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_ 김해 = 강성태 기자) 김해 시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인 대학병원 설립이 사실상 확정됐다. 지역 민선단체장들이 앞 다퉈 공약 사업으로 내걸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20여 년을 답보 상태에 머물던 이 사업은 지역 시민들에게 ‘사랑의 의술’을 펼치고자 했던 한 의사의 집념과 뚝심이 빛을 발하면서 결실을 맺게 됐다. 지역민의 오랜 숙원을 풀어준 주인공은 김상채 경희의료원 교육협력 중앙병원 이사장. “인생 최대의 행복은 자신보다 부족한 이웃을 돕는 것”이라는 ‘의료 봉사의 대부’ 김 이사장을 CNB가 만났다.
김 이사장은 “김해시는 병상 수 대비 인구 237명으로 병상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도시 규모가 훨씬 작은 진주(35만 명)시는 물론 강원도 원주시(34만 5076명)에도 상급종합병원이 있다. 최신 장비 및 기술을 갖춘 의료진을 보유한 대형병원의 유치가 절실하다”며 대학병원 설립 당위성을 피력했다.
김해에 대학병원급 의료기관 한 곳도 없어
그는 “55만~6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로 부상한 김해시엔 현재 519개 중소 병·의원이 있지만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은 없다. 도내에서 위급한 환자발생 빈도는 하루 20여 명으로 이들은 모두 부산, 창원 등의 대학병원에 의존한다. 이송 도중 불행을 맞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만큼 대학병원 유치는 더 이상 미룰 상황이 아니다. 건강 100세 시대의 행복한 삶을 위해 경희의료원 교육협력 중앙병원(경희중앙병원)이 새 도약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밝혔다.
20여 년을 끌어온 김해 시내 대학병원 설립이 이르면 2022년 성사될 전망이다. 경희가야의료원(가칭)은 약 3천억 원을 투자해 1234병상 규모로 2022년 3월 오픈할 예정이다. 대학병원 수준에 맞도록 암 수술 장비, MRI 3.0T 6대, 256채널 CT 6대, PET CT, 감마 X-CT, ANGIO 6대 등 첨단 의료 장비를 두루 갖추고 본관과 연구동, 기숙형 오피스텔로 구성된다.
김 이사장은 이런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전작업을 철저히 했다. 지난해 보원의료재단 김해중앙병원(이사장 김상채)은 경희대학교병원(병원장 김건식)과 ‘경희가야의료원(가칭)’ 건립을 위한 교육협력병원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김해중앙병원은 500병상 규모로 지역 내 가장 큰 의료기관으로서, 대학병원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7년 김해 지역 급성기병원 최초로 보건복지부 인증의료기관 자격을 획득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전공의(인턴) 수련병원으로 지정되는 등 빠르게 성장했다. 김건식 경희대병원장 및 임상교수 10명으로 구성된 TF팀이 김해중앙병원을 찾아 대학병원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김해 시내 대학병원 건립이 급물살을 탔다.
올해 초에는 김해중앙병원과 경희의료원이 ‘경희의료원 교육협력 의료기관 업무협약 및 경희가야의료원(가칭)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김해중앙병원은 ‘경희의료원 교육협력 중앙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대학병원 설립체제로 들어섰다.
“최고 수준 의료 서비스 제공 위해 노력”
협약에 따라 경희의료원은 제1대 병원장과 대학병원 임상교수들을 파견하는 등 우수 의료진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임상 및 기초 분야 공동 연구와 학술 교류로 연구 협력 및 연구 역량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주요 협약 내용은 △경희의료원 의료인력 파견 △브랜드 사용 허가 △진료 및 행정 분야(인증 및 수련, 감염 관리, 질 향상과 환자 안전)의 교육 및 연수 기회 제공 등이었다. 대학병원급 진료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상호 공동 발전하기 위한 협력 방안이었다.
그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부지 선정도 막바지 단계에 들어섰다. 당초 병원이 제안한 부지보다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이점이 많은 부지를 시가 제안해 이에 대한 행정적인 인허가 절차만 남겨뒀다.
김 이사장은 “부지 선정 후 본격 공사에 들어가 2022년 3월 1234병상 규모의 ‘경희가야의료원(가칭)’을 개원할 계획이다. 대학병원 설립으로 의료 질 향상, 선진 의료 인프라 구축, 병원 진료 역량 강화, 고객 서비스 개선 등 혁신 사업을 추진해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병원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남아 현지인 3명에 무료시술
지난 20여 년간 민선단체장이 수없이 바뀌면서도 한결같이 약속했던 대학병원 설립은 정치공학적 셈법의 공약(空約)으로만 끝나왔다. 이와 달리 김 이사장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저 지역시민들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것이었다. 아낌없는 의료 서비스를 베풀고 싶은데 환경이 열악해 더 많은 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 ‘의료 봉사의 대부’라는 수식어가 썩 잘 어울린다.
김 이사장은 “내 행복은 ‘나눔과 봉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2010년부터 시행해온 외국인 무료 진료는 홀수 달 셋째 주 일요일마다 외국인인력지원센터로 찾아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소외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실시된다. 무료 진료에서는 증상별 전문의의 문진과 혈압 체크, 재활 치료, 약물 처방 등이 이뤄지며, 매번 60여 명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한다.
2016년 10월부터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120여 명의 다문화 가족에게 8000여 만 원을 지원했다. 이밖에도 치료를 제때 못 받는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의료비 지원, 지역 아동센터 의료비 지원, 김해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전 직원 모금,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성금 기부 등을 통해 기부 문화를 넓히고 있다.
해외 의료 봉사 활동도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매년 두 차례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의 오지마을을 주로 찾아간다. 이런 봉사를 통해 몇 년 전 현지에서 치료가 불가능했고 설령 치료는 가능하더라도 수술비조차 마련할 수 없어 병을 방치하던 환자 3명과 인연을 맺었고, 이들에게 “꼭 한국으로 불러 치료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최근 이들을 항공권과 치료비 일체를 전액 부담하며 치료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줬다.
라오스의 29세 여성은 췌장암을 수술·치료했고, 극심한 양쪽 무릎 괴사로 보행 장애를 겪으며 가족의 생계를 잇던 라오스의 51세 남성에게도 맞춤형 로봇 무릎 인공관절 수술로 제2의 인생을 펼칠 버팀목을 선사했다. 또한 심한 부비동염(코 염증)으로 코 모양마저 삐뚤어진 태국의 24세 젊은이에게도 이비인후과 수술로 삶의 희망을 안겼다.
김 이사장은 “진료, 치료를 받고 난 환자들의 맑은 웃음을 보면 되레 내가 힐링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주어진 의술이라는 재능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현지의 낙후된 지역에 병원을 운영해 가난해서, 의료 시설이 없어서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우리가 6.25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외국의 많은 지원을 받았듯, 지구촌 시대에 모두 한 가족처럼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