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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선 도시건축 ① 아이작 줄리언] 보이지 않는 자본 안의 신기루 같은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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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5호 김연수⁄ 2017.03.03 18:19:39

▲필리핀 가정부가 두바이 사막에 혼자 있는 '플레이타임'의 한 장면.(사진=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많은 창작자들은 자신의 삶과 주위에서 작품의 주제와 소재를 찾는다. 그리고 특정한 철학을 좇지 않더라도 본능적인 흥미와 호기심의 뿌리를 찾아가다보면 그 주제가 어떤 철학-사상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시각, 몸짓 등 감각의 영역에서 표현되는 다양한 예술분야들은 그 철학들을 머리가 아닌 직관, 혹은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특징이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예민한 예술가의 눈은 우리가 바쁜 삶에서 미처 보지 못하고 스쳐지나온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눈앞으로 끄집어내주곤 한다. 

최근 들어 일상의 삶, 그 중에서도 물리적인 삶의 터전인 도시, 건축 등에 관한 전시 기획 및 작품들이 부쩍 눈에 띈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뤄진 한국 근대에도 도시화된 주거 환경의 대비를 강조하며 경제개발 논리 이면의 무분별한 성장을 지적한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건축물은 경제 개발뿐 아니라 지리적 특성과 역사-문화 등의 복합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창작자들은 다양한 예술 형식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건축과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구조에 관한 연구와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호부터 소개하는 시리즈는 이런 창작자들의 삶의 터전, 즉 건축 더 나아가 도시에 관한 ‘발견’의 시선을 따라갈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소개할 작가-작품은 현재 강남의 플랫폼엘이 선보이고 있는 아이작 줄리언(Issac Julien)의 ‘플레이타임’이다. 

▲'레오파드'의 배경이 된 시칠리아 섬의 바로크 양식 궁전.(사진=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보이지 않는 것, 흐르는 것, 사과, 공장

아이작 줄리언은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화감독이자 영상-설치 작가다. 그는 흑인이고 동성애자이며 부모는 북아프리카 세인트루시아로부터 온 이민자다. 현대 사회의 소수자로 여겨지는 정체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배경은 줄리언 작업 세계의 뿌리가 된다. 이번 전시를 개최한 미술관 측은 그의 작품에 대해 “상이한 성적 정체성과 각기 다른 인종들이 공존 가능한 이상적 공간을 추구하는 예술세계”라고 소개한다.

줄리언의 국내 첫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에서 그는 기존에 만들었던 영상 작품 세 개 ‘레오파드’ ‘캐피탈’ ‘플레이타임’을 선보인다. 이 세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커다란 주제는 ‘자본’이다. 그 중에서도 캐피탈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힌트가 되는 영상이라고 볼 수 있다. 플레이타임 제작을 위해 2013년 런던의 헤이워드 미술관에서 사상가 데이비드 하비와 함께 펼친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보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관련 대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이 작업에 등장하는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에 대해 “보이지 않으며, 잡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공장이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자본을 알 수 있다”고 덧붙인다. 더불어 ‘이동하고, 흐름이 멈추는 순간 죽음을 맞는’ 자본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하비의 이런 말들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영상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핵심적인 은유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북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난민들의 위험 가득한 여정을 그린 작품 ‘레오파드'(2007)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화려한 바로크풍 궁전이 배경인데 난민들의 몸부림 같은 몸짓이 건축물, 흐르는 물의 이미지와 교차 편집되는 장면은 건축물의 역사적 의미보다 서구 근대의 열망(자본)의 결과로서 그 이면의 속성을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부가 고층 빌딩의 엘레베이터를 타고 가면서 보는 두바이의 풍경.(사진=유투브 캡쳐)


두바이-고립

‘플레이타임'(2014)은 자본이라는 명료한 주제와 이런 은유들이 조금 더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으로서, 작품 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인물, 배경 등)이 ‘사과’, 즉 보이지 않는 중력-자본의 결과로서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자연과 건축물의 대비로 표현되는 공간은 그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이다. 각기 다른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다섯 개로 나뉘는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지만, 배경 도시는 런던, 두바이, 아이슬란드다. 그곳에서 줄리언은 조금씩 다른 공간-건축물의 해석을 열어둔다. 그는 작품의 제목인 플레이타임이 프랑스 영화감독 자크 타티(Jacques Tati)의 동명 작품 ‘플레이타임'(1967)에서 차용한 것이며, “타티의 작품이 대도시 파리의 건축에 대한 명상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나는 건축에 관한 명상을 자본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힌다. 

한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이야기는 아랍 에미리트 연방국의 신흥 도시 두바이에서 펼쳐진다. 원유 수출국이자 물류-항공-관광 인프라를 갖춘 중동의 금융 중심지인 두바이는 황량한 모래사막에서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대도시로 변모하기까지 겨우 6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카메라의 앵글은 대도시의 야경을 조망하고, 그 사이로 출근하는 가정부의 모습을 따라간다. 한참을 위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한 사무실 공간에서 가정부는 혼자 청소를 하며 자신이 이곳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눈물을 흘리며 독백한다. 줄리언은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한 공간 뒤에 숨겨진 가정부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보이지 않는 자본과 노동력을 병치시킨다. 또한, 쓸쓸한 가정부의 모습과 도시 속 사무실 공간, 두바이의 원래 모습인 사막의 모습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가정부가 있는 공간은 화려한 도시의 깔끔한 사무실일지라도 사막과 다름없음이 느껴진다. 

