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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시국전시 ①] "국립미술관보다 궁핍미술광장이 더 인기"

“우린 돈 없다. 하지만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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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8호 김금영⁄ 2017.01.13 09:35:01

(CNB저널 = 김금영 기자) 2016년 초, 딱 1년 전 이맘때쯤 단색화의 인기를 이을 장르로 민중미술이 한창 이야기됐다. 단발적으로 민중미술을 소개하던 것과 달리 주요 갤러리와 미술관이 잇달아 민중미술 관련 전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민중미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때보다 뜨겁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민중미술. 사회 고발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이 민중미술이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2017년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그런데 과거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스스로가 민중미술이라는 틀에 제약받기를 거부하는 ‘탈장르’적인 성격이 강하고, 표현되는 양상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변화 됐다. 그 움직임을 살펴본다.


▲광화문 광장에 '궁핍현대미술광장' 천막이 들어섰다. 국립현대미술관 대표 로고를 패러디했고, '국립' 대신 '궁핍'을 이름에 넣는 등 위트가 돋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우리가 국립현대미술관보다 관람객 수가 훨씬 많죠. 촛불 집회가 열릴 때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니까요.”


아무리 넓게 봐도 10평 남짓한 공간. 그리고 문이 없이 천막으로 이뤄져 찬바람이 쌩 들어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공간에서 신유아 작가(문화연대 활동가)가 말했다. 신 작가와 만난 곳은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궁핍현대미술광장’. 그는 이 공간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관한 이 자그마한 공간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관심은 폭발적이다.


▲궁핍현대미술광장 천막의 외부 전경. 노순택 작가와 광장신문위원회가 함께 작업한 천막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궁핍현대미술광장은 광장 캠핑촌의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광장 캠핑촌의 시작은 지난해 11월부터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거지고 예술인들이 광장에 텐트를 들고 모였다. 한국판 스쿼트 운동이다. 프랑스에서는 예술인들이 버려진 공간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스쿼트 운동을 통해 예술인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광장의 예술가들은 현 정권이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날 때까지 캠핑 농성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단순 농성이 아니라 캠핑촌은 ‘광장 문화’를 꽃피웠다. 텅 비어있던 광장에 현 정권을 풍자하는 각종 조형물이 설치됐다.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도 이뤄졌다. 이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가 생성되는 중이다. 이전에 방문했을 땐 대기업 로고를 끌어안은 박근혜 대통령 구속 조형물이 광장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이젠 얼굴에 주사까지 꽂고 있었다. 1월 4일엔 공연을 꾸준히 전문적으로 선보일 ‘블랙텐트’까지 새롭게 설치돼 개관식을 열었다.


▲궁핍현대미술광장 천막 입구에 송경동 시인의 시가 전시됐다. 광장 캠핑촌의 사람들이 함께 꾸린 이 공간엔 웹자보, 판화, 신문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자리 잡았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렇듯 많은 조형물이 전시되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가다 보니 아예 자체적으로 전시 공간을 꾸리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궁핍미술광장의 시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로고를 패러디했고, 이름도 비슷한데 ‘국립’이 ‘궁핍’, ‘미술관’이 ‘미술광장’으로 바뀌었다. 국가가 운영하는 가장 권위 있는 미술관을 패러디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굳이 ‘미술관’이라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이유가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은 예술인에 상처를 남겼다. 예술 검열에 따라 공연을 올릴 수 없었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빼앗기기도 했다.


“공간에 구애를 받고 싶지 않았어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공간=권력’ 구조를 만들었죠. 그래서 ‘관(館)’이라는 데 거부감이 있어요. 여기에 대항하는 의미, 그리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광장’이라고 명명하자고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는 돈도 없어 궁핍하고, 가진 것도 없고, 관장도 없어요. 하지만 자유가 있죠. 누구든 자유롭게 여기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어요.”


"민중미술 아닌 현장미술-파견미술"


▲현 정권과 재벌총수를 비판하는 전시물도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볼 수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지금 궁핍미술광장엔 송경동 시인의 시를 시작으로, 이윤엽, 정택용, 오진호, 최병수, 노순택 작가의 작품과 예술행동위원회가 발간한 광장신문이 전시됐다. 모두 광장 캠핑촌에 자신의 텐트를 가진 촌민이다. 노순택, 정택용은 캠핑촌 현장 사진들을 전시한다. 촛불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부터 각종 조형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이들의 사진을 보면 광장의 삶이 읽힌다. 오진호의 캠핑촌 웹자보도 전시됐다. 그가 작업한 ‘박근혜 퇴진 일보’ 그리고 캠핑촌 행사 포스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10평 남짓한 공간에 궁핍미술광장 로고가 붙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광장 자체가 전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규환이 작업한 스티로폼 조각이 광장 이곳저곳에 설치됐다. 박근혜 대통령 조형물을 비롯해 최근엔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조형물이 새롭게 설치됐다.


