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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83) 인도 ②] ‘인도 속 포르투갈’ 고아의 쾌적함에 빠지다

포르투갈이 451년 통치한 ‘교회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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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10.29 09:37:5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0일차 (하이데라바드 → 고아)


하이데라바드를 이륙한 항공기는 한 시간 남짓 만에 고아(Goa)에 도착한다. 인도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주(3700명/㎢)로서 우리나라 제주도 면적의 딱 두 배이다. 서쪽으로는 아라비아 해를 끼고 101km 길이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인당 소득은 인도 평균의 2.5배로서 인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빼어난 풍광과 쾌적한 날씨 덕분에 관광 수입이 12%를 차지한다. 


고아, 인도 같지 않은 인도


고아는 1510년 포르투갈이 도착하여 식민지로 삼은 이후 451년간 통치를 받다가 인도에 반환되었다.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포르투갈은 계속 통치권을 유지하면서 줄곧 인도의 반환 요구를 거부하던 중, 1961년 인도가 군대를 동원하여 압박한 탓에 결국 마지못해 반환했다. 


포르투갈 통치로 인하여 나머지 인도와 수백 년 격리되었던 탓에 포르투갈의 문화와 언어, 종교, 건축 양식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지역이라서 인도 같지 않은 인도, 인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덜’ 인도적인 곳이다. 오늘부터 이틀 동안 내가 머무를 숙소가 있는 도시의 명칭이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라는 데는 이처럼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인들이 식민기지로 삼은 곳답게 고아는 기후나 풍토가 쾌적한 편이라, 이곳이 인도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사진 = 김현주 교수

11일차 (고아)


인도 버스 요금은 공짜나 마찬가지


고아에서의 첫 아침이다. 포르투갈이 떠난 지 57년이 지났건만 도시는 이름 이외에도 거리 장식, 건물 등에서 포르투갈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바스코 다 가마에서 버스로 고아 주 수도인 판짐(Panjim, Panajee)까지 한 시간 걸렸다. 1843년 당시 포르투갈 총독 정부가 올드 고아(Old Goa, Goa Velho)에 있던 주의 수도를 옮겨온 곳이다. 그곳에서 버스를 바꿔 타니 곧 올드 고아에 도착한다. 바스코 다 가마에서 여기까지 버스 요금은 모두 45루피(720원)가 들었으니 공짜나 마찬가지이다. 도시는 인도치고는 제법 깨끗하여 시간이 허락한다면 스쿠터를 대여해서 한가로이 이리저리 고즈넉한 농어촌 지역을 오가며 시간 보내기에는 그만일 듯하다.


여기가 인도인지 유럽인지?


올드 고아 탐방은 그야말로 교회로 시작하여 교회로 끝난다. ‘교회의 도시’인 것이다. 고아 주 인구의 24%가 기독교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 포르투갈은 451년 통치 기간 동안 교회만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초 포르투갈은 이 땅에 처음 들어와 술탄을 물리치고 아라비아 상인들, 즉 그들의 기준으로 이교도들과의 처절한 투쟁을 겪고 이곳에 기독교 포교의 거점을 마련했으니 말이다. 500년 이상 된 교회가 이방인들의 땅에서 정성스런 관리도 없이 오늘날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고아의 초대 총독 알부케르케가 고아 도착을 기념해 지은 성 카타린 예배당. 사진 = 김현주 교수

포르투갈 동방 무역의 거점


한적한 공원 한켠에 위치한 성 카타린 예배당(Chapel of St Catherine)에서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고아 초대 총독 알부케르케(Afonso de Albuquerque)가 고아 도착을 기념하여 지은 이 예배당 옆에는 아시시 성당(Church of St. Fransis of Assisi, 1661년 건립)과 세 성당(Se Cathedral, 1619년 건립)이 웅장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다. 무슬림 통치자들을 누르고 포르투갈이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성당의 거대한 규모는 16세기 포르투갈의 초전성기 시절, 고아가 포르투갈의 아시아 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말해 준다.


성당 부속 수도원 건물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박물관에는 고아의 해양 역사와 함께 수십 명의 포르투갈 고아 총독의 사진이 이름 및 재임 기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중앙에는 당대 포르투갈 국민 시인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 1524~1580)의 동상이 서있다. 고아 정복 후 알부케르케의 업적을 기린 시구가 눈에 띤다. ‘고아의 손바닥 안에 영광이 / 위대한 알부케르케 / (중략) 무어족과 이교도들을 몰아내고’로 이어지는 구절이 고아 역사의 한 부분을 말해 준다.

