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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블랙텐트 ⑤] 헬조선 부서지라고 분노로 발동동

무브먼트 당당 "노동자 아닌 인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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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3호 김금영⁄ 2017.02.17 16:42:18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광화문 광장의 블랙텐트는 그동안 국·공립극장들이 외면했던 동시대 고통 받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겠다는 포부를 앞세우고 다양한 공연을 펼쳐 왔다. ‘빨간 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펼쳤고 세월호 엄마들이 ‘그와 그녀의 옷장’으로 무대에 섰다.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은 비상식적인 검열 이야기를 비판했고, ‘씻금’은 역사 속 애환과 세월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이번엔 무브먼트 당당과 극단 돌파구가 블랙텐트에 섰다. 이들이 주목한 건 이 시대의 노동자 이야기다.


▲블랙텐트에서 무브먼트 당당의 '광장 꽃, 피다!' 공연이 열렸다. 터진 박에서 나온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사진=백은호)

“공단 내 다른 한국 기업인 ‘인터내셔널 패션로얄’ 노동자 피룬도 춤을 추고 있었다. 하루 평균 열 시간 일하며 부자를 위해 비싼 옷을 만든다는 피룬의 월수입은 130달러, 한화로 14만 원 …(중략) 춤추는 노동자를 향해 트럭 열대에 나눠 타고 온 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시 30분 …(중략)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죽고 삼십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룬의 오른쪽 다리에도 총알이 박혔다.”


송경동 시인의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가 배우의 입을 통해 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이 시를 몸짓으로 표현한다. 딱딱 맞는 칼군무가 이어지고, 때로는 각양각색 다양한 안무를 펼친다. 배우들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것도 느껴진다. 덩달아 관객들의 눈시울도 붉어진다. 배우들의 역동적인 몸짓을 통해 시의 언어 하나하나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나도 ‘꿈’이라는 것을 가져보고 싶다.”


꿈을 빼앗긴 사람들. 송 시인의 시는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에 세워진 한국계 기업 약진통상, 영원무역, 삼성의 해외 공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쉴 틈 없이 뼈 빠지게 일하고도 이들이 받는 최저임금은 고작 7만 원, 많아봤자 12~14만 원. 이 금액으로는 일상적인 생활 영위는커녕, 소중한 가족과 함께할 수도, 자신의 꿈을 위해 설 수도 없다. 정당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온 건 총질이었다.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연출. 무용을 전공한 그의 공연은 연극적이면서도 무용적인 특성이 있다.(사진=이강물)

하지만 이건 단지 외국의 한국계 기업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다. 공연 전에 광화문광장에 뿌려진 '광장신문'의 기사가 떠올랐다. 신문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포스코,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그리고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유서, 그리고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노동자였던 황유미 씨의 이야기가 실렸다. 죽어가던 황유미 씨에게 삼성전자가 내민 보상금은 500만 원. 그런데 현재 국정농단 사태에서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에게 지원한 건 3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디스 노동자 故 배재형 씨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억압, 착취, 탄압이 없는 세상으로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라고 적었고,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故 윤주형 씨는 “세상에 나오는 건 누구나 평등해도 사는 일은 그렇지 않았는데, 참 다행인 것은 그 누구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네요. 다행, 참 다행”이라고 적었다. 이처럼 슬픈 다행이 있을까.


이건 앞선 세대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도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로 쏟아진다.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에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자리도 없는데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열정이 없다"고 규정짓는다. 이렇게 서민들이 배고픈 가운데 대기업들은 점점 커진다. 공연 속 “전 세계 부자 85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전 세계 부자 85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지구별”


▲블랙텐트에서의 '광장 꽃, 피다!' 공연 현장. 무브먼트 당당의 공연은 시각적으로도 눈길을 끈다. 모자, 옷, 여러 소품에 여러 몸 동작으로 더욱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한다.(사진=백은호)

무브먼트 당당이 2월 10일 블랙텐트에서 ‘광장 꽃, 피다!’를 올리며 이 이야기들을 불러냈다. 최근 5년 동안 선보인 공연들 중 주요 장면을 뽑아 선보였다.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연출은 블랙텐트에서의 공연이 유독 뜻 깊다고 했다. 그는 “블랙텐트에 앞서 올랐던 예술인과 서로 20년 넘게 알아 온 사이”라며 “광화문 광장이 공론화의 장으로 바뀌면서 예술인이 광장에 모였고, 함께 부당한 사회에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무브먼트 당당은 광장의 노동자들과도 익숙하다. 광장 캠핑촌에는 예술인뿐 아니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사회운동네트워크, 기륭전자, 쌍용차, 콜트콜텍, 유성기업 등의 해고 노동자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무브먼트 당당은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 아래 소외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공연해 왔다. 홈리스 이야기를 다룬 ‘모는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100명의 연극인이 무대에 올랐던 ‘소외’, 칸칸의 방에서 자살 직전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는 ‘벗어난 원리들’,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퍼포먼스로 재해석해 선보인 ‘극장집회 공장의 불빛’, 한국 사회의 불행한 단면들을 모은 ‘불행’ 등…. 이 중심엔 노동자가 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소외되는 불행한 시대.


