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누군가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 참견을 하려 든다면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입을 꿰매버리겠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가 ‘권리장전 2016 - 검열각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한 말이다. 검열각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지난해 진행된 릴레이 공연으로, 22개 극단이 5개월에 걸쳐 참여했다. 이른바 정부의 말을 ‘잘’ 듣지 않아 찍힌 예술가들이 모여 부당한 검열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차원에서 공연을 펼쳤다. 국가의 지원금 한 푼 없이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힘과 기금 모금 등으로 검열각하는 무너지지 않고 성황리에 진행됐다.
그리고 2017년에도 검열각하는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예술인들은 지난해 11월 4일 광화문 광장에 캠핑촌을 꾸리고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블랙텐트가 새롭게 들어섰다. ‘블랙리스트 예술인’이 꾸린 극장으로, 정부가 부당한 검열로 빼앗은 무대를 스스로 되찾겠다는 의지에서 세워졌다.
극장장은 이해성 대표가 맡았다. 블랙텐트 개막식에서 이 대표는 “현재 우리의 공공극장은 공적 재원으로 운영될 뿐 연극과 극장이 동시대 국가와 사회, 인간에 대해 묻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놓여 있으며 우리의 삶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며 “우리는 이 광장에 극장을 세우고 지워진 목소리, 추방된 이야기를 불러들일 것”이라고 선언문을 읊었다. 현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퇴진할 때까지 공연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공연은 감동후불제로 진행된다. 공연을 보고 감동받은 만큼 자발적으로 후원, 기부 받는 형태다.
블랙텐트의 첫 공연으로는 극단 고래의 첫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연극 ‘빨간시’(1월 16~20일)가 올랐다. 1월 23~24일엔 ‘그와 그녀의 옷장’이 열린다. 세월호 가족들이 시민들의 위로에 보답하고,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한 연극이다. 1월 25~27일엔 마임이 준비됐다. 그리고 1월 31일~2월 3일엔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이 이어진다. 검열 언어가 우리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살펴보는 자리다.
검열각하를 잇는 광장의 블랙텐트
블랙텐트의 첫 공연 현장이 궁금해 공연이 오르는 첫날 극장을 방문했다. 극장은 30평 남짓한 공간으로, 좁지만 무대 세트와 관객석을 체계적으로 갖췄다. 이날 100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가득 채웠다. 협소한 공간이지만 사람들은 옹기종기 붙어 앉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좌석이 차자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에 서서 관람하는 관객도 있었다.
그리고 이내 시작된 공연. 장소가 광장인 데다가 방음 시설이 없기에 자동차 경적 소리를 비롯해 차들이 움직일 때마다 생기는 진동,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그대로 다가왔다. 내부도 추웠다. 보온이 잘 안 돼 부직포를 일일이 다 천막에 붙였지만 영하로 내려간 강추위. 배우들이 연기할 때는 입김이 나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 매우 뜨거웠다. 배우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집중력, 그리고 그 관객들을 바라보며 펼치는 배우들의 열연은 그 무엇보다 뜨거웠다. 특히 극중 15분의 독백에서는 관객들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대표가 블랙텐트의 첫 공연으로 올린 ‘빨간시’. 이 공연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여배우 고(故) 장자연의 이야기가 함께 녹아 들어갔다. 15분의 독백은 꽃다운 어린 시절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 받았던 할머니가 자신의 속내를 담담하게 털어놓는 장면이다. 할머니는 이때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뜨거워진다. 약 2시간 15분 이어진 공연. 누구 하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빨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 대표를 광장에서 다시 만났다. 먼저 블랙텐트를 세우게 된 과정부터 물었다. 처음 블랙텐트 이야기가 나온 건 광장 캠핑촌을 관리하는 송경동 시인과의 대화에서다. 지난해 11월 문화예술인이 시국선언을 하고 광장에 캠핑촌을 꾸리면서 많은 연극인도 함께 동참했다. 송 시인은 “연극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참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 대표는 “천막 극장이 있으면 많은 걸 할 수 있을텐데”라고 답했다. 그런데 며칠 뒤 송 시인이 다급히 불렀다. “천막을 구했다”고.
