만 이런 연대기구가 진정으로 민의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산발적으로 구성돼 힘을 하나로 모으기 힘들 때도 있고요. 그래서 바라본 곳이 광장이에요. 거리와 이어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 수많은 불특정 개인들의 힘과 의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곳. 여기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해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송 시인은 2011년 미국 맨해튼에서 99%의 국민들이 1%의 권력층에 맞서 벌인 점거 운동 이야기도 꺼냈다. 부자와 권력자를 위한 금융제도에 항의한 사람들의 움직임은 전 세계로 퍼졌다. 혼자 또는 각자가 외치는 건 힘들지만 모이면 목소리가 커진다. 그 힘을 오늘날 우리는 여실히 느끼고 있다.
광장에 캠핑촌을 만들자는 제안에 여기저기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몸집은 금방 불어났다. 블랙리스트 의혹과 더불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전 사회적인 항의 움직임이 펼쳐졌다. 각종 문화예술단체는 물론 앞서 먼저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 왔던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사회운동네트워크, 기륭전자, 쌍용차, 콜트콜텍 해고자들 등이 캠핑에 함께 했다. 시민들도 입촌 신청을 했다.
헬조선 속 부패 정권에 대한 분노로 달아오른 촛불
“지금 광장은 단지 문화예술인만의 캠핑촌이 아니에요. 모든 단체들의 베이스캠프이자, 더 나아가서는 국민들의 캠프죠. 비정규직 사회에 대한 절망, 그리고 흙수저와 금수저가 비교되는 헬조선, 자살 공화국이라는 타이틀까지, 곪을 대로 곪아버린 국민의 분노가 터져 나왔습니다. 여기서 분노만 표출할 게 아니라 우리가 썩어 빠진 기존 틀을 뽑아버리기 위해 노력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을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문화예술의 힘이 이렇게 크기에, 두렵기에 블랙리스트를 만들면서까지 통제하려 한 것이 아니었겠느냐”가 현장 목소리다. 앞서 11월 열린 ‘블랙리스트의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론회에 참석한 노순택 작가는 “일찍이 히틀러는 자신이 불온하다고 여기는 그림들을 모았고,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벌였다. 이것은 예술을 통제하면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다”고 꼬집었다. 이 말에 송 시인도 동의했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있어요. 문화예술은 그 시대의 정신, 그리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 꿈을 표현합니다. 사회적 구조나 관계에서 어떤 모순이 있는지 꼬집고, 부당한 현실을 직면하고 탐구해 몸짓, 노래, 글, 그림 등 다양한 형태로 사회적 보고를 하죠. 그래서 문화예술이 ‘제2의 언론’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요. 저는 또 문화예술이 바로 ‘제2의 입법기관’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니까요. 그래서 역사 속 독재자들은 문화예술을 자신의 통치 아래 잡아두려 했죠.”
문화예술은 각각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힘도 됐다. 현재 광장 집회에서는 치열한 몸싸움과 대치 상황이 아닌, 축제와도 같은 현장이 펼쳐진다. 또 그 의미가 가볍지만도 않다.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현장 등에서 예술운동을 이끌어온 파견미술팀과 캠핑촌에 입촌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밤샘 작업을 하며 만든 박 대통령 구속 상징물과 퇴진호 등의 모형이 설치됐다. 풍자의 의미를 담은 이 설치물은 집회 당시 광장뿐 아니라 청와대, 계동 현대 사옥, 을지로 대우조선해양 본사로의 행진에도 쓰였다.
광장에는 지금 국민들의 작품이 잔뜩 전시됐다. 국민들이 자신의 바람을 적은 글과 그림을 적은 포스트잇 등이 자리 잡았다. 집회에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노래도 부르고, 퍼포먼스도 펼치고, 토론도 펼친다. 현 상황에 비탄만 할 게 아니라 문제점을 함께 타개하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문화적 움직임이다.
송 시인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보면 현재 광장의 하루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다. 매일 아침 9시에는 ‘촌민회의’가 있다. 하루 일정을 공유하고,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이다. 오전에는 캠핑촌 재정비의 시간이 있다. 재정비는 여러 의미를 가졌다. 광장을 깨끗하게 자체적으로 청소한다. 또한 점점 늘어나는 촌민들을 위해 마을회관과 창고로 쓰일 텐트와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광장토론회가 열릴 텐트를 준비할 계획도 꾸린다. 12시에는 보통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과 함께 청소 활동에 나선다. 비리가 있는 더러운 곳을 치운다는 취지 아래 정말 빗자루로 청소를 한다. 그동안 청와대, 국회, 삼성본관, 현대본관 앞을 찾았다.
현재의 분노만 아니라 미래의 나라를 위한 촛불문화제
저녁 6시부터는 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매일 프로그램을 달리하며 사람들을 맞는다.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는 광장토론회부터 노래와 춤, 퍼포먼스 등을 펼치는 음악회 뒤 촛불행진이 이어진다. 끝나면 보통 9시인데 이때부터는 ‘마을일꾼회의’가 시작된다. 토론을 맡은 토론위원회, 광장신문을 발간하는 광장신문위원회 등으로 구성됐으며 이 회의에서 총체적으로 의견 교환을 한다.
“광장 캠핑촌에서 토론회, 촛불문화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어요. 이것은 단지 주말에 촛불집회가 이뤄지고 광장이 텅 비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도 많아요. 프로그램 준비나 광장신문 발급 등을 다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기금을 모아서 보내오시는 경우도 있죠. 힘들 새가 없어요. 우리도 우주의 기운을 받아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한 달 새 변화도 느꼈다. 처음 텐트 설치 땐 불법이라고 철거당했는데, 이제는 합법적으로 국민의 권리로서 광장에 들어선다. 촛불의 수도 늘어났다. 11월 초 처음엔 3만 명에서 시작돼 17만, 100만, 160만 명으로 늘어나더니 가장 최근인 12월 3일엔 200만 명을 넘었다. 1차 담화 때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최순실에 대해 밝혔던 박 대통령은 3차 담화 때는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송 시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캠핑촌의 목적은 단순 박 대통령 탄핵, 퇴진이 아니라 뿌리 깊이 썩은 정권을 뽑아내고, 국민을 위한 사회를 세우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가 물러난다 해서 모든 게 끝일까요? 얼굴만 바뀌고 몸통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대통령은 임기가 5년이에요.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얼굴만 바뀌었었고, 정권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교체된다 하더라도 새누리당은 거대 야당이 되겠죠. 지금의 박근혜 정권을 세운 사람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한 제2, 제3의 최순실과 박근혜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 권력구조에 빌붙은 재벌도 남아 있습니다. 자신들은 온갖 특혜를 받고, 평범한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턴 이들에 대한 분명한 처벌과 구속이 이뤄져야 해요. 이 사회의 주인은 바로 5000만 국민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줘야죠. 그래서 단순 박근혜 퇴진이 아닌, 퇴진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시민이 제대로 주체가 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염두에 두고 토론회 등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어쩌면 지금 광장의 모습이 미래 국민이 원하는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까. 우스갯소리로 송 시인은 한 기고글을 통해 노순택 작가가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의 총재를 맡고 있다고 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총재이자 단원이다. 어느 누가 절대적인 권력자로 위에 서 있지 않다. 평등하게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듣는 ‘척’만 하지 않는다.
“지금도 광장 캠핑촌은 입촌 지원자를 받고 있습니다. 헌법 위에 민의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민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절대로 방 빼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