 

교회의 도시 고아에는, 포르투갈이 무슬림 통치자들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는 아시시 성당(1661년 건립, 위쪽 사진)과 세 성당(1619년 건립)이 웅장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하비에르 유해


광장 건너 봄 제수스 성당(Bom Jesus Basilica, 1605년 건축) 내부 제단 옆 높은 곳에는 천사 상으로 둘러싸인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 1506~1552) 무덤이 걸려 있다. 항해 중 사망한 하비에르 신부의 유해는 말라카에 안장되었다가 2년 후 고아로 옮겨졌다. 이장 당시 그의 유해는 사망 후 2년이 지났으나 썩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유해가 보관된 이곳은 인도-포르투갈(Indo-Portuguese) 양식이라는 독특한 건축 장르의 대표격이라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비에르 신부의 공중 무덤을 지니고 있어 유명한 봄 제수스 성당(1605년 건립). 사진 = 김현주 교수
2년이 지나도록 썩지 않았다는 하비에르 신부의 유해를 안치한 제수스 성당 안의 하비에르 공중 무덤. 인도-포르투갈 양식이라는 독특한 건축 장르의 대표격이라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마을 뒤편 작은 언덕을 오르면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성당과 수도원 터를 만난다. 한창때는 거대했을 성당은 이제 종탑만 남아 역사의 풍상을 말해 준다. 부근 로사리 교회(Church of our Lady of Rosary)에서 탐방을 마친다. 언덕 위에서 올드 고아의 전경을 눈에 담는다. 앞으로는 곧 바다를 만나게 될 폭넓은 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는 비옥한 땅이 펼쳐지고, 도시 중앙에는 낮은 언덕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에서 가져온 값진 향신료, 중국에서 가져온 동방의 진귀한 물건들이 바로 이 도시 창고들을 가득 채운 채 유럽으로 실려 나가기를 기다렸던 그때를 상상해 본다. 

 

 

12일차. (고아 → 델리 → 마날리 행 버스)


새벽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아침 비행기로 고아를 떠난다. 이번 여행길에 벌써 몇 번째인가? 고역인 줄 알면서 아침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항공 요금을 현저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좀 고생하면 항공 요금 절약하고 긴 하루를 벌기 때문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항공 요금이 평준화되었는지 물가 싼 인도에서도 항공 요금만큼은 선진국 수준이다. 혼자서 스스로 일어나야 하므로 휴대폰 알람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놓고 전날 잠을 청하지만 대개는 긴장된 탓에 알람보다 훨씬 일찍 잠이 깬다. 고아에서 델리는 930마일, 2시간 30분 걸린다. 탔다 하면 두세 시간. 면적 328만㎢로 남한의 33배.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브라질, 호주에 이어 국토 면적 세계 7위. 역시 인도는 큰 나라다.

 

‘인도의 중심’ 델리에서 북쪽 산악지대의 마날리로 가려면 험준한 산악지대를 14시간이나 달려야 한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새단장한 델리 공항


델리 공항은 쾌적하다. 10년 전 인도에 처음 왔을 때 한밤중 엄두가 나지 않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우중충한 터미널 안에서 동트기를 기다렸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터미널 안과 밖이 말끔히 정돈되었다. 공항 터미널에서 델리 기차역까지 30분도 안 걸리는 메트로까지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인도의 모든 것의 중심인 델리의 관문으로서 이제는 면이 제대로 선다. 그래도 여러 사정을 감안하면 인도 여행 시 가급적 델리 공항 도착 시간을 낮 시간대로 하는 것이 좋다. 뭄바이, 콜카타 모두 마찬가지이다.


델리 공항에서 마날리(Manali) 행 버스가 출발하는 만디 하우스(Mandi House) 부근 HRTC(Himachal Road Transport Corporation) 터미널까지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고아의 쾌적한 날씨를 떠나 뿌연 하늘의 델리에 도착하니 무척 덥다. 오늘 39도쯤 된다. 물어물어 메트로를 두 번 환승해 가며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날리, 샴리(Shamli), 다르살람(Darsalam) 등 북쪽 히말라야 산악 지역으로 운행하는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 주 정부 운영 장거리 버스가 떠나는 지점이다.

 

마날리로 향하는 길에서 만나는 산동네들. 우리가 흔히 보는 인도의 풍경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2박 3일 산악 버스 여행의 시작


밖에서는 잠시도 있을 수 없을 만큼 더워서 에어컨이 나오는 식당과 대합실을 번갈아 오가며 다섯 시간의 긴 대기 시간을 견딘다. 항공기 연착에 대비해서 대기 시간을 넉넉히 잡아 놓았은데, 항공기가 정시에 와버리면 생기는 흔한 일이다. 버스표는 출국하기 전 히마찰 프라데시 관광청 웹사이트(www.booking.hptdc.in)에서 미리 구입했고 카드 결제까지 마쳤다.


마날리 행 버스가 정상적으로 움직여 준다면 오늘 저녁 6시 반 델리 출발, 내일 아침 8시 반 마날리 도착이다. 그러면 내일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레(Leh) 행 버스에 무난히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지만 낙관은 금물. 예상치 않은 도로 상황 때문에 늦어질 경우 어쩌나 하는 작은 염려는 남아 있다. 레 행 버스는 격일로 출발하기 때문에 내일 버스를 놓치면 여행 일정이 심각하게 엉켜 버린다. 다행이 버스는 정시에 터미널을 빠져 나간다. 마날리는 델리 북쪽 570km, 버스로 14시간을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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