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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전시-포르나세티 특별전] 새것 없기에 변화에 집착한 '광기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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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4호 김연수⁄ 2016.12.16 17:51:24

▲도자기 접시에 인쇄된 '주제와 변형' 시리즈. 1952년부터 지금까지 350여 가지가 넘는 변형들로 생산되고 있다. (사진=김연수)


19세기 책의 삽화를 연상시키는 석판화의 질감으로 표현된 커다랗고 또랑또랑한 눈매를 가진 여인의 얼굴은 인테리어 소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한 번 이상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도 쿠션 등의 인테리어 소품에 인쇄돼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이 얼굴은 유명 브랜드 ‘포르나세티’의 뮤즈 리나 카발리에리(Lina Cavalieri)다. 

Intelligent Hand(인텔리전트 핸드), 영감을 품은 손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선 화가, 조각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판화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한 이탈리아의 예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Piero Fornasetti, 1913~1988년)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포르세나티 아카이브에서 선정한 1300여 점의 작품들로 구성된 이 대규모 전시는 2013년 포르세나티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밀라노 트리엔날레디자인뮤지엄에서 시작한 순회전이다.
 
포르나세티의 디자인을 이어받아 되살리고 생산하고 있는 아들 바르나바 포르나세티(Barnaba Fornasetti)가 전시의 기획과 구성을 맡았고 방대한 양의 작업들을 주제별로 구획을 나눠 선보이고 있다. 바르나바는 “포르세나티는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상품으로서 널리 인식돼 있지만, 상업적인 성공에 가려져 예술 작품으로서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며, “아버지의 예술적 영감이 재조명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은 기술과 전통을 중요시 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며, 'Intelligent Hand', 즉 ‘영감을 품은 손’이라는 개념 제시와 함께, 문화-역사의 다양성이 혼재돼 있는 포르나세티의 작품들이 이해되고 공유되기 적합한 나라로 판단했다는 전시 개최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포르나세티, '의자_이오니아 기둥'. 나무에 실크스크린, 40 x 40 x 95cm. 1980. (사진= 오제성 프리랜서 기자)


변주의 시작

14개 구획으로 나뉜 전시장은 포르나세티가 화가로서 출발했던 시절의 작업부터, 그의 창의력을 발견했던 건축가이자 예술 감독 지오 폰티(Gio Ponti)와의 협업 작업, 그리고 현재 아들 바르나바로 이어져 온 작업까지, 어떻게 포르나세티의 예술이 변모-확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포르나세티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바르나바의 말과, ‘10km마다 문화가 달라진다는 이탈리아만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문화의 속성처럼, 장식장, 그릇, 소파, 테이블, 우산꽃이 등의 실용품에 표현된 작가만의 미감 변주는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만나는 병풍과 장식장, 오브제 등은 포르세나티가 상상력을 펼치는 방식을 한 번에 눈치 챌 수 있게 한다. 원래 지오 폰티가 디자인한 장식장에 포르나세티가 패턴을 입혀 발전시킨 이 작품에선 건축가 폰티의 메커니즘에 영감을 받은 포르나세티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전 건축이나 광장의 그래픽이 입혀진 장식장은 문을 열거나 서랍을 당겨 책상의 형태가 되면, 3차원의 공간이 펼쳐진다. 

한편, 포르나세티의 작업 세계에서 책과 인쇄 기술은 그의 예술 세계의 근간이 되는 요소다. 아티스트 북을 제작-출판하기도 했던 그는 평생에 걸쳐 책과 잡지, 이미지 자료 등을 수집하는 한편, 음각기법, 석판화, 목판화, 동판 기법, 그리고 모노타입과 같은 여러 가지 기법을 익히기도 했다. 그는 제도사이자 판화가로서 당대 최고의 화가인 조르조 데 키리코, 루치오 폰타나, 유진 버만 등과 작업하기도 했다. 검정 연필, 인디안 잉크와 펜으로도 그려진 드로잉들은 아티스트북을 출판하고 인쇄술에 집착했던 그의 관심을 드러낸다. 또한, 이런 관심이 종이뿐만 아니라 천, 가구 및 다양한 오브제에 프린트 작업으로 발전됐다는 사실 또한 짐작할 수 있다. 

▲포르나세티, '장식장_Architettura(건축)'. 나무에 프린트와 옻칠. 1953. (사진=오제성)


주제와 변형(Tema e Variazioni)

‘페인팅과 드로잉의 공간’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은 포르나세티의 작업실로 꾸며져 있다. 이젤 위에 놓여 있는 자화상, 그의 서재에서 가져온 서적들과 그의 초기 드로잉, 일러스트, 그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주최 측은 “그의 페인팅은 원칙적으로 고전주의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작품의 내용은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자유롭다”고 설명한다. 이 전시에서 선보이는 포르나세티의 회화 작업은 1930년~50년대에 이뤄진 정물, 인물, 풍경, 추상적 패턴 중에서 선별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경향을 보인다.

로마 시대의 조각상이나 신화적인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것 같은 오브제 위에 프린트된 그림 들은 분명 역사의 한 시대 혹은 특정 장소의 문명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다는 추측과 함께 한 공간에 머물며, 하나의 작품 안에서 뿐 아니라 물리적인 현실에서도 초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한 여성의 얼굴이 350여 가지가 넘는 모습으로 변형된 ‘주제와 변형(Tema e Variazioni)' 시리즈다. 포르세나티가 19세기의 프랑스 잡지에서 발견했다는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Lina Cavalieri)의 얼굴이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진 카발리에리는 말 그대로 ‘팜므파탈’
의 전형으로 많은 남성들의 구애와 함께 자유로운 연애를 했고, 4번의 결혼을 했다. 또한, 그녀의 인생 경로도, 고아원 생활부터 오페라 가수로서의 화려한 생활, 미국에서의 영화배우 활동을 거쳐 전쟁터의 간호사 봉사활동, 그러던 중 폭격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란만장했다. 바르나바의 설명에 비추면, 포르세나티의 작품에서 그녀의 모습은 사회의 구조와 경계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상징인 듯하다. 

▲포르나세티, '접시세트_플레밍 앤 조페'. 자기에 석판화, 수작업 도금, 지름 26cm. 1950년대 후반. 플레밍 앤 조페 사를 위한 홍보용 접시 12개 중 부분. 각 주제마다 다른 비현실적 요리의 레시피를 담고 있다. (사진=김연수)


분더캄머(WUNDERKAMMER)

포르세타니의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또 다른 그의 관심은 수집에 있다.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의 귀족들의 집안에 하나씩 있었다는 진기한 수집품을 모아놓는 공간인 ‘분더캄머(WUNDERKAMMER, 독일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은 그의 수집품 중 일부를 선보인다.

수집품을 통해 드러나는 ‘덕후스러운’ 기질은 그의 예술적 영감이 불현듯 떠오른 천재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익히고 집요하게 몰두한 결과임을 짐작케 한다. 주최 측 또한 “포르나세티의 창작은 사실 그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계획적이고 집착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한 규칙에서 기인한다”고 밝힌다.

카발리에리의 삶처럼 경계 없는 자유를 추구하고, 동시에 관심거리에 집착하며 펼쳐나간 포르세나티의 작품 세계는 ‘PRACTICAL MADNESS(실용적인 광기)’라는 전시의 부제와 함께 열정적으로 살다간 예술가들의 삶의 응축, 그 자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는 내년 3월 19일까지.

▲전시 공간 중 '수집가의 방(WUNDERKAMMER)'에 선보인 포르나세티의 수집품들. (사진=오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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