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주목 전시] 검열 경찰이 예술가에게 33년 감금 당하면 뭔일이?

쥐 안치, ‘어 미씽 폴리스맨(A Missing Policeman)’ 국내 첫 전시

  •  

cnbnews 제612호 김금영⁄ 2018.10.31 09:22:58

쥐 안치 작가.(사진=아라리오갤러리)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경찰이 사라졌다’는 게 문제가 됐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 호텔에서 12월 9일까지 상영되는 쥐 안치의 ‘어 미씽 폴리스맨(A Missing Policeman)’ 이야기다.

 

이 영상 작품은 본래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뒤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다른 작품으로 대체됐다. 국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경찰의 실종을 다뤘다는 자체가 중국에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것. 결국 중국에서는 작품 제작을 후원한 아트미디어 그룹을 통해 한 번 상영된 것이 전부고, 이후부터는 작품 상영이 금지됐다고. 대신 한국 관람객들이 이 작품을 만나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쥐 안치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사진=김금영 기자)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 호텔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작가는 국내 첫 개인전을 가진다. 전시명은 화제가 된 작품명과도 같은 ‘어 미씽 폴리스맨’이다. 이번 전시는 ‘어 미씽 폴리스맨’을 비롯해 실험적 영상을 통해 비판적 시각으로 현대 사회를 사유해온 작가의 대표 영상 작품 5점을 선보인다.

 

그래도 역시 ‘어 미씽 폴리스맨’을 먼저 살펴봐야지 싶다. 이 작품은 중국에서 1983년 문화혁명 이후 삼엄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문화혁명 이후 매우 법이 엄격했던 시기엔 자유로운 행동이 제한됐다. 하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위조차 제지를 받았다. 심할 경우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영상에는 춤추는 인물 6명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 예술가로, 춤추는 광경을 목격한 경찰이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건물에 들어서자 예술가들은 경찰을 기절시킨 뒤 납치, 건물 지하에 감금시킨다. 그 감금의 시기가 무려 33년.

 

쥐 안치의 ‘빅 캐릭터스(Big Characters)’(2015). 두 개의 화면에는 1968년 사용됐던 문화혁명의 구호들을 비롯해 비틀즈 신곡 발표, 마틴 루터 킹 암살 등 1968년 세계를 휩쓸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랐다가 서서히 잠식되기를 반복한다.(사진=김금영 기자)

그런데 이 33년의 시기가 경찰에게는 ‘감금’이 아닌 ‘자유’의 시간이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역설이다. 작가는 “중국에서는 ‘자유가 무엇인가’가 매우 큰 이슈”라고 짚었다. 영상 속 경찰은 감금된 공간에 비치된 다양한 예술 서적들을 읽고,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점점 동시대 예술에 대해 배우면서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실제 중국에서 저명한 비평가 및 예술가로 활동 중인 쩌 춘야, 왕 광이, 장 샤오강, 쉬 빙, 딩 이, 팡 리준 등이 본인의 역할로 등장하는 것이 웃음 포인트다.

 

33년 동안 다양한 비평가, 예술가들을 마주한 경찰은 이후엔 오히려 저명한 예술가가 된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일종의 도인과도 같은 인물로 변모한다. 나중엔 경찰과 예술 관련 담론을 나누고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생긴다. 이에 경찰을 감금시켰던 예술가들이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올 때마다 검사를 해야 한다”며 검열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자유로운 행동을 검열 당했던 본인들이 오히려 검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역설적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쥐 안치, ‘어 미씽 폴리스맨(A Missing Policeman)’. 싱글 채널 HD 비디오, 50분, 스틸 이미지. 2016.(사진=아라리오갤러리)

33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탈출한 경찰은 다른 경찰들에게 잡힌다. 경찰 앞에서 “나도 경찰”이라고 정체성을 부르짖던 그는 동시대 미술에 대한 경찰들의 질문에 마치 백과사전을 읊듯 좔좔 정보를 읊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뒤 질문까지 던져 충격 받은 듯 멍해진 경찰들에게 박수 세례를 받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정부의 검열을 비꼬는 동시에 중국 현대미술이 흘러온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루고 더 나아가 현대미술의 폐쇄성, 서구 의존도까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술관-영화관을 넘나드는 해학과 풍자

