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여자를 공(球)에 비유한 좀 못된 개그가 있는데 내용을 좀 볼작시면, 20대 여성은 22명이 서로 차지하려 난리를 치니 축구공, 30대는 농구공이어서 잡으려는 사람 수는 10명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인기, 그리고 50대는 골프공이란다. 숲으로 들어가면 찾으려 들지도 않고 그냥 버리고 마니까.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여성 비하 의도가 없고 그냥 골프공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들 규탄하려는 목적일 뿐이다.
골프공 값은 개당 대략 2000원에서 4000원 정도이다. 라운드 당 적게는 1, 2개 많게는 5, 6개도 물에 퐁당, 숲에 풀썩, 다른 집으로 휘익~ 하니 공 값만도 꽤 든다. 이래서 골프가 비용 많이 먹는 운동이 아닐까. 어쨌건 새것 값은 수천 원이지만 중고(헌 볼)라면 500원만 해도 그럴듯한 것을 고를 수 있다. 골프 공은 ‘몇 회 이상 사용한 뒤 교체’, 이런 강제 규정이 없으니까 어떤 공을 쓰건 자기 마음대로다.
난 라운드 때 새 공을 거의 쓰지 않는다. 물에 수백 년 잠겨있느라 팅팅 불어 탄성 떨어진 정도만 아니면 헌 공, 새 공 성능 차이를 크게 못 느끼는 실력이어서 그렇고, 무엇보다도 한두 번 때리고 나면 곧바로 중고가 되고 말 것인데 어쩌랴 하는 아까운 마음에서다. 사지는 않겠지만 더러 공을 선물로 받을 텐데, 그건 얻다가 쓰냐고? 이때는 시상품으로 팍팍 과감히 내놓는다.
나의 중고 볼 사랑이 자칫 목숨과 바꿀 뻔도 했으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지독하다. 9년 전인 2008년 봄, 언덕 아래로 떨어진 로스트볼을 확인하려다 직벽에서 추락해 대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다쳤고 1년 이상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 사고는 당시 일간 스포츠지에 <코미디작가 김재화의 골프공 사랑…> 어쩌구 하며 날만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가 입원한 병실을 찾은 골프 애호가 지인들이 화분의 리본에 적기를 ‘집 나간 여자와 골프 공은 다시 찾지 마라!’이었다. 심지어는 ‘사람 목숨은 500원짜리 중고 볼보다 훨씬 더 가치가 높습니다!’라는 것도 있었다.
500원짜리 헌 공 찾다 병원 신세까지
중요한 건 가격 아니라 각자 공에 담는 가치
처음에는 그들의 농담에 몹시 부끄러워했다. 500원 정도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낡은 볼 하나를 기어이 찾으려 할 만큼 빈한한 자가 웬만큼 돈 들 각오하지 않으면 못 치는 골프는 왜 하느냐는 자괴감이 들었던 것이고, 부모가 주신 성스러운 것이 자식의 육신이니 머리카락 한 올 손톱 한 마디도 중하게 여겨야 할 텐데, 몸을 함부로 놀리고 만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에 한없이 뜨끔했던 것이다.
▲한 골퍼가 골프공을 힘껏 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9년 전 내 골프사에서 최악의 사건이 된 ‘헌 공 찾다 목숨 잃을 뻔’한 일은 이제 추억이 됐고, 나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팡팡 공을 때려대고 있는데, 공은 여전히 중고를 사용한다. 이래저래 생긴 볼이 여러 박스가 있지만 아직도 새 공은 간이 떨려서 쓰지 못하는 소심표를 벗지 못하고 있다.
골프장 이용료는 여전히 부담이 된다. 그린피, 카트 사용료나 캐디 팁을 깎을 수 없는 노릇이니 그저 500원도 안 되는 낡은 공을 쓰는 것으로 비용을 다소나마 줄이고 있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 170년 된 희귀 골프공이 영국서 2만 5000파운드(우리 돈 5100만 원) 가격으로 팔릴 것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현재까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골프공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내게 가장 값나가는 골프공은 다르다. 9년 전, 언덕 아래서 끝내 찾지는 못했지만 내가 거의 목숨을 걸었던 그 ‘헌 공’이다. 분명히 500원짜리지만 훨씬 더 이상이다. 그리고 지금 새삼 외치고 싶은 것은 남들은 혹여 싸다고 할지 몰라도 특별한 가치가 있거든 목숨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것을 걸어도 좋지 않을까~!!
(정리 = 공미나 기자)
김재화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