“광장에서 작가들이 조형물을 만들고 또 다른 예술인은 퍼포먼스, 마임 등을 펼쳤죠. 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연기를 하는 연극인의 경우 보여줄 수 있는 활동에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안타까움 반, 농담 반 식으로 ‘텐트가 있으면 좋을텐데’ 하고 던졌는데 송경동 시인이 진짜 천막을 구해 왔더라고요. 처음 텐트를 보는 순간 솔직히 막막했어요. 기존엔 만들어진 극장에 무대 세트를 꾸리면 됐어요. 이것만 해도 힘든 과정인데, 이건 아예 극장 자체를 만들어야 하는 거니까요. 8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블랙텐트의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예술인이 힘을 보탰죠. 그래서 블랙텐트를 세울 수 있었어요.”
운영 회의가 열리고 3주 뒤 공연이 올라야 하는 상황 속 극단 고래의 단원들이 힘을 보탰다. 당시 ‘빨간시’는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 중이었다. 이 대표는 “광장에 블랙텐트가 세워진다. 제작비도 없고, 개런티도 없다. 여건도 열악하다”고 단원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블랙텐트의 취지에 동감한 이들은 무대에 서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뭐든지 처음이 가장 힘들어요. 아무 선례도 없는 상황에서 그 선례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지금 ‘빨간시’를 첫 공연으로 올리면서 계속 블랙텐트에 보완 작업을 하고 있어요. 미비한 것 하나까지 신경 쓰느라 다들 고생이 많죠. 하지만 마음은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블랙텐트에서 첫 공연을 올리고서는 ‘뜻 있는 일을 해서 좋다’고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거대한 침묵’이 일으키는 폭력
그렇다면 이들이 올린 ‘빨간시’는 어떤 작품일까. 블랙텐트를 꾸린 사람들은 “정부가 외면한 이야기를 끌어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여기에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도 있었다. 극은 한 할머니의 집에서 시작된다. 유력 일간지 기자 동주에게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뒤 가끔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청도에 가야 한다”고. 수요일 이야기를 꺼내면서 벌벌 떨기도 한다. 그리고 동주의 눈에 자꾸만 한 여배우가 보인다. 동주는 신문사 대표와 함께 어떤 술자리에 참석했는데, 여기에 온 여배우가 자살을 했다. 그 뒤 자꾸 그 여배우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동주에게 입단속을 하는 듯한 전화가 자꾸만 걸려온다. 당시의 진실을 듣고 싶다며 또 다른 기자도 집으로 찾아온다.
위태롭던 나날을 보내던 동주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저승사자의 실수로 할머니 대신 저승에 가게 된 것. 저승에 간 동주는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갔다 온 할머니는 아픔을 숨기고 있었다. 할머니의 삶을 살펴보면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도 돌아보고, 죽은 여배우의 삶도 함께 되돌아보게 된다.
이 대표가 ‘빨간시’를 쓰게 된 건 수요집회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수요집회는 25년째 이어지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열려 왔다. 이 대표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집회에 참석해 왔다(인터뷰 다음날 수요집회에서 그의 모습을 봤다). 집회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녹취록과 여러 사이트를 뒤지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들을 체감하게 됐다. 원고를 쓸 때 굉장히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혹여나 할머니들의 상처를 벌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 수정 과정을 4년에 걸쳐 했다.
2011년 드디어 ‘빨간시’ 첫 공연을 올렸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14년 세 번째로 ‘빨간시’를 올렸을 때는 이제 얼마 가지 않아 공연이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당시 UN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다루며 일본을 압박하는 등 적극적인 해결의 모양새가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그 중심에 할머니들은 없었다.
“현 정권이 가장 잘못한, 실패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엉터리 위안부 합의예요. 할머니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도 없었고, 돈이면 된다는 식의 졸속 합의였죠. 가장 이슈화된 현안 중 하나인 이 이야기를 꼭 블랙텐트에서 선보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잘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통은 공감하고 나눠야 치유가 되니까요.”
특히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속에서 돌고 도는 폭력의 상처, 그리고 그 근원이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극중 동주와 할머니, 그리고 여배우는 각자의 삶이 있다. 이들의 삶은 그냥 표면적으로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삶에는 계속되는 연결고리가 있다. 침묵이 일으키는 폭력.
