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54) 노르웨이·네덜란드] ‘좁아서 나간’ 나라에서 진보를 배운다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 (플롬 → 오슬로 도착)
피오르드 감상법
다만 끝끝내 아쉬운 것은 하나 있다. 각박한 나의 여행 일정 때문에 피오르드의 절반, 아니 반의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나야만 한다는 점이다. 노르웨이하면 피오르드 여행인데 피오르드를 가장 멋지게 즐기는 방법은 크루즈도, 자동차도 아닌 트레킹이라는 점을 여기 와서 깨닫는다. 크루즈는 배에서 위로 피오르드를 올려다보며 감상하는 방식이라면, 자동차는 높은 곳에 올라 피오르드를 내려다보고, 다시 아래 수면 높이로 내려와 올려다보는 방식이 가능하므로 크루즈보다는 조금은 나아 보인다. 그래도 피오르드 감상은 트레킹으로 하는 것이 정답이다.
플롬 같은 곳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방문자들이 피오르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비스타 포인트(vista point)로 트레킹 길에 오른다. 왕복 2~3시간짜리의 쉬운 트레킹부터 왕복하는 데 하루 종일 걸리는 중·상급 트레킹까지 코스가 다양하다. 노르웨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꼭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노익장
이제 피오르드 지역을 떠날 시간이다. 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돌아 오슬로로 돌아간다. 에이드 피오르드(Eidfjord) 부근 휴게소에서 80세 운전자 독일 노인을 만났다. 독일에서 폭스바겐 골프 차량을 몰고 여기까지 왔다. 그야말로 산 넘고 바다 건너 머나먼 길을 달려온 그의 노익장에 경의를 표한다. 내가 80세 됐을 때 그처럼 거침없이 자동차를 운전해 바람처럼 자유롭게 지구촌 구석구석을 다니며 맘껏 보고 맘껏 쉬는 여행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새삼 나 자신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다.
▲네뢰이 피오르드 가는 길. 피오르드 감상은 트레킹으로 하는 것이 정답이다. 사진 = 김현주
물가 비싼 노르웨이
오슬로로 돌아가는 길,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려니 태국 음식 푸드 트럭 한 대가 눈길을 끈다. 태국 이민자 여성이 주인이다. 점심을 먹어보니 푸짐하고 맛있어 아예 오늘 오슬로 도착해서 먹을 저녁 한 끼까지 테이크아웃 한다. 탄산음료까지 합쳐 두 끼 분이 230 크로네, 한화 3만 3000원, 정신이 번쩍 들도록 물가가 비싼 노르웨이에서는 썩 괜찮은 가격이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멋진 대자연을 400km 넘게 달려 오슬로에 도착하니 저녁 7시 30분, 북방의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다.
▲피오르드 지역을 떠나면서 부근 휴게소에서 80세 운전자 독일 노인을 만났다. 산 넘고 바다 건너 머나먼 길을 달려온 그의 노익장에 경의를 표한다. 사진 = 김현주
▲오슬로 호스텔 매니저 필립은 스리랑카 출신이다. 타밀 반군과 스리랑카 정부군의 분쟁 지역이었던 고향 자프나를 떠나 25년 전 노르웨이에 정착했단다. 사진 = 김현주
어느 이민자의 사연
숙소로 예약한 곳을 찾아가 체크인 하려니 로버트라는 이름의 스리랑카 북부 출신 중년 남성이 반겨 어리둥절해진다. 타밀 반군(Tamil Tigers)과 스리랑카 정부군의 분쟁 지역이었던 고향 자프나(Jaffna)를 떠나 25년 전 노르웨이에 정착했단다. 직업 전문학교가 쉬는 여름 방학 동안 학교의 기숙사와 주방 시설을 임대해서 벌써 여러 해 유스호스텔을 운영 중이다.
야간 당직자 및 셰프인 아싯타는 콜롬보 출신이다. 둘 다 스리랑카 사람들이지만 언어와 문화, 종교가 달라서 대화는 노르웨이어로 한다. 오로지 근면과 성실로 이만큼 이룬 그들에게 건강과 무운을 비는 마음이다. 낯설고 외로운 이국땅에서 그들이 지내온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니 공연히 나까지도 비감해진다.
