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지금처럼 부와 빈곤의 간극이 심해지고, 넘쳐나는 정보에 피곤한 세상도 없다. 국정농단 실태는 막대하고도 부정한 부를 축적한 실체를 드러내며 국민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줬다. 그리고 매일매일 이와 관련된 기사들이 ‘단독’을 달고 쏟아진다. 모두 상당한 피로감을 준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펼쳐진 작업이 눈길을 끈다. 제16회 송은미술대상 수상 작가가 가려졌다. 김세진이 대상을 수상했고 염지혜, 이은우, 정소영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4명의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채로운 작업을 펼쳤는데 이중 김세진과 염지혜의 작업이 눈길을 끈다. 두 작가 모두 사회의 단상을 읽고,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김세진은 자본과 시스템이 위주가 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실들을 포착해 왔다. ‘빅토리아 파크’(2009)는 주말이 되면 빅토리아 파크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남아 출신의 가사도우미들의 모습을 기록한 작업이다. 이들은 도시국가인 홍콩이 수입해 온 사람들로, ‘아마(Amah)’라 불린다. 직업적으로 전문가이고, 홍콩으로 넘어와 취직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아래에서 값싼 여성 인력으로서 동원됐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19만㎡로 홍콩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공원 안에는 테니스 코트, 축구장, 농구장, 수영장, 스케이트 링크, 야외 공연장, 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점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졌다. 안락한 삶을 상징하는 장소와도 같다. 이 공간에 힘들게 일한 뒤 조금이나마 한숨을 돌리려고 앉아 있는 가사도우미들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마치 이 공간에 앉아 있지만 제대로 속해 있지 못한 것 같은 느낌. 예컨대 화려하고 거대하게 세워진 서울역 건물 아래 지하에서는 노숙자들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은, 반전되는 이상한 느낌.
가사도우미들은 분명 쉬고 있음에도 불편해 보인다. 국정농단 속 큰돈이 쉽게 오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저 사람과 내가 이렇게 다른데 진정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맞나’라고 느끼는 불편한 마음이 데자뷰처럼 겹쳐 보인다.
‘야간 근로자’(2009)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야간 근무를 하는 야간 경비와 톨게이트 요금 징수직원의 시간을 담았다. 화려한 낮의 시간이 지나가고 밤이 돼도 도시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 아래 도시는 끊임없이 기능을 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이들은 작은 공간 안에서 노동을 반복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의 삶은 소외받기 일쑤고, 그래서 더 고독해지며, 상황은 더욱 열악해진다. 그리고 이 일상이 이상한 것이 아닌, “원래 다 그런 거야” 식으로 익숙해지는 무서운 현실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도시은둔자’와 ‘열망으로의 접근’, 그리고 ‘모션 핸드’도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열망으로의 접근’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주, 이민 현상을 다룬다. 돈을 벌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은 이주와 이민을 반복한다. 하지만 장소를 옮긴다 한들, 돈이 위주가 되는 큰 시스템은 그대로인 가운데 진정으로 삶의 본질이 나아질 수 있을까? 작가는 여기에 질문을 던진다.
국립현대미술관 미화원을 따라다닌 작가
그리고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었던 작가
‘도시은둔자’는 현실적이라 더욱 눈길이 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실제로 근무하는 건물미화원의 노동을 다뤘다. 자본과 시스템이 만들어낸 현대적 계급 구조와, 그 안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가치를 다룬다. 국내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미술관이라 일컬어지는 이 미술관이 주는 압도감이 크다. 공간도 넓고,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 아주 깨끗하며, 각이 제대로 잡힌 모습이다. 이 큰 공간 속을 미화원이 청소하며 걸어 다닌다. 공간이 크다보니 한 개인의 모습이 더욱 작아 보인다. 자본주의에 눌려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중심이 돼 돌아가는 세상이 읽힌다. 분명 도시에 살아가지만 마치 은둔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들 살아간다.
‘모션 핸드’는 반복되는 노동에 주목한다. 작업은 뉴욕과 런던에서 포착한 아시아, 남미 이민자들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의 순간들로 이뤄졌다. 이 조각에 애니메이션 장치 프락시노스코프의 원리를 이용해 반복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동심원 형태의 원기둥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돌아가는 조각처럼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되풀이한다. 그러다보니 노동의 가치는 낮아지고, 개인의 삶 또한 뒷전으로 밀린다. 김세진은 “삶을 살아가는 건 인간이다. 하지만 현 시대는 인간 중심이 아닌, 시스템 위주로 맞춰지고 돌아가는 세상이다. 이런 현상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세진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현상들에 집중했다면, 염지혜는 웅성웅성대기 바쁜 사회 모습의 단면을 드러낸다. 오늘날 미디어는 여론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기사 하나가 나오면 거기에 수많은 댓글이 달린다. 각 댓글은 다양한 의견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결국 기사의 방향이 어떠냐에 따라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 작가는 2015년 실제 자신이 겪었던 사례를 통해 이를 짚는다.
2015년 봄, 난리가 났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이 확산되면서 전 국민이 공포에 휩싸였다. 작가는 이에 앞서 아프리카 가나를 3개월 동안 여행하며 말라리아에 걸린 적이 있다. 공포에 질렸음에도 건강하게 나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병에 걸린 자신의 몸을 직접 촬영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후 작가는 더 큰 공포에 직면하게 된다. 국내에서 메르스 사태가 벌어지고 자신의 몸에서도 의심 증상이 나타났다. 작가는 자가 치료를 시작했다. 상황은 분명히 달랐다. 가나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린 것이 확실했고, 이번엔 메르스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포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메르스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를 통해 메르스에 걸리면 곧 죽는다고 할 정도로 사회에 공포감이 만연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도 생산되기 시작했고, 미디어는 계속해서 메르스와 관련된 기사를 쏟아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썼고, 밖에 잘 나오지 않았으며, 타인과 만나기를 꺼려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서 고백한다. 자기가 조금만 기침을 해도 사람들의 눈빛이 바뀌고, 피했다고. 그 눈빛엔 마치 바이러스를 보는 듯한 공포감이 서려 있었다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작업에 등장하는 문구다. 분명 메르스는 위험한 질환이다. 그런데 미디어가 무차별로 쏟아내는 정보들은 어떨 때는 변질돼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으로도 확산됐다. 결국엔 공포와 혼란이 더 조장되고 과장되는 현상도 초래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독’을 달기 위한 미디어의 경쟁은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올바른 보도는 사회의 선순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악용될 때는 조작된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또 이용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로도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유의지 아래 생각하고 말한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권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걸 느끼고는 있는지. 꼭두각시 놀음이 만연한 사회에서 생각해볼 거리다.
이은우와 정소영은 공간에 색다른 이야기를 부여한다. 이은우의 공간은 특히 감각적이다. 특정 색으로 칠해진 공간에 ‘돌무늬’ ‘시계’ ‘붉은 줄무늬’ 등 다양한 물건들을 나열한다. 물건들은 각자의 질서에 따라 배치되고, 여기서 새로운 의미가 형성된다. 당장 방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 요소가 뛰어난 작품들이다.
정소영의 공간엔 비닐하우스가 펼쳐졌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공간에 지배당하는 인간과, 이 공간을 점유하는 인간 사이의 영향과 관계를 이야기한다.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지만 반대편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재질로 또 완전히 분리된 것 같지도 않은 비닐하우스의 특성을 통해 이 모호한 경계를 보여준다. 작가들의 특별한 이야기는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2월 25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