진실을 아는 동주는 자신의 안위, 명예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마치 현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외면한 것처럼.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침묵의 희생자가 생겼다. ‘빨간시’ 초고에는 원래 여배우 이야기가 없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침묵의 악순환.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여배우 이야기가 보여준다. 여배우가 평화의 소녀상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한 특정 사안이 나왔을 때 이뤄지는 무서운 폭력이 있어요. 거대한 침묵이죠. 위안부 할머니들은 제국주의 아래 이뤄진 폭력의 피해자였어요. 이 제국주의를 정당화 시키고자 현재까지 입을 다문 사람들이 있고요. 그리고 장자연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때도 사람들은 침묵했어요. 솔직히 장자연 사건이 장자연의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자본주의라는 권력 구조 아래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죠. 블랙리스트는 또 어떻고요?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나는 모른다’ 식으로 입을 다물어요. 입을 다물면 지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죠. 저는 이게 과거부터 이어져 온 침묵의 악순환을 끊지 못해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생각해요. 진실을 아는 사람이 행하는 침묵,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죠.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와 장자연 사건의 이야기를 함께 넣었어요. 이 침묵의 공포는 과거 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가 현재 끊어야 할 악순환의 고리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복수-분노가 아닌 평화-생명의 빨간 빛
특히 이 과정에서 분노보다는 희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당하지 못한 일에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데 분노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분노조절장애사회’는 분노의 극단화 현상을 보여준다. 절망감과 자괴감이 만든 헬조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표출시키는 양상을 만들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이뤄지는 ‘묻지마 폭력’, 여기서 더 나아가면 ‘묻지마 살인’까지. 분노의 표출은 또 다른 희생자를 낳고, 또 다른 분노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또한 악순환의 고리다.
“저도 처음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접했을 때 어마어마하게 분노했어요. 그런데 그런 저의 분노를 가라앉혀 준 분들이 다름 아닌 위안부 할머니들이에요. 수요집회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눈물을 흘렸어요. 하지만 다음 세대들이 다시는 이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이 고통이 되풀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할머니들이 원한 건 복수가 아닌 진심 어린 사과, 평화적인 해결이었죠. 할머니들이야말로 진정한 운동가라고 느꼈어요. 비탄한 현실에 ‘저들은 저렇게 사기를 치고도 잘 사는데, 왜 내가 정당하게 살아야 해?’ 식으로 분노하는 모습도 많아요. 하지만 분노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할머니들은 진작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나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거죠.”
할머니들이야말로 침묵을 깨기 가장 어려웠을 장본인이다. 극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룬다. 할머니는 성폭력으로 원치 않게 임신을 했지만 차마 뱃속에서 살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를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게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인지 말할 수 없었다. 가족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웠고, 자꾸만 옛날의 상처가 떠올랐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용기를 냈다. 다시는 이런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래서 아무런 현란한 무대 효과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이어지는 할머니의 15분 독백이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본래는 사람들이 길게 이어지는 독백에 지루해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대목인데, 할머니의 진심이 울려 퍼지는 이 장면은 ‘빨간시’의 하이라이트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통해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 또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는 사회가 짓밟고 무시하려는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를 명쾌하게 드러내며 오히려 보란 듯 펼친다.
평화적인 해결의 움직임은 매일 이뤄지는 촛불 집회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해만 해도 1000만이 넘는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폭력적인 움직임을 자제했다. 과거 시위 때는 “이래 가지고는 아무 것도 못한다. 피를 봐야 저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촛불의 힘을 느끼고 있다. 쉽게 들끓었다가 쉽게 가라앉는 것이 한국인의 근성이라며 '냄비근성'이라는 지적이 과거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 평화적인 촛불 집회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공연 ‘빨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헌시예요. 여기서 빨갛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빨간 것은 죽음의 이미지가 있죠. 피의 빨간색은 두렵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한 생명을 말하는 색이기도 해요. 그리고 빨간 꽃 등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색이기도 하죠. 저는 이분법적으로 의미를 가르는 게 아니라 함의적인 의미에서 빨간색을 넣고 싶었어요. 한쪽에만 쏠린 이야기로는 현실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어요. 진보적인 가치만이 최고가 아니라 보수적인 가치도 이야기돼야 하죠. 지금 현재 우리의 보수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지만요. 진실을 온전히 다 담을 수 있는 미학적인 가치가 필요해요. 그것을 함께 고민해 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 대표가 몸을 담은 극단 고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고래. 고래는 인간이 갈 수 없는 바다 속 깊이까지 들어간다. 심연 속에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블랙텐트는 이런 고래처럼 세상이 제대로 듣지 못하고 또 보지 못하는 이야기, 때로는 감추려고 하는 이야기까지 끌어 올려내 무대 위에 펼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