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CNB저널 =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양궁은 신화적 존재이다. 아무리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을 해도 수십년간 세계 정상을 내놓지 않는 한국의 양궁 실력은 불가사의 그 자체다. 수십 명의 한국 궁사들이 외국 대표팀의 코치를 맡아 도전해 보지만 한국 팀을 꺽을 수 없다. 과연 한국인에게는 활과 관련한 DNA가 있는 것일까?
콩을 최초로 식용화하고 첨단무기 활을 사용한 동이민족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날렵한 사냥꾼의 모습이 보인다. 중국 문헌에서는 이들을 동이족(東夷族)이라 쓰고 우리는 이것을 이제껏 동쪽의 오랑캐민족이라 번역했다. 이(夷)를 중국 사람들이 주변 국가들을 폄하하는 만(蠻), 적(狄) 등 오랑캐라는 표현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夷)는 벌레나 개를 의미하는 오랑캐 글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夷)는 큰 대(大), 활 궁(弓), 사람 인(人)으로 구성된 글자로 동이족은 동쪽에 사는 큰활을 쓰는 민족(Eastern Archers)을 말한다. 칼이나 창을 주무기로 사용하던 시대에 활은 오늘날 미사일을 재래 무기와 비교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중국 고전에는 동이족을 그들보다 선진민족으로 높여 기술한 부분이 눈에 띈다.
자원(字源)은 동이족을 중원지방의 선주 토착민으로 온후한 덕성과 도리를 분별하는 문화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도 동이를 천성이 유순하며 주변의 다른 오랑캐들과는 다르다고 기술하고, 그래서 공자가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여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에 살고자 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동이족이 살던 남만주와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이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콩을 재배하여 식용으로 사용한 사람들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들이 어떻게 기원전 2000년 전후 동북아 국가 형성기에 이 지역의 엘리트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BC 6000년경)에 토기를 만들어 대한해협을 중심으로 찌개문화와 발효문화를 발전시켰고, 청동기시대에는 자생하는 콩을 토기에 끓임으로서 트립신인히비터를 불활성화해 식용이 가능하게 했다. 콩의 식용으로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인구가 늘고 기골이 장대해져 활까지 주무기로 사용했으니 그 시대 동북아의 강자로 군림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고조선의 성립과 동북아 거대국가 고구려의 출현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단군의 건국이념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는 우리 민족의 세계 비전이다. ‘인류를 위해 세계를 바르게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거번넌스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그러면 세계의 열강 속에 에워싸인 21세기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 신 노예제도에 반기를 든 민중과 민족주의로 회귀하는 세계 정치 흐름 속에서 한국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백만 비폭력 시위의 결말은?
우리는 선진국들이 300년 동안 이룩한 민주화와 자본주의 경제를 반세기 만에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상실 위기와 부정부패와 결탁한 정치권력의 일탈 사례를 수없이 겪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올림픽에서 흔들림 없이 양궁의 신화를 이어왔고, 영고, 동맹 등 제천행사에서 주야 음주가무하던 유전자가 K팝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최근 우리는 ‘최순실 사건’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고속성장의 부산물로 쌓였던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일시에 폭발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잘못 사용된 데에 대한 저항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백만인 비폭력 시위로 표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탄핵소추되고 정당들이 이합집산하고 있다. 자칫 초지일관 적화통일을 향해 와신상담하고 있는 북한 정권에게 허를 찔릴 것 같은 두려움이 팽배해 있다. 과연 오늘의 혼란이 불나방의 슬픈 군무로 끝날지, 새로운 정치질서를 요구하는 지구촌에 이화세계의 새 모델을 제시하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