“무브먼트 당당은 '운동권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특별히 ‘노동자 투쟁 이야기만 해야지’ 했던 건 아니에요. 이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누구나 형태는 다를지라도 노동을 하며 살아가죠. 그런데 이 시대가 사회 구성원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눈길이 갔어요. 돈이 1순위고, 사람은 뒤로 밀렸죠. 인간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소모품으로 보는, 아주 천박한 태도가 보였어요. 자본주의 사회가 이 시대 사람들을 모두 소외시켜 버렸죠.”


▲무브먼트 당당의 연극 '소외'. 2013년 공연 당시 100명의 예술인이 무대에 올랐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받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박수를 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사진=무브먼트 당당)

2009년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고 사상자까지 나왔다. 같은 해 공개된 쌍용차 진압 영상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파업 노동자들에게 방패와 곤봉이 내리쳐졌다. 이때 김 연출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80년대 광주에서 벌어졌던 민주화 운동 진압 과정을 어렴풋하게 기억했다. 당시에도 충격적이었지만 어른이 돼서 영상과 사진으로 다시 접한 그 현장은 참혹했다. 90년대엔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학생이 죽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김 연출과 같은 학번이었다고 한다. 남의 일이라고 볼 수 없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래서 더 무서운 현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이야기만 될 뿐, 사회는 돈 아래 사람을 두고,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를 기만하고 억압하는 태도가 계속됐어요. 20년이 지난 2000년대에도 용산 참사, 쌍용차 진압 사태 등 잔인한 행태가 또 재현됐죠. 마치 전쟁과도 같아요. 더 교묘하고 교활해져서 잘 몰랐던 것이지,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는 건 착각이었죠.”


김 연출은 “이런 태도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만들어낸 것”이라며 “사람에 귀기울이고, 존중하는 태도가 있었다면 비상식적인 리스트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부당한 현실을 조장하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며, 입을 닫는 부역자들로 인해 참혹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2015년 선보인 '벗어난 원리들 ver. 2 - 우는 사람들'의 장면. 12개의 방에 각각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어떤 행위를 계속 반복한다. 대사 없이 1시간 동안 이뤄지는 이 동작들은 자살하기 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사진=옥상훈)

그래서 무브먼트 당당은 과오의 역사, 그리고 시민이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 현장을 되짚어가며 역사의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의 현장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또 경고하고 경계하기 위해 ‘인간 소외’의 현장들을 공연에 되살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목한 것이 시 그리고 인권선언문이다. 무브먼트 당당이 독특한 장르의 예술팀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연극이라고 이름은 붙었지만, 연극인지 무용인지 긴가민가하다.


예컨대 제22회 베세토 페스티벌, 그리고 남산예술센터에서 오른 연극 ‘불행’의 경우 독특한 공연-관람 방식이 화제가 됐다. 극장에 아무렇게나 쌓인 의자 더미 등 도저히 무대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공간 여기저기에 배우들이 서 있다. 그리고 관객들은 ‘돌아다니며 작품을 관람하라’는 안내를 받고, 그 공간 속 배우들을 직접 찾아간다. 배우들은 보험 외판원, 여고생, 상사와 부하직원 등 사회 각층의 사람들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분장해 있다. 그리고 작품은 각각의 사람들이 지닌 불행의 현장을 짚는다. 


‘벗어난 원리들’도 충격적이었다. 12개로 나눠진 각각의 방에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행위를 반복한다. 실타래를 만지작거리거나, 빨래를 널기도 하고, 포스트잇을 끊임없이 붙이는 행위 등이 아무런 대사 없이 60분 동안 이뤄졌다. 자살하기 전의 모습들이란다. 무브먼트 당당의 공연이 그렇다. 대사를 기본으로 하는 연극, 노래를 기본으로 하는 뮤지컬과 달리 함축성이 담긴 시의 언어, 그리고 배우들의 행위가 중심이 된다.


무브먼트 당당의 몸짓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무브먼트 당당은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재해석해 '극장집회 공장의 불빛'을 선보이기도 했다. 김민정 연출은 "이 시대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고, 그 중심엔 노동자가 있다"고 밝혔다.(사진=무브먼트 당당)

블랙텐트에서도 이들은 ▲신동엽의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김남주의 ‘잿더미’ ‘노동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노예라고 다 노예인 것은 아니다’ ▲1789 프랑스인권선언문 ▲1948 세계인권선언문 ▲김수영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송경동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너희는 고립되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를 읽으며 몸으로 춤을 추고, 여러 행위를 선보였다.