▲천막뿐 아니라 광장 자체가 궁핍현대미술광장의 전시장이다. 매주 새 전시물이 등장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얼굴 모형에는 주사기가 추가로 꽂혔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조형물 채색 마무리 작업에 한창인 이윤엽 작가를 광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작가는 본래 판화 작업으로 알려졌다. ‘질서 있는 퇴진’ 등 판화 작업을 궁핍현대미술광장에 전시 및 판매하는 동시에,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과정이 자신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캠핑촌에 다양한 예술가가 모였어요. 블랙텐트도 문을 열었죠. 저는 솔직히 연극을 잘 몰라요. 연극인 중에서도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하물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잘 모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다양한 사람들이 광장에서 만나 서로 작업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놀랍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해요. 저 또한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며 놀랄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게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워요. 해방된 세상, 해방된 예술, 자유로운 예술이 이런 게 아닐까요?”


▲광장에 새롭게 '블랙텐트'가 등장했다. 옆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 상'이 새롭게 등장했다.(사진=김금영 기자)

지금 광장에서 꽃피는 미술이 ‘새로운 민중미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민중미술은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확대된 리얼리즘(사실주의)을 바탕으로,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 독자성을 갖춘 장르다. 한국의 본격 민중미술의 시작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이뤄졌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 뒤, 진보 성향 미술인들이 중심이 돼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 민중미술을 꽃피웠다. 현실 비판적이면서도 선동성이 강했고 만화, 벽화, 걸개그림 등이 활발하게 형성되며 기존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위주가 되던 미술계에 새로운 파동을 일으켰다.


현재 펼쳐지는 현실 비판 작업들은 보다 위트가 넘치고, 그림이라는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오진호의 작업 또한 그렇다. 신유아 작가는 “과거 미술계에서는 웹디자인은 작품으로 잘 인식을 하지 않았는데, 요즘 전시 성향은 그렇지 않다. 이번 전시만 해도 웹디자인을 포함해 사진, 판화, 조형물까지 다양한 형식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현상을 민중미술이라는 틀 아래 또 구애받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신 작가는 “민중미술은 운동권에서 나온 말”이라며 “미술에서 영역을 구분 지으려 하다 보니 민중미술이 이야기됐는데, 지금 우리가 하는 건 현장미술, 파견미술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이윤엽 작가 “촛불 시민의 예술에 오히려 감명 받아”


▲이윤엽 작가가 전시 중인 '질서 있는 퇴진'.(사진=김금영 기자)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미술은 과거부터 젊은 작가들 위주로 이뤄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현장미술’, ‘파견미술’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써요. ‘박근혜 퇴진’이라는 기조 아래 많은 문화예술인이 현장을 찾아다니죠. 문제가 되는 현실을 피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예술 활동으로 맞서고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이런 현상은 2011년 희망버스(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벌였던 예술 활동), 2009년 용산참사(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한 예술 활동) 시위, 2006년 평택 대추리(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마을 강제철거에 마을을 문화 예술 활동으로 채운 항의 움직임) 시위 때도 있었죠.”


또 신 작가는 “지금의 경향을 민중미술과 완전히 딱 구분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차이점은 느껴지다”고 말을 이었다.


“이전엔 작가 그룹이 주축이 돼서 움직였고, 그림이 중심이었죠. 지금은 장르가 그림에만 국한되지 않고 뜨개질 등 생활 창작까지 다양하게 포함해요. 그리고 예술인은 물론 광장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창작 활동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확대됐다고나 할까요?”


▲궁핍현대미술광장을 관리하는 신유아 작가(문화연대 활동가). 차가운 날씨와 열악한 환경에 지치지 않는 모습이다. 한창 바쁘게 작업이 이어지던 도중 사진 촬영 요청에 밝게 웃었다.(사진=김금영 기자)

실제로 광장에서는 뜨개질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뿐 아니라 부당한 해고를 당하거나,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 처한 사람들, 노동조합도 일찍이 광장 캠핑촌에 함께 하고 있다. 부당한 현실에 개선의 목소리를 높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광장 캠핑촌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노란 리본을 만들면서 서로 간의 연대 의미도 확인한다. 어렵지 않은, 일상 속 예술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쓰고 싶은 말을 적은 포스트잇도 여기서는 작품이다. 기존에 민중미술의 흐름에 함께 해 온 것으로 평가 받는 이윤엽 작가는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게 바로 예술입니다. ‘민중미술은 이래야 한다’ 식으로 따로 방법이나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그는 자신이 민중미술 작가로 불리는 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담으면 그게 바로 예술이죠.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거요. 오히려 광장에서 제가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을 못 따라간다고 느꼈어요. 위트와 유머가 저보다 훨씬 대단하더라고요. 매일매일 놀라고 있어요. 광장에 매일매일 예술이 꽃 피고 있어요. 앞으로 계속 활짝 피겠죠.”


▲채색 작업에 한창인 이윤엽 작가. 그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예술 활동에 내가 더 영감을 받고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사진=김금영 기자)

생각해보면 현재의 사태에 가장 많은 목소리를 쏟아낸 건 국민이다. ‘자괴감’이라는 키워드를 안겨준 국가에 “하야~순시려~이불 박근 위험혜” 등의 위트가 섞인 유행어로 답했다. 이밖에 그림, 글, 영상 등 수많은 콘텐츠가 형성됐고, 지금의 광장 문화를 이뤘다.


신유아 작가와 이윤엽 작가는 “누구 한 명이 중심이 되는 나라와 광장이 아니라,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계속 광장에 문화를 꽃피울 각오를 밝혔다. 궁핍현대미술광장도 2주 단위로 계속해서 새로운 전시 현장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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