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강명식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안개가 끼었습니다. 어찌나 깊은 안개인지 한 시간 거리를 두 시간 넘게 걸려서야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 안개가 우리 동네에만 끼었을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세 부부가 골프하는 날입니다. 아내는 이날을 기다렸음이 확실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못내 안개가 야속한 눈빛입니다. 안개는 아주 두껍게 골프장도 뒤덮고 있었습니다.
물을 한껏 머금은 안개는 아침 기온도 차갑게 내려놨습니다. 클럽하우스가 따뜻했습니다. 우리보다 한 시간 전에 라운드를 나가야 되는 팀들이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재촉하는 직원들의 말을 뒤로하고 옷을 천천히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아내는 이미 나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여자입니다. 누구에게 신세지거나 피해주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우리 카트가 맨 앞 두 번째입니다. 아내는 벌써 그것을 확인하고 식당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운 날씨에는 요기를 해야 합니다. 나는 아내가 9홀의 체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밥을 먹여 내보내지 않으면 아주 힘들어 할 게 분명합니다. 춥기도 하지만, 골프가 노동이 됩니다. 밥을 먹었습니다. 아내도 맛있게 먹습니다. 따뜻해집니다.
드디어 앞 팀에 여자 세 명, 그리고 뒤 팀에 남편 셋이 따라갑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개 안개가 끼면 지시등을 페어웨이에 켜놓는데, 이 골프장엔 없습니다. 다만 티잉그라운드에 큼지막한 화살표가 있습니다. 그것에 정렬해 치는 것입니다.
골프는 길 찾아 떠나는 항해
등대와 같은 안개 속 지시등
그러나 불빛과 화살표는 천지차이입니다. 밤 항해에 등대가 희망이듯, 안개 속 지시등은 단순히 방향만 지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골퍼의 희망이었습니다. 골프가 항해와 같기 때문입니다. 골프는 길 찾아 떠나는 항해입니다. 더욱이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남편도 없이 아내가 항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안개가 정말 야속하고 얄밉습니다.
▲7월 23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MY 문영 퀸즈파크 챔피언십 2017’ 최종 라운드가 열렸다. 골프장에 안개가 자욱하다. 사진은 기사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그랬습니다. 아내와 근 30년을 살면서 항상 어둡고 고단한 길을 앞세웠습니다. 처자식 먹여 살린다는 미명 아래 총알받이로 앞세웠습니다. 아내도 쉰을 넘긴 지 오랩니다. 남편만 나이 먹은 것이 아닙니다. 언제부턴지 아내가 운동을 갔다 오면 파김치가 돼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팔자 좋게 골프 치고 와서 밥도 안 주네”라고 빈정댔습니다.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체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내가 씩씩하게 안개를 헤치고 앞서 나갑니다. 용감하게 갑니다. 난 무조건 따라갑니다.
전반 나인을 돌고서야 앞이 보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갠 것은 아닙니다. 후반 나인도 아내는 씩씩하게 항해했습니다. 척후병으로 임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골프가 끝나고 들어오니 아내의 피로한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임무를 완수한 전사의 얼굴입니다.
골프가 끝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내는 군말 없이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남편도 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골프장에서 나와 집으로 갑니다. 안개는 말끔히 걷혀 돌아가는 길은 수월합니다. 아내가 졸린 것 같습니다. 남편이 운전할 때 절대 졸거나 자지 않는 여자입니다. “자? 여보….” 내가 조용히 말합니다. 졸던 아내가 깜짝 놀라 자세를 고칩니다. 아무 말 하지 않습니다. 나는 말없이 조용히 운전합니다. 아내가 잡니다. 새근새근 잡니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강명식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이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