 

‘어 미씽 폴리스맨(A Missing Policem)’이 설치된 전시장 전경.(사진=아라리오갤러리)

‘어 미씽 폴리스맨’처럼 너무 무겁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기보다는 특유의 해학을 녹여내는 게 작가 작업의 특징이다. 작가의 첫 작품인 ‘데얼스 어 스트롱 윈드 인 베이징(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2000)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데, 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길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에게 “중국에 강한 바람이 분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내용을 담았다. 이 질문에 담긴 본래의 의미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급격히 변화하고 있던 시대에서 과연 중국이 세계를 이끌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 묻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그냥 평범한 날씨로 바람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통해 작가는 큰 변화의 시대를 앞두고서도 전혀 변함 없어 보이는 중국의 현실을 포착했다.

 

‘드릴 맨(Drill Man)’(2016)엔 전기 드릴을 갖고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는 한 남성이 등장한다. 이 드릴은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매체로, 작가는 과장된 이야기 구조로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물질 사회에 미혹되고 잠식당한 인간의 불안감을 이야기한다.

 

쥐 안치, ‘데얼스 어 스트롱 윈드 인 베이징(There’s a Strong Wind in Beijing)‘. 싱글 채널 HD 비디오, 50분, 스틸 이미지. 1999.(사진=아라리오갤러리)

‘포잇 온 어 비즈니스 트립(Poet on a Business Trip)’(2014)은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하다. 2002년 한 명의 시인과 단 둘이 40여 일 동안 중국 신장을 횡단하며 촬영한 것으로, 현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대본 없이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꾸려가는 제작 방식을 취했다. 예측 불가능한 이 작품은 현대인의 독립과 자유, 소통의 갈망을 이야기했다. 2015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 장편 영화상, 같은 해 전주 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2016년 자그레브 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빅 캐릭터스(Big Characters)’(2015)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추상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신장 동부의 무인지대 근처에 돌로 쌓은 거대한 문자들이 영상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문자들은 1968년 사용됐던 문화혁명의 구호들이다. 또한 비틀즈 신곡 발표, 마틴 루터 킹 암살 등 당시 세계를 휩쓸었던 일련의 사건들도 함께 영상에 비치다가 서서히 잠식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유토피아를 향한 당시의 갈망과 동시에 과거의 상처를 전달하며 유토피아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을 비판한다.

 

쥐 안치, ‘드릴 맨(Drill Man)’. 싱글 채널 HD 비디오, 35분, 스틸 이미지. 2016.(사진=아라리오갤러리)

이 모든 영상들이 지닌 특징은 영화관과 미술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작품이 약 50여 분의, 미술관에서는 쉽게 관람하기 힘든 상영 시간을 갖췄다. 작가는 “내 영화는 동시대 현대미술과 영화를 합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미술이 관념적이라면 영화는 기술적인 특징을 지녔는데 내 작품엔 두 가지 모두 들어가 있다”며 “작업 초창기부터 유럽 쪽에서 작품을 선보일 때 영화관, 미술관에서 모두 선보였다. 감독으로도, 예술가로도 활동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시장 맥락에서 생각했을 땐 과연 모든 작품을 보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점차 현대미술계가 영화 쪽으로 오고 있는 추세다. 영화관을 위한 작품을 만들지, 미술관을 작품을 만들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작품을 보다 많은 곳에서 보여줄 수 있는 확장의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지금 살고 있는 현 시대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작품에 펼쳐 온 작가는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 이번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는 작업도 선보일 계획이다. 작가는 “한국에서는 박서보 작가를 촬영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쥐 안치, ‘포잇 온 어 비즈니스 트립(Poet on a Business Trip)’. 싱글 채널 HD 비디오, 103분, 스틸 이미지. 2014.(사진=아라리오갤러리)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