특히 1894년 동학격문부터 신동엽과 김남주의 시를 거치는 과정은 이들이 앞서 선보인 연극 ‘소외’의 장면에서 발췌한 것이다. 2013년 100명의 예술인이 무대에 서서 일사분란하게 박수를 치며 선보인 이 공연이 블랙텐트에서도 재현됐다. 시를 읽으며 박수를 치는데 그 현장이 주는 인상이 강렬했다. 이에 대해 김 연출은 “박수가 주는 힘이 대단하다. 힘이 있지만 폭력적이지 않다. 그 점이 인상 깊어 적극적으로 공연에 끌어들였다”고 박수 장면의 탄생 계기를 설명했다. 이런 머리 회전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저는 무용을 전공했어요. 무용가로도 활동했죠. 그렇다고 연극과 아예 떨어져 있지도 않았어요. 극단 생활을 20년 넘게 했죠. 그런데 특이한 경험을 했어요. 무용 안무가로 활동할 때도, 연극을 할 때도 ‘이게 무용이야? 연극이야?’ 하는 소리를 동시에 들었어요. 그런데 이 질문은 한국인이 주로 하는 것 같아요. 서양에서는 그냥 공연이라고 봐요.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선 예술의 분류를 더 명확히 구분짓는 경향이 있어요. 처음엔 이게 딜레마였는데, 나중엔 오히려 무브먼트 당당이 다원예술 그룹이라 불리는 계기가 됐어요. 저도 이런 평가가 좋고요. 항상 새로운 걸 찾아가는 게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고, 그게 재미있어요.”


공연을 준비할 때는 모두 과제를 받을 준비 태세를 갖춘다. 김 연출은 공연에서 역할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몸짓에 묻어나오기 때문. 그 일환으로 노동 투쟁 현장에 직접 배우들이 찾아갔다. 이건 공연에 많이 등장하는 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김 연출은 “시는 당시대의 상황을 가장 절박한 심정 속에 아름답게 표현한다. 지금도 ‘거리의 시인’ 송경동은 매일 광장에 나와 현실을 보고, 이를 시에 담고 있다. 혹자는 어렵게 느껴진다고도 하지만, 시의 언어를 살펴보면 그 시대를 느낄 수 있다. 시야말로 무대에 가장 적합한 언어”라며 “하지만 단순히 눈으로, 입으로 읽는 것만으로는 그 시대를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직접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배우들과 현장으로 갔다.


“상황을 명확히 해주는 대사가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게 바로 몸짓이에요. 우리는 상대방의 걸음걸이, 눈빛 등을 통해서도 ‘저 사람의 기분이 어떻구나’ 짐작할 수 있잖아요? 모든 행위엔 사람들의 습관, 그리고 생각이 담겨 있어요. 입만 말하는 게 아니라 몸도 말하죠. 그리고 이 몸짓이 잘 표현되려면 이해를 해야 해요. 좁은 연습실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관한 시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소외의 현장들을 찾아 다녔어요. 408일 굴뚝 농성을 벌인 차광호 씨도 무브먼트 당당의 배우가 직접 만났고,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가 됐죠. 살아있는 현장을 접하고, 그 현장에서 탄생한 시를 이해하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말처럼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들에게 강조했어요.”


그는 또 배우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항상 한다. 그래서 탄생한 장면들이 있다. 블랙텐트에서도 등장한 이야기다. 햄버거집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이 친구는 바쁘다. 조금도 쉴 새 없이 청소를 하고, 주문을 받는다. 잠깐이라도 쉬고 싶지만 점장이 끊임없이 이름을 불러대고, 조금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그 시간만큼 시급을 깎는다.


▲무브먼트 당당의 '언제든 반드시 되돌아올 비극,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고통에 눈감고 알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침묵의 공모로 지워버린 어느 가족의 역사' 공연 장면. 무브먼트 당당은 동시대의 외면받은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고, 부당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한다.(사진=김명집)

이 이야기는 무브먼트 당당 배우들의 실화다. 배우 활동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온 배우들에게 '노동 수기'를 작성시켜봤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박자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8박자를 제시해 ‘노동’이라는 주제 아래 각자 창의적으로 동작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어떤 배우는 물건을 줍는 행위를 하고, 또 다른 배우는 발을 구르기도 하고, 아픈 배를 움켜쥐는 동작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 아이디어가 취합되고 정리를 거쳐 공연이 탄생한다.


특별히 이번 블랙텐트 공연에서 김 연출이 ‘연출’ 아닌 ‘공동 창작’으로 자기 이름을 올린 이유가 있다. 배우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 오재미로 박 터뜨리기 한판이 벌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박'이 의미심장하다. 요즘 ‘아무 죄도 없다’고 입을 굳게 다문 그분을 떠올리게도 하는 단어다. 그런데 박이 터지고 배우들은 “박 깨졌다!”를 외친다. 깨진 박에서는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관객들은 박수치며 환호한다.


“처음엔 걱정한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브먼트 당당은 항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동시대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블랙텐트에서의 공연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후손들에게’를 읽으며 마무리됐다. 시는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라고 짚으며 ‘그러나 너희는, 마침내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이하거든 관대한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라고 끝을 맺는다. 나치를 피해 덴마크로 망명한 브레히트의 심정은 2017년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당당하게 발버둥 치겠다고, 오래 걸릴지언정 퇴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무브먼트 당당의 다짐이 광장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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