호스텔에서 만난 노르웨이 사람 미나 가족은 한국을 동경한다. 자기 집은 자동차부터 휴대폰, 가전제품까지 모두 한국제라며 자랑한다. 쌀쌀하고 차가운 물질주의 나라 노르웨이에 대한 답답함을 하소연한다. 의외의 고백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글로벌 시대의 참 모습이 지금 이 호스텔에서 시시각각 펼쳐진다. 사연이야 어쨌든 모두 지구별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4일차 (오슬로 → 암스테르담 도착)
유럽 렌터카 여행 셈법
느지막이 숙소를 나선다. 오슬로 공항에서 렌터카를 반납하니 900km를 주행했다. 보험을 포함한 렌터카 비용 28만 원, 유류비 11만 원…. 이동에 든 모든 비용이 40만 원에 육박한다. 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인 노르웨이를 구석구석 들른 편리함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대가는 아니다. 또한 빠른 이동 수단 덕분에 숙박 일수와 끼니 수를 줄여 전체 여행 경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도 그렇다.
▲네덜란드 농촌 풍경. 산악 국가 노르웨이를 떠나 지형이 매우 평평한 네덜란드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사진 = 김현주
변방에서 중심으로
항공기는 이륙한 지 1시간 30분 후 암스테르담에 접근한다. 유럽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산악 국가 노르웨이를 떠나 지형이 매우 평평한 네덜란드를 보니 낯설다. 네덜란드는 국토 전체를 통틀어 최고 지점이 해발 321m에 불과하고 지금 항공기가 내리는 스키폴(Schiphol) 공항은 해발 -4m, 물을 뺀 호수에 지은 공항이다. 네덜란드(Netherlands)는 이름 그대로 ‘낮은 땅’, 국토의 50%가 불과 해발 1m이고 국토의 17%가 간척지다.
진보의 나라, 네덜란드
우리나라의 2/5 국토 면적에 인구 1700만 명, 인구밀도는 407명/㎢이다. 방글라데시, 한국, 타이완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조밀한 나라이지만 미국에 이어 농산물 수출 세계 2위다. 비옥한 토지와 온화한 기후, 그리고 과학 영농 덕분이다. 자유와 관용의 나라, 진보의 나라답게 낙태, 매춘, 안락사를 합법화했고 2001년에는 세계 최초로 동성혼(同性婚)을 허용했다. 아름답지만 쌀쌀하고 답답했던 변방 노르웨이를 떠나 네덜란드에 발을 디디니 마음이 무척 편해진다는 것을 금세 느낀다. 뉴욕이나 파리 쯤 와있는 느낌이다. 진작 왔어야 할 나라다.
네덜란드 황금기
좁은 땅을 떠나 일찌감치 세계로 나가 17세기 대부분을 그들의 시대로 만들었던 네덜란드 황금기(Dutch Golden Age)도 알고 보면 그들의 진취성이 낳은 결과다. 당시 네덜란드는 과학, 군사, 예술은 물론이고 조선 기술도 세계 최고였다. 동인도 회사, 서인도 회사를 앞장 세워 남아프리카(Cape Colony), 남미 아마존 지역,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국 맨해튼(Manhattan, 1614년)까지 그들의 영토로 만들었고 철통 쇄국 정책을 폈던 일본에서도 나가사키에 거류지(무역권)를 확보했던 나라다.
척박한 환경 탓에
잦은 홍수와 해일, 척박한 환경 탓에 농사짓기 어려워서 세계 무역에 나설 수밖에 없었으니 이 땅은 그들에게 고난이자 기회였던 것이다. 물을 극복한 역사가 곧 네덜란드의 역사다. 13세기에 이미 풍차가 등장했고, 20세기 후반에는 3000km에 달하는 제방, 10만km에 달하는 내륙 수로를 구축했으니 이를 두고 미국 토목공학회는 현대 7대 불가사의라고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향후 지구 기후 변화에 대비해 10cm 해수면 상승까지 견디도록 했다. 작디작은 이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행사하는 막강한 영향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깨닫는다.
▲풍차 마을 잔서 스한스. 물을 극복한 역사가 곧 네덜란드의 역사다. 13세기에 이미 풍차가 등장했고, 20세기 후반에는 3000km에 달하는 제방, 10만km에 달하는 내륙 수로를 구축했다. 사진 = 김현주
이민자의 도시
네덜란드는 다인종 국가임을 공항 터미널에서 금세 확인한다. 네덜란드인 81% 이외에 독일 등 인근 유럽 국가, 인도네시아, 터키, 남미 수리남, 기타 북아프리카 및 카리브 해 등 다양한 지역 출신자들이 이 나라의 인구를 구성하고 있음은 이 나라 어디를 가도 확연히 드러난다.
특히 수도 암스테르담은 비백인(非白人) 거주자 비율이 45%에 달할 정도니 이 나라의 다양성과 관용도 수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문화(異文化) 포용력이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만큼 다양성은 더 높아지고, 그로 인하여 더 많은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선순환 구조를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