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우리 셋 모두 원래는 강아지파예요. 강아지를 좋아하고, 우리 성격도 도도한 고양이보다는 쾌활한 강아지를 닮았죠. 그런데 뮤지컬 ‘캣츠’를 만나고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도도하면서도 때로는 웃긴 행동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죠. 하하.”
뮤지컬 ‘캣츠’의 주역 로라 에밋, 윌 리처드슨, 크리스토퍼 파발로로가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은 현재 ‘캣츠’ 앙코르 무대에 오르고 있다. T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시집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캣츠’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젤리클 축제에 세상의 고양이들이 모여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양이들은 한 마리씩 자신의 화려했던 삶을 들려주고, 이들 중 천상으로 보내져 새로 태어날 기회를 얻을 단 한 마리의 고양이가 최종 선택된다.
다양한 고양이가 극에 등장하는 가운데 세 배우 또한 매력적인 고양이로 분한다. 특히 이들이 맡은 고양이들은 ‘캣츠’의 수많은 고양이들 중 늘 인기 top3에 들 정도로 인기 캐릭터. 배우들이 강아지파에서 고양이파로 감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고, 지금도 하루하루 계속 빠지는 중”이라는 고백이다.
로라 에밋은 고양이 그리자벨라를 연기한다. 한때는 매우 아름답고 매혹적인 고양이었지만 지금은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초라해진 고양이다. ‘캣츠’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네 삶을 엿보며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그리자벨라 또한 그렇다. 로라 에밋은 “일단 그리자벨라가 ‘캣츠’의 상징곡이자 가장 유명한 노래 ‘메모리’를 부른다는 것이 인기 요소다. 멜로디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노래는 고통을 솔직히 고백하는 동시에 희망을 노래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또 그리자벨라를 통해 이해와 포용의 가능성도 느꼈다고. 로라 에밋은 “처음엔 같은 고양이 부족이 그리자벨라를 배척한다. 하지만 그리자벨라의 이야기에 점점 하나둘씩 귀를 기울이고, 다시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가는 과정이 매우 아름답다”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이 사회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장면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로라 에밋의 그리자벨라가 감동을 준다면 윌 리처드슨이 연기하는 럼 텀 터거는 이른바 분위기 메이커다. 모든 고양이들이 이미지가 강한 가운데 유독 반항적이면서도 독립적이고 섹시해 눈길이 저절로 가게 되는 고양이다.
윌 리처드슨은 “‘캣츠’를 아는 사람이라면 보통 럼 텀 터거를 알고 있을 정도로 극에서 굉장히 강한 인상을 주는 고양이다. 고양이들의 중심에 서서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당당한 점이 매력적이다. 이런 점은 나와도 닮았다”며 “만약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다면 질투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럼 텀 터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파발로로가 연기하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극에 판타지적 요소를 더해주는 마법사 고양이다. 신비한 마법으로 극에 동화적 요소를 불어 넣으며 잊고 있던 동심까지 떠오르게 하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극 속의 고양이처럼 눈을 한껏 초롱초롱하게 뜬 크리스토퍼 파발로로는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는 극의 귀염둥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어 “모든 사람이 마법을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미스토펠리스가 마법을 펼칠 때마다 관객들의 호응이 굉장히 좋다. 보여줄 수 있는 장기가 많은 캐릭터라 도무지 지루할 틈 없는 매력적인 고양이”라고 미스토펠리스 사랑을 보였다.
한국 관객과의 호흡 특히 인상적
브래드 리틀의 ‘한국사랑’ 전파도 한몫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캣츠’는 국내에서도 3~4년 주기로 꾸준히 공연돼 오며 사랑받았다. 지난해에는 오리지널 퀄리티는 유지한 채 메이크업 및 의상 등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새로운 버전의 ‘캣츠’가 아시아 첫 무대로 한국을 택했다. 국립극장에서의 무대를 마치고 전국 12개 도시를 투어했고, 앙코르 무대로 다시 서울을 찾았다. 서울 공연 이후엔 대만까지 투어를 이어간다.
기존 ‘캣츠’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포부까지, 신구(新舊) 사이에서 부담감도 있었을 터. 하지만 세 배우는 무엇보다 공연을 즐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캣츠’는 배우뿐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이기 때문. 관객과의 호흡은 여타 공연에서도 당연한 것이지만, ‘캣츠’에서는 유독 배우들이 관객석에 뛰어드는 시간이 많다. 진짜 고양이처럼 관객에게 살금살금 다가와 짓궂게 장난을 치고 도망치기도 하고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그래서 어제 공연과 오늘 공연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관객과의 호흡이 많다보니 생긴 에피소드도 있다.
윌 리처드슨은 “한국 관객의 반응은 특히 열광적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도 많다. 럼 텀 터거는 특히 관객과 소통이 많은 캐릭터다. 한 번은 한 남자 관객을 놀리려고 슬금슬금 다가갔는데 오히려 그 관객이 열정적으로 춤을 추며 다가오더라. 또 코트를 씌우고 도망갔는데 돌려주려고 무대까지 따라온 관객도 있었다”며 웃었다. 관객과의 돌발 에피소드는 지금까지 ‘캣츠’를 쌓아 온 원동력이다. 공감하기 어려운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네 이야기들을 대신 해주는 고양이들과 함께 한바탕 신나게 장난치고 즐기고 또 눈물도 흘리는 자리다.
특히 한국 관객에 대한 친화력을 보다 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인물이 있다.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는 브래드 리틀.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를 연기하는 브래드 리틀은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등 수많은 내한 공연을 거치며 한국 사랑을 외쳐 국내 관객들로부터 ‘빵 아저씨’라는 친근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세 배우는 “브래드 리틀이 한국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서 어디를 가보면 좋은지, 무엇을 먹어보면 좋은지 등 한국 사랑을 우리에게 전파했다”며 웃었다. 이어 “언어 소통할 때 통역이 잘못 전달돼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브래드 리틀이 중간에서 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해결사 역할도 했다. 한국 공연 경험도 많아 정보도 풍부하다. 배우로서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캣츠’ 뉴 버전의 아시아 첫 무대부터 현재 앙코르 공연까지. 쉴 틈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급격히 추워진 한국 날씨에 놀란 이들이지만, 무대에 오르는 순간만큼은 가슴에서 불이 난단다. 관객들과 한바탕 또 신나게 놀 생각에 들떠서.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2월 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