▲헤지펀드 매니저 등이 대화를 펼치는 런던 고층 빌딩의 빈 사무실.(사진=유튜브 캡쳐)


런던-게임

대도시의 풍경은 런던으로 옮겨져 또 다른 빌딩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아무런 집기도 들어오기 전의 빈 공간은 자본이 흘러들어올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헤지펀드 매니저 등은 일종의 속임수처럼 느껴지는 헤지펀드 전략을 구사한다. 그 전략은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 등을 나온 최고 엘리트들에 의해 이뤄진다. ‘낙수효과’ 등을 이야기하는 자본가들의 대화. 특히 “마르크스에게 적당한 자리는 하이게이트(마르크스의 무덤이 있는 런던의 공동묘지)”라는 비아냥거림은 지구촌을 열전과 냉전으로 이끌고 들어간 그의 사상에 대한 완전한 사망선고처럼 들린다. 

빈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외부에서 멀찍이 바라본 건물 외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축적 이미지는 모눈종이 같은 격자무늬의 창틀이다. 차갑게 느껴지는 네모난 유리창을 통해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규격화된 이미지는 이제 현금이 아닌 숫자로 떠돌아다니는 자본의 형태와 함께, 네모난 컴퓨터가 가득 들어찬 방과 겹쳐진다. 헤지펀드 매니저 등는 빌딩 숲을 걷듯 커대한 컴퓨터들 사이를 걸으며, ‘자본 없는 자본’ ‘실체 없는 자본’에 관해 이야기한다. 

▲'플레이타임'에 등장하는 런던의 건축물 야경.(사진=유튜브 캡쳐)


다음으로 이어지는 헤지펀드 매니저의 냉소적이고도 자신감에 찬 독백은 갤러리의 전시 공간에서 이뤄진다. 미술품 경매사의 상승하는 숫자를 부르는 호가 소리와 함께 하얀 계단을 올라 도착한 전시장은 미술에서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곳이다. 화이트 큐브는 벽에 빈틈없이 그림을 걸고 전시했던 예전의 방식에서 조금 더 작품에 효율적으로 집중하기 위해 변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술을 권위적으로 만드는 장치라는 비판적인 입장도 있다. 그 바탕엔 미술이 특정 계층의 향유 목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의 변화가 있다. 

전시장에서 펀드 매니저는 자본으로 바라본 미술품과 미술시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들이 미술품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 “향유하고 지식을 토론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희귀한 것을 소유한다는 권위를 획득하기 위한 것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수집품 시장은 인터넷망을 통해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더 넒은 금융시장이며, 전통적인 금융 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음에도 더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고도 매력적이지 아닐 수 없다”며, 흥분에 차올라 “It's a game!(이건 게임이야!)”라고 외친다. 

▲레이캬비크 근교에 덩그라니 남은 남자의 집.(사진=유튜브 캡쳐)


레이캬비크 - 자본 인증

아이슬란드의 얼음 화산지대를 배경으로 덩그렇게 남은 집에선 한 남자가 비통에 젖어 독백을 한다. 어렸을 적 그의 희망은 커다란 산업 공간 같은 건물을 갖는 것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은행은 그에게 아무런 규제 없이 대출을 해줬고, 남자는 대출받은 돈으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막 행복한 생활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2008년 닥친 세계의 금융위기는 그에게 파산을 안겼으며, 가족들도 다 떠나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텅빈 빈 집 뿐이다. ‘산업 공간 같은 집’은 하비가 말한 ‘문 닫은 공장’을 떠올리게 한다. 텅 빈 집은 문을 닫은 공장처럼 자본의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이슬란드의 화산 지대에서 피어나는 연기는 허무한 확산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한편, 얼어붙은 얼음 덩어리들에서 멈춰버린 자본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경매사와의 인터뷰

실제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미술품 경매사 시몬 드 퓌리와 리포터 역할을 한 배우 장만옥이 미술품 경매 시장에 대해 인터뷰하는 장면은, 배경 공간이 구조보다는 색감으로서 나타난다. 빨강과 노랑의 선명한 색감의 인테리어 장치들은 자연의 색감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인공적으로 느껴진다. 이 장면에서 경매사는 자본의 속성을 결정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앞서 헤지펀드 매니저가 밝힌 것처럼 2008년 세계금융시장이 붕괴된 후에도 미술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경매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미술 시장은 막강하고 단단해서 조작이 쉽지 않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상징은 경매사가 들고 있는 망치다. 낙찰을 결정할 때 내려치는 이 망치에 대한 장만옥의 내레이션이 의미심장하다. “망치는 문장에서의 구두점과 같다. 문장는 입찰(과정)이다. 망치는 쉼표와 마침표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 때, 충분히 높은 가격으로 입찰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플레이타임’은 7개로 설치된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돼있다. 주요 인물들은 스크린을 옮겨 다니며 대사를 하고 나머지 화면은 영상의 나머지 공간이나 대비되는 배경들을 비춘다. 예를 들면 자본가인 헤지펀드 매니저가 중심의 화면에서 대화를 나눌 때, 한 편의 차마 시선이 닿지 않는 화면에선 필리핀 가정부가 쓸쓸히 청소를 하는 장면을 비추는 식이다. 각각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마치 빌딩들이 서있는 도시의 구조를 연상시키고, 우리는 그곳을 스치거나 집중하면서 볼 수 있게 된다. 삶 속에서 보지 못할 전체의 구조, 그리고 시선이닿지 않아 놓친 것들을 플레이타